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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Jun 26. 2024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여성 호러 단편선

김이삭 등 지은이 10명 |  376쪽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김이삭, 남유하, 배명은, 사마란, 서계수, 유기농볼셰비키, 장아미, 전혜진, 코코아드림, 한켠(지은이) |  376쪽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한국형 호러’에 ‘여성 호러 단편선’이다. 오직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공포 서사이다. 늘 살해당하고, 억울하게 귀신이 되어 원한을 호소하고, 사건의 실마리로 전락할 뿐인 여성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뒤엎었다.  각자의 개성이 톡톡 튀는 10편이 모였다.     


10편의 글이 짧지만 강렬하다. 섬뜩해서 말하려고 하는 바가 확 들어온다. 호러가 가진 매력을 이렇게도 살릴 수 있구나! 



시어머니와의 티타임_남유하


나는 퀴퀴하고 눅눅한 고시원 생활을 면하게 해주겠다던 남자와 결혼했다. 그가 내건 결혼 조건은 단 하나,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다.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 이래로 중세 유럽 귀족처럼 단장한 몸과 우아한 말씨의 시어머니는 매일 오후 세 시면 내게 티타임을 청해온다. 시어머니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몰래 엿보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남편이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나서도 오후 세 시면 찾아오는 시어머니와의 티타임을 ‘집세’로 치며 살던 나는, 남편의 일주기가 다가올수록 어딘가 점점 이상해지는 시모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어머니, 며느리에게 1주기 제사상을 차리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입지 말라고 한다. “우리 아들이 먹고 싶은 게, 이깟 제사 음식이겠니?˝라고 하면서.

그러나 며느리의 승리다. “아무튼 상관없어요. 제가 시어미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요.”라는 여유로움을 가졌으니.     


_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남자가 한 말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중국집에서 단무지를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어요. 단무지 씹는 소리가 참 경쾌하네.(7쪽)    

 

_어떤 사람의 음식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면, 너는 그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거야.(7쪽)     


_마지못해 티테이블 앞에 앉자 시어머니가 차를 권했어요. 시어머니의 머리카락처럼 검붉은 빛으로 우러난 차를 보면서 이 여자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끓어올랐죠.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를 없앨 수 있을까, 수없이 상상했던 경우의 수 하나를 실행해버리고 싶었어요.(31쪽)     



무진도 탈출기 게임 환불 요구서_코코아드림


나는 좋아하는 아이돌을 선택해 플레이할 수 있어서 구매한 게임의 환불을 문의 중이다. 게임은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무진도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주민들이 숭배하는 인공의식 ‘마키나’가 있는 무진도. 마키나의 철저한 감시 아래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그들은 정해진 시간 외의 활동이 금해지고, 거주 구역 밖으로는 단 한 발도 나갈 수 없다. 게임 속 주인공이자 마키나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던 하진은 어느 날 출입금지구역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하진은 무진도 역사박물관과 식물원, 무진랜드로 가는 길을 묻는 여행객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알던 것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사실 앞에서 혼란스러워한다.      

_하진이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멀리 배가 보였다. 아마도 무너진 바깥세상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 돌아온 선박일 터였다. 바깥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면서 그들의 물건을 가져오는 꼴이 모순적이라고, 하진은 문득 생각했다. 배가 해변에 닻을 내렸다. 문이 열리고 하나둘씩 배 안의 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부들이 바삐 움직였다. 커다란 짐 몇 개, 조그만 짐 여럿,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

사람이었다.(61쪽)     



큰언니_장아미


옛날 어느 마을에 살던 세 자매는 엄마의 생전 당부에 따라 미지의 숲에 있는 집에서 사흘을 지내게 된다. 엄마는 큰딸 모란에게 자신이 죽고 나면 어떤 손님이 너희를 찾아갈 텐데, 그 손님을 피해 사흘간 문(門) 모양의 자수를 꼭 완성해야 한다고 이른다. 엄마의 유언에 따라 자수를 놓던 모란은 사흘째 밤, 드디어 손님과 마주하게 된다. 동생들을 먼저 자수 밖 세상으로 보내고 혼자 남은 모란은 천금을 찢고 가시밭길을 달려와 괴괴하게 벌어진 멱목 아래로 드러난 손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 어머니의 염원과 맏이의 염원이 합쳐져 세 자매를 지켜낸다.     


