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좋을 순 없어도 하나씩 좋은 것은 있어요
매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매일 하나씩 좋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 앨리스 모르스 얼
성장을 위해 익숙함과 결별하라는 말이 있다. 10대에 마침표를 찍고 호기롭게 맞이하는 20대를 가슴 뛰게 하는 경구였다. 답답한 학교 건물에서 보낸 12년 간의 입시 굴레에서 벗어나 밟는 곳마다 새롭고 낯선 땅에 첫 발자국을 찍는 것은 마냥 기쁨이었다. 물론, 그늘이 드리워지고 삶의 지평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래도 충분히 견딜만했다. 젊음은, 그랬다. 역풍을 맞아도 휘청거림을 눌러낼 에너지는 언제고 충전되었다. 아니, 애초에 배터리 용량 자체가 컸다. 힘들어도 계속적으로 흐르는 전류가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그래서, 새로움은 언제나 가능성이고 확장이었다.
이제, 배터리의 용량이 예전 같지 않다. 방전의 속도가 빠르다. 낯선 힘듦과 성장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삶의 아포리즘이 마냥 기쁘지 않다. 좋지만 부담스러운 명제다. 솔직하게 용쓰지 말고 익숙한 품에 안겨있고 싶다.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키는 방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익숙한 담임의 업무와 결별하게 된 시점부터 매일 방전이었다. 고달픈 나날 속에 허우적대는 스스로에게 괴로웠다. 잘하고 있다는 토닥임이 위로는커녕 눈물로 쏟아졌다. 울면서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사단이 났다. 무거운 피로감으로 녹아내린 몸을 끌고 일찌감치 잠들었던 어느 날이다. 문단속에 철저한 아들 녀석이 보조장치까지 걸어 잠근 걸 모른 채.
찬양 연습을 하고 늦게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날벼락을 맞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아무리 경비실에서 인터폰을 해대도 문을 열어줄 유일한 두 사람은 깨어나질 않았다. 덜덜 추위에 떨며 기도했단다. 제발 한 명만 깨워달라고. 자정이 훌쩍 넘어 우연히 눈을 떴다. 남편이 옆에 없다.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꺼내드니 부재중 전화 행렬이다. 놀라서 집에 들인 그는 추위에 얼어있다. 힘든 나를 알기에 화내지도 않는다. 나 같으면 엄청 화났을 텐데. 그저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익숙함과의 결별은, 이렇듯 사랑하는 이에게까지 거친 파장을 일으켰다.
교감 선생님 앞에서 힘든 마음을 다시 들키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던 날, 자존감에 큰 타격을 입고,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그때, 출판사 마케팅 대표님이 사진과 함께 문자가 날아들었다.
안녕하세요 위혜정 작가님
반가운 소식 전해 드립니다.
교보 광화문
외국어 주간 베스트 10위에 올랐네요.
예스 24는 외국어 주간 4위입니다.
학교에서는 죽을 쑤고 있는 나에게 힘내라고 위로하는 메시지. 그래, 나는 바닥인 사람은 아니었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척박한 출판 시장에서 기라성 같은 책들 틈바구니에 얹혀있는 영어 필사책 사진에 마음이 찡하다. 왜 이리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걸까? 당혹스러움과 함께 이 시대에 마음의 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반증에 가슴 한편이 또 시큰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너도 힘들구나. 우리, 힘을 내자.
매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매일 하나씩 좋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에겐, 작지만 좋은 것 그 하나를 발견하려는 시선 하나면 된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우린 건강하게 숨을 쉬고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