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어렸을 때 부터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자주 했던 생각은 "쟤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 앉아 있지?"였다. 어깨가 발작을 일으키듯 쭈뼛쭈뼛 서고, 등이 쪼그라들 것 같고, 온몸을 꽈배기처럼 한 번 꼬았다 풀면 시원하겠다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모두가 이 힘든 걸 참으면서 해낸다고 믿고 살았고, 그 탓인지 타인을 인정하는 태도가 나는 정말 훌륭하다! 하지만 남들에 비해 유독 내가 더 힘들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서 엎드려 잤던 시간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었던 과목에만 집중을 했고, 나머지 시간엔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공상을 하거나 소설책을 읽었다. 시험공부는 닥치면 벼락치기로 하는 편이었는데 암기과목의 성적은 낮았고, 듣기 평가도 쉽지 않았다. 특히 일본어와 지구과학 과목은 기가 막히게 한 톨의 지식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뇌가 재활훈련을 하는 듯한 허우적거림과 혼동과 무질서의 괴로운 감각을 느끼며 50분의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배구를 하며 놀았는데 유독 흥분하여 소리도 크게 지르고 쉬지 않고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공을 받아내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체육과목을 좋아하면서도 무용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체육과 무용을 한 선생님께서 가르치셨는데, 체육시간에는 날아다니면서 무용시간이 되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나도 선생님도 이해하지 못했다. 돌아서면 백지가 되는 뇌를 가지고 동작을 보고 익혀 따라 해야 하는 과업은 도무지 내가 해 낼 수 없는 일 같이 무섭게 느껴졌다. 더불어 단거리 달리기를 무척 잘했지만,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전교 꼴찌를 해도 아쉽지 않은 능력을 보였다. 그 탓에 언제나 나에게 따르는 자기 평가는 '하면 되는데 왜 안 해!', '넌 정말 지독히도 끈기가 없어', '참고 견디면 되는데 왜 그렇게 엄살이 심해?', '제발 좀 신중할 수 없니?' 등이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문제라든지 지각의 문제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고, 손톱을 깨물거나 상처의 딱지를 뜯는 부끄러운 습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순간에도 멍하니 공상에 빠지는 일은 언제나 나를 괴롭혔고, 대회에 참가하였지만 작품을 제출하지 않고 그냥 돌아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초등학생 때 구구단을 외우는 일에서부터 고등학생이 되어 새천년 건강체조의 동작을 외워야 하는 순간까지도 작업기억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업과 관련해서는 나에게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품에 안긴 시골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업 중 틈틈이 바깥으로 나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었고, 도시의 큰 학교에서라면 어림없었겠지만 벼락치기를 동반한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부산에 소재한 국립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그때부터 학업에 대한 나의 진짜 위치를 냉철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백지 시험지를 낸 적도 있었고, 한 학기에 걸쳐 완성해야 하는 장기 과제들은 펑크를 내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한 주제에 대한 발표에서는 언제나 탁월한 능력과 노력을 인정받았고, 실기과목에 있어서도 자신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반드시 해야 할 과제는 뒷전이고 하고 싶은 것들에 몰입했다. 직장에서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 기한이 다가올 때마다 퇴사를 꿈꿨고, 나에게 분담된 업무들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 내는 것이 어려웠다. 대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이나 새로운 체계를 구상하는 일에는 놀라운 집중력과 능력을 보였다. 마땅히 하고 넘어가야 하는 잔잔한 일들을 무시하고 회피하며 괴로움을 곱씹어댔고, 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당장 할 필요가 없는 일과 그렇게 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과몰입하며 시간을 때웠다.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지만, 언제나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 채로 하루를 찝찝하게 마무리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나만 유독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살아가는 것이, 성장하는 것이 갯벌에서 힘겹게 발을 내딛는 과정처럼 힘에 부치고 무거웠지만 남들도 모두 그렇게 느끼는 줄로만 알았다.
