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섭 | 194쪽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8월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정리)
아버지에서 아들로, 항일의병에서 독립군으로 이어지는
두 세대의 ‘용기’ 이야기
1910년. 즉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그때로부터 2년간, 꿈이라고는 없던 열한 살 문맹 소년이 암흑에 뒤덮인 팔자를 고치기 위해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게 하나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간다. 작가는 아버지(을사 의병)에서 아들(봉오동 전투 독립군)로 이어지는 두 세대의 항일 운동 이야기를 풀어내는 속에,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어둑했던 시절을 돌파해 낸 용기의 시작점을 한 아이의 성장담에 빗대어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누구나 암흑 같은 시간을 만나지만, 암흑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둠의 시대, 빛을 찾아간 아이의 이야기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울부짖는 선비의 통곡에서 난생처음 ‘암흑’이라는 단어를 들은 열한 살 아이는 이상한 변화를 느낀다. 바느질과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리는 엄마와 사는 자신의 삶이 온통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만석꾼 안 부자가 조상 묘를 명당자리로 옮겨 부자가 되었다니, 아이는 암흑에 싸인 팔자를 바꿀 방법이 제 아버지 묘를 명당자리로 옮기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이는 한밤중에 지관을 만나려고 무작정 안 부잣집 담을 넘지만, 정작 아버지 묘가 어디 있는 줄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아버지 얘기를 꺼낼 때마다 몸이 굳어 버리곤 했다. 안 부자는 그런 아이를 딱하게 바라보면서도 팔자를 바꾸고 싶으면 글을 배우라는 따끔한 한마디를 던지는데…….
아이는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혹시 몹쓸 죄인은 아니었을까 무섭지만,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칼갈이 노인 얘기대로라면, 가난하게 태어난 조선인은 십중팔구 빚쟁이, 도둑, 병자가 된다는데, 거기다 이제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으니 평생 암흑이 자신을 뒤따라 다니지 않을까?
냉정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아이는 아직 작은 덩치로 남보다 일찍 지게질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 주인이라는 양반 김 첨지가 아이 앞에 나타나 도둑질한 나무를 모두 제 집으로 실어 나르라는 벌을 내린다.
열흘 동안이나 나뭇짐을 져 나르며 죗값을 치른 끝에, 아이는 이 세상에서 대가를 치르지 않고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값비싼 교훈을 손에 쥔다. 그리고 작은 지게를 밑천 삼아 김 첨지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 일은 아이에게 꿈에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기회로 바뀌는데…….
과연 인간이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을까? 《너의 운명은》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이 눈앞의 암흑은 선비의 울음에서 먹구름으로, 가난과 식민지 현실로, 일자무식의 까막눈과 막막한 절망감으로 변신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단원에서 결국 아이는 암흑의 실체를 새롭게 받아들인다. “그건 암흑이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이었다.”고.
어린 나이에 독립군이 되기 위해 홀로 만주로 떠날 결심을 하는 아이의 모습에서는 김산과 같은 신흥 무관 학교 졸업생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대토지와 재산을 처분한 뒤 만주로 떠나면서 “동지가 필요하지, 하인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안 부잣집 손자의 모습에서는 독립운동의 대부 이회영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인다. 무엇보다 을사년 의병으로 뛰쳐나가 거대한 흙무덤이 된 아이의 아버지는 암담한 시대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운 이름 없는 의병들의 초상 그대로이다.
한윤섭의 역사 동화를 읽다 보면 역사란 성장하는 인간들의 발자취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이 지워졌으나 존재감은 또렷한 주인공 ‘아이’를 통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분투하는 역사적인 존재라는 귀중한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엄마를 중심으로 작은 원을 그리던 아이의 세계가 칼갈이 노인과 안 부잣집, 김 초시를 만나 점차 넓어지고, 마침내 좀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가듯, 우리 아이들도, 우리도 그렇게 세계를 넓혀 갈 것이다.
_작가의 말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할 때, 그 역사의 순간에 있던 인물들의 선택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순간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의로운 선택을 한 사람들도 있고 부끄러운 선택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의로운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는 그 선택을 지탱해 주는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의병으로 나가면서,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면서,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면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그 혹독한 고문을 버티면서, 상해 홍구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지면서,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기다리면서, 그 수많은 독립투사는 몸속 깊이 올라오는 그 지독한 두려움을 용기로 억누르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의로운 용기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나무하기와 관련된 문장만 모아 보았다.
우선 겨울이 오기 전에는 집에서 쓸 땔감을 채워 놓고, 지게질이 편해지면 차츰 큰 나무를 할 계획이었다.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모르지만, 어떡해서든 봄에는 서당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게를 내려놓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한곳에 모았다. 금방 모을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한참 동안 모은 가지들을 지게에 싣고 새끼줄로 묶었다. 그리고 지게를 지었다. 그러나 지게가 무거워 일어서지 못했다.
지게를 지고 산길을 내려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짚신이 발에서 미끄러지고, 지게에 실린 나무들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았다. 비틀거렸지만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집까지 갔다.
집을 나와 산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게를 지는 것도 나무를 모으는 것도 익숙해졌다.
이쪽저쪽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모아, 한 아름이 되면 그걸 다시 한곳에 가져다 쌓았다.
어디에 가야 마른 나무가 많은지, 어떤 나무가 불에 잘 타는지도 알게 되었고, 매일 계절이 조금씩 바뀌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나뭇단이 꽤 근사해 보였다.
잔가지
관아에 잡혀가 곤장을 맞는다.
산은 모두 주인이 있다. 마음 놓고 나무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발은 부르텄고 군살 배긴 어깨에서는 또 피가 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아이는 지게를 멘 채 눈 내리는 들판을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힘들지 않았다.
눈이 마루 바로 밑까지 쌓여 있었다.
여름이 되면서 겨울처럼 땔나무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풀을 베어 지게로 날랐다. 소들을 먹일 풀이었다.
풀을 베는 것은 나무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한여름 풀 속에서 낫질하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과 땅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산에서는 뜨거운 햇볕이라도 피할 수 있었지만, 들판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일을 나섰다.
비는 며칠 동안 내렸다. 장마가 시작된 것처럼 쉬지 않고 내렸다. 비가 내려 땔나무를 하는 것도, 풀을 베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오후가 되면서 비가 완전히 그쳤다. 갑자기 빗소리가 사라져 세상이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