_“어두운 밤, 별들이 잠들어버리면 숲도 너희를 구해줄 수 없을 거야. 모란아, 명심하렴. 손님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 그가 어떤 감언이설로 너희를 구슬린다 해도 절대 넘어가면 안 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100쪽)          


_“그래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손님은 그곳에 나타날 거거든. 너희가 그 집에 숨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 장담하건대 내 넋의 일부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게다. 내가 죽고 이곳에 남겨질 너희를 가련해하고 있거든. 너희를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너희와 함께 저승으로 떠나는 게 낫다고 믿고 있거든.”



창귀_전혜진


나(윤서)는 강남역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로 누군가와 몸이 닿으면 그 사람에게 붙어 있는 괴상한 환상을 보게 된다. 애인인 준상의 하반신에도 덕지덕지 달라붙은 내장 같고, 촉수 같은 괴물들. 나는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는 준상과 결혼을 약속하고 준상의 고향을 방문하기로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마침내 방문한 준상의 고향 집에서 준상의 어머니와 손을 맞잡은 순간 나는 그녀의 머리, 어깨, 등, 다리…… 온몸을 덮고 있는 ‘그것’들을 보고 만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무수히 죽어나간 여아들, 여자들의 희생, 이제는 부조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할머니와 고모. 준상의 어머니는 진정 창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다른 이를 희생시키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부조리를 깨 버린 사람이었다.     


_창귀란 범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귀신이다. 범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혼령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범에게 붙잡혀 지내니, 늘 서러워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고 다른 사람들을 같은 운명으로 끌어들인다.(125쪽)     

_사람들은 흔히 젊은 여성이 살해당했다고 하면, 어떻게든 죽을 만한 이유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가 불우해서,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질이 나쁜 남자를 사귀어서, 꼭 가지 말라는데 혼자서 외진 곳을 걸어가서. 그런 것이 여성에게는 ‘죽을 이유‘가 되었고, ‘죽을 죄‘가 되었다. 하지만 그날 살해당한 여성에게 ‘그럴 만한 이유‘는 한 가지도 없었다.(132쪽)          


_윤서는 고개를 들었다가 그만 기절할 뻔했다.
준상 어머니의 등 뒤쪽에는 마치 수십 개의 촉수가 돋아난 듯한 수많은 내장들이 매달려 있었다. 어떤 것들은 굵고 컸으며, 어떤 것들은 가늘고 짧았다. 크고 작은 사람의 팔다리가 매달려 있는 것도, 탁구공만 한 사람의 머리가 매달려 있는 것도 있었다.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아기들이었다. 준상 어머니의 등 뒤에 매달린 것 중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벌거벗은 아기들도 있었다. 윤서는 입이 바싹 말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벌거벗은 아기들은 전부, 여자아이였다. 



매혹_배명은


서은과 정우는 사업이 실패하자 시골 천룡리로 내려온다.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깊은 마을 사람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하면서도 집에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남편 정우 곁에서 갑갑한 삶을 이어오던 서은은, 천룡리의 부녀회장 주화자를 따라 마을의 ‘보물님’이 계시다는 외딴집을 방문한다. 마을 여자들에게만 허락된 구역에서 서은은 ‘천녀’를 만나고, 그런 서은을 사이비종교에 빠진 미친 사람들과 어울린다며 못마땅해하던 정우는 서은을 그곳에서 빼내기 위해 결국 금남의 구역인 천녀의 집을 찾아가고야 마는데……. 서은의 복수가 벌어진다.     


_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서은은 어둠 속을 빤히 쳐다봤다. 방 한켠에서 틱틱, 성냥을 켜는 소리와 함께 불이 일었다. 작은 불꽃이 초에 옮겨붙었고 새하얀 여자의 얼굴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붓으로 그린 듯 휘어진 눈썹, 살포시 감은 눈, 오뚝한 코와 조용한 미소를 짓는 붉은 입술이 서은에게 향했다. 단정히 빗어 내린 길고 긴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여자가 몸을 움직이자 고운 한복에서 바스락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 탁스륵탁스륵타탁.(186쪽)          



너의 자리_한켠


한 회사의 11개월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게 된 나는, 전임 계약직 직원 선정 씨에게 고시원을 나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합리적인 가격에 회사와도 가까웠던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 나는 작은방 붙박이장에서 엄지손가락이 없는 백골 사체를 발견한다. 목에는 같은 회사 동료인 이 대리의 사원증이 걸려 있다. 회사에서 정직원은 남자뿐이고 추행도 계속된다.

