텃밭의 완두콩을 수확했습니다. 통통해진 꼬투리 안에 동글동글한 초록빛 완두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꼬투리마다 들어 있는 완두의 모양과 개수도 달라, 열어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이 귀여운 완두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죠. 시골살이 계정인 수풀사이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더니, 심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수확을 했냐는 이웃님의 안부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그러게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완두콩을 심은 뒤 바로 기다림이 시작되어 버린 저에게는 벌써가 아니었지만 말이에요.
'이렇게 바짝 마른 완두에서 싹이 난다고?' 쪼글쪼글하게 마른 완두를 의심 어린 손길로 심은 게 3월 초입니다. 세어 보니 세 달 가까운 시간입니다.
저는 완두콩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내고, 넝쿨손을 뻗쳐 지지대를 감고 올라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저 보란 듯이 싱그럽고 우아한 꽃을 피우고, 꽃이 진 자리에 납작한 꼬투리를 만드는 것도 지켜봤고요. 봄볕 아래 꼬투리를 통통하게 부풀리는 동안엔, 내내 비 소식이 없어 멀리 서울에서 마음을 졸이기도 했습니다.
참 기특합니다. 마른 봄바람이 이리저리 세차게 불어 대던 날들과 비 한 방울 없던 가뭄까지 지나고 열매를 맺은 완두가요. 지켜보는 이에게는 훌쩍 지나가버리는 시간이지만, 겪어내는 존재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완두가 자라는 세 달 동안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텃밭에 완두를 심은 직후, 저는 새 회사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만에 퇴사 결심을 하고 다시 퇴사원이 되었습니다. 수확한 완두로 달고 고소한 완두콩 밥을 지어먹는 지금은, 2개월 차 프리 에이전트로서 살고 있네요. 우당탕탕하면서요. 벌써, 같지만 사실 제게는 여러 의미로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2023년 봄. 완두와 함께 보낸 계절을 저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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