이번 주 월요일, 충동적으로 성인 ADHD 검사를 예약했고, 다음날 바로 방문한 병원에서는 3시간에 걸친 상담과 검사 그리고 다시 상담의 과정을 거쳐 나에게 가볍지 않은 수준의 ADHD 질환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뇌파검사와 CAT검사, 여러 종류의 체크리스트는 한결같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예상을 하고 갔긴 했지만 생각보다 심한 수준의 결과와 지난 세월 고생스러웠던 나를 떠올리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내가 좀 우울한 상태로 검사를 하는 바람에 검사가 오염되어 결과가 잘못 나온 거야'하는 결과의 부정이었다. 체크리스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뇌파검사와 CAT검사의 결과는 나의 부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CAT 검사 결과는 첫 번째 영역만 경계를 나타냈고 나머지 모든 영역은 저하가 떴다. 보통의 사람들은 검사가 어려웠다고 소감을 전하더라도 결과는 정상으로 나온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검사 자체가 너무나도 힘이 들었고 결과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버튼을 잘 못 누름을 인식하고 '아씨-'하는 탄식을 혼자 수차례 내뱉아야 했었다. 검사 중에 모니터가 아닌 창밖 풍경이 궁금하여 고개가 몇 번이나 돌아갔었다. 누군가가 '블라인드를 내려놓았더라면 점수가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남 탓도 해본다.
34살에 관리자라는 직무를 처음 맡게 되어 1년 정도는 너무 재미있게 일에 몰입했다. 밤을 새우며 업무를 익혔고,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그다음 해가 되자 호기심과 흥미가 갑자기 뚝! 떨어졌고 그만두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자체와의 계약기간은 무려 4년이나 남아있었고, 나의 스트레스 곡선은 만성을 향해갔다. 그래도 계약기간은 지켜내고 싶다는 욕심에 잡 크래프팅을 하며 버텨냈었다. 드디어 4개월이 남은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온갖 새로운 일을 파고들며 시간을 보냈다. 상담공부, 연합회직무, 지역사회 협력사업, 부모교육 등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확장할 수 있는 모든 새로운 일은 다 해봤다.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기본이 되는 업무를 미루는 나 자신을 언제나 비난하고 질책했다.
정신의학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좋은 직장을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는지 물으셨다. 약물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다시 관리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셨다. 하지만 우울과 불안, 강박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우선이라 ADHD 약은 추후에 쓰자고도 하셨다.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병원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원해 충동적으로 검사를 했던 터라 약물치료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다. 직업과 생활환경을 모두 바꿀 준비를 통해 나답게 살아도 된다는 허가를 이미 내린 이후라 약을 먹어야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평생을 허용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유롭고 인정받으며 자랐고, 나의 약점보다는 강점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남편이랑 가정을 이루어 소박하지만 부산스럽고 재미있게 잘 살아가고 있다. 다만 관리직이라는 직무가 주는 스트레스가 나에게는 슬프게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나 크다. 약을 먹고 정상인이 되어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나의 고질병이 해결될 수 있다니 반갑기도 하면서 동시에 괴로웠다. 한 직장에서 수년을 일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간지러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약물치료 대신 인지행동치료를 우선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상담공부를 하며 들어보았던 우울증 치료를 돕는 TLC(생활개선요법)을 위해 오메가 3도 주문하였고,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를 읽고 일일계획표 관리를 위한 수첩도 꺼내 들었다.
지난가을, '힐링 말고 그로잉'이라는 글을 쓰며 상처가 있는 사람도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해댔었다. 한 달 사이에 ADHD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아 든 나는 내가 쓴 글을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래, 옹이가 있는 나무일지라도 쭉쭉 뻗어 성장하고 싱그러운 잎사귀를 펼치지!
전두엽의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확인을 받고 나니, 퇴사와 귀촌이라는 나의 선택이 도피이자 회피가 아닌 나를 위한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마련해 주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허가도 되고 마음이 좋다. 하지만 ADHD라는 병명뒤에 숨고 싶지는 않다. 생활습관과 행동습관들을 열심히 관리하고 변화시켜서 뇌도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어볼 것이다. 상담 공부를 하며 한 차례 자기 분석을 마친 뒤지만, 다시 한번 삶을 돌이켜보고 이해하고 싶어 진다. 충분하지 않았던 허가와 위로로 지난 삶을 채우고 토닥이고 싶다. 알면 사랑한다는 최재천 박사님의 말씀을 좋아한다. 나를 알게 되니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자기 분석의 과정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두렵고 돌이킬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열었더니 내가 상상했던 무시무시한 결과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고마운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흠이 있지만 빛도 나는 반짝이는 나의 뇌가 거기에 있었다.
"알면 사랑한다. 사랑하면 행동한다." 줄줄이 이어지는 생각은 접어두고, 나에게 도움이될 행동을 그저 실천에 옮기는 내가 되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