그렇게 내가 그 집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부터 회사에서는 정직원 남자들이 출퇴근 기록만 남긴 채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_차에 치여 납작하게 깔린 비둘기 사체를 보았다. 첫 출근길이었다.(211쪽)     


_˝선정 씨가 잘 알려줬어요?˝

김 대리가 친한 척 말을 붙였다. 몇 년째 신입을 뽑지 않고 막내 사원급이 할 잡무를 11개월짜리 계약직 여직원에게 시키고 있는 사무실에서는, 정규직 중 김 대리가 제일 막내였다. 그리고 그 정규직은 다 남자였다. 일이 바빠서 여직원의 출산휴가를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출산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하려는 소위 ‘경력 단절‘ 여직원은 아이가 자주 아프다거나, 아이 맡아줄 사람을 찾느라 동동거리다가 곧 그만둘 게 뻔해서 싫다고 했다.(216쪽)     


최 과장의 등 뒤에서 들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큰 입을 벌리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서 빨리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입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입을 벌려본다. 개의 이빨이다. 흐르는 물에 손을 비벼가며 박박 씻었다. 



성주 단지_김이삭


무연고지에 있는 한 민속학연구소에 취직한 나는 방범과 치안이 확실한, ‘안전하고 온전한’ 상태의 자취방을 찾던 중 연구소 선임으로부터 집을 소개받는다. 족히 300년은 넘어 보이지만 곳곳에 CCTV와 신식 안전장치가 설치된 한 고택에서 생활하던 어느 날, 그 집의 소주방에서 이상한 항아리를 깬 뒤부터 누군가 집에 침입했다는 알림이 고장이라도 난 듯 수시로 울려 퍼진다. 

죽고 싶지 않아서 결혼하려고 했던 그 회계사 남친으로부터 도망쳤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문을 두드리며 행패를 부리던 전 남자친구는 '나'의 집 앞에서 여전히 행패를 부리다 옆집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나'를 찾아 온 그가 해 준 말이다. 혹시, 죽은 그 애가 돌아온 건 아닐까?      


_○○시에 있을 때였어요. 한국 전통 문화의 수도라는 ○○시 있잖아요. ○○시에 있는 300년 된 고택에서, 그 집에서 귀신을 봤어요.(246쪽)          



산상수훈_서계수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서 ‘복음의 새순’이라는 이단에 대한 설교를 듣던 나(하은)는, 교회에 새로 온 여자아이 새인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가 이단이라고 확신한다. 말투, 표정, 손짓. 무엇 하나 이단과 다를 바 없는 새인 앞에서 자신의 믿음이 부정당하는 일들을 겪게 된 나는, 여름성경학교에서 새인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자고 있던 그 애의 목을 거세게 조른다. 그 순간 새인이 누군가의 목소리로 예언 같은 말을 한다. 그걸로 돈을 벌기로 한다. 하은은 새인이를 질투하고, 새인이를 이용하고, 새인이를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불행이 모두 새인이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뷰티풀 라이프_사마란 


명철은 이기적이고 까칠한 성격의 진현 그룹 막내딸 영미와 결혼해 진현 그룹의 임원까지 오른, 현대판 신데렐라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과 자신이 가진 경제적 위치 사이에서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던 명철에게 동창생 ‘유정’이 불쑥 다가오고, 명철은 유정과의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유정과의 밀회가 시들해진 명철은 결국 유정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영미가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서 영미의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는 저 여자는…… 누구지?     


_계약을 하고 싶어요. 근데 대상을 바꿔주세요.”

해결사의 낡은 사무실 소파에 앉아 유정이의 사진을 내밀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계약금과 사진을 들고 일어서며 믿음직한 미소를 던졌다.(325쪽)  


   

그를 사로잡는 단 하나의 마법_유기농볼셰비키


어릴적 운동을 해서 몸이 날씬하지 않고 이쁘지도 않는 희선은 회사에서 잘생긴 김과장을 좋아한다. 김과장은 그녀의 마음을 이용해 그녀에게 돈을 쓰게 만들고 그녀의 몸을 탐한다. 희선은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러브 포션’이라는 사랑의 물약을 구매한다. 며칠 만에 마법처럼 그가 희선에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희선이 러브 포션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김성택이 알게 되고, 김성택은 미련한 년이라며 그런 미신을 믿는 그녀를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며 본색을 드러낸다. 그후로 그녀에게 음란한 영상을 찍게 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자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희선은 자살을 시도하려 하지만, 김성택은 죽을 거라면 스너프 필름을 찍으라고 한다. 외딴 곳에서 카메라를 켜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두 시간 안에 죽게 해 주겠다는 김성택을 보고 희선은 그제서야 그 '마법의 물약'의 힘을 알게 된다. 자신의 힘을 자각한 희선은 반격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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