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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Nov 18. 2024

우울과 안녕하기

우울 덕분에 멈춰서는 폭주기관차

무기력한 내 모습에서 우울이라는 놈을 느낀다.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정체를 드러내준 것 같아 고맙다. 열심히 하던 일들과 억지로 하던 일 모두 이제는 예전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멈추면 좋겠다고 아무리 되내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입이 말을 듣지 않았었는데, 하루아침에 완전히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언제부터일지 알 수 없지만 불안은 쉬지 않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고, 나는 쉬지않고 일하고 웃고 교류했다. 인정받고 싶다기 보다는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몇 개의 약속과 역할을 취소하고 끊어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자신감이라는 것이 솟아 오른다. 여전히 마음은 달아올라 통제하기 힘든 와중이나, 조금 후면 가라앉을 것이라는 믿음도 나를 진정시키는데 힘을 더하고 있다.


평생을 멈춤 없이 달렸는데, 멈추어서고자 마음 먹으니 내 몸이 나에게 반항어린 표현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결정에는 변화가 없다. 불필요한 행동과 사고는 통제하고 필요한 곳에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내 행동의 문제를 나는 끝까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우울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반갑고 고마운 감정, 비록 지금 너무 무기력해져서 내가 아닌것 같은 나를 이끌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 갈 거라 믿어본다.


며칠 전 부터 따뜻한 꽃 차를 마신다. 녹차도 조금 사 볼까 한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우울과 마주앉아 마음을 녹이는 시간이 된다. 온도, 향기, 맛, 소리, 색을 빤히 들여다보며 보내는 시간은 내게 다음이랄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마지막 차를 한 모금 삼키며 집에 가면 오늘은 청소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청소를 땀 날만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차갑고 서늘한 무기력이란 유령이 나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출근 시간에 늦지 않는 것 만큼이나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맞추는 것 또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차 한잔에 힘을 얻었으니, 힘차게

퇴근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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