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비상하도록 받쳐주는 버팀목
책을 출간하기 전에는 '과연 내 책을 출간해 주겠다는 출판사가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좌절의 구간을 오가게 됩니다. 초보 저자들이 갖게 되는 설익음과 긴장감 때문이겠지요. 휘황찬란한 글재주를 타고나거나, 갈고닦은 글솜씨를 장착하지 않는 한, 애지중지 공들여 쓴 내 글이 편집장님의 마음을 두드릴 수나 있을지, 위축감이 불쑥불쑥 찾아옵니다. 긍정의 신호로 손 내밀어 주는 출판사가 단 한 곳이라도 있다면 그야말로 기적이 될 테고요. 제가 그랬습니다.
개인적으로 운의 영역에서 만큼은 지독히도 맥을 못 추는 편입니다. 작은 경품조차 당첨되지 않는, 타고난 똥손이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껏 비껴갔던 운이라는 녀석이 몽땅 출간운으로 정산되고 있는 듯합니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한 권, 두 권 책을 집필하다 보니 어느덧 아홉 번째 개인저서 작업을 앞두고 있는 걸 보면요. 인생은 길게 보아야 한다는 옛 말이 맞긴 맞나 봅니다.
SNS 상에서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는 살가움을 갖지 못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파워 블로거나 잘 나가는 유투버도 아니고, 인스타 혹은 페이스 북에 주기적으로 새로운 피드를 만들어 올리는 부지런한 콘텐츠 생산자도 아니에요. 디지털 세계에 즉각 발맞추어 나갈 속도와 기술도 없거니와 꺼내 쓸 잉여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는 하루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저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어쩌면 시대적 흐름에서 살짝 비껴 난 느림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출판사로부터 그리 환영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저자의 홍보채널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지요.
엄청난 수의 구독자나 이웃을 거느린 분들에게 출판사의 오퍼가 많은 것은 당연한 시장 논리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대형 출판사 편집장님과의 미팅을 통해 전해 들은 사실이에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사이버상의 영향력이 판매 실적으로 연결되기에 그분들께 먼저 연락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요. 소셜 미디어 파워를 등에 업지 못하면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을 확률도 낮아 보입니다.
'출판 시장에서 콘텐츠의 매력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공식이 은연중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저자로서 인지도가 전무하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기껏해야 브런치에 글을 끄적이는 게 다인지라 내용으로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고 뒤처진 스스로의 모습을 채근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 물론,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책판매고에 큰 영향력을 준다는 믿음은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고, 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인지도와 콘텐츠 경쟁력 외에 책을 비상하도록 받쳐주는 또 다른 힘이 있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 요인이 무엇일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로, 출판사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출판사의 규모나 인지도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1인 출판사라고 해서 책이 안 팔리고 유명 출판사라고 해서 책이 잘 팔리는 건 아니더라고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영향력,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물아래 발길질이 떠오릅니다. 제가 말하는 출판사의 힘이란 출간 이후 유통과 마케팅 과정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홍보'에 힘을 기울이냐, 즉 출판사의 지속적인 후속 뜀박질을 의미합니다. 서평이나 사이버상의 노출 빈도 공략은 기본이고 그 외에 다방면의 홍보전략을 논의하고 실행하는 출판사의 열정은 플러스알파의 힘을 갖습니다.
얼마 전, 2쇄를 찍는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2차 후속 마케팅 회의를 한다는 편집장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후속 홍보, 이게 뭘까 궁금했습니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거든요. 아마도 이전 책작업에서는 저자에게 귀 뜸 없이 물밑작업을 해주었을 출판사만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찌 되었건 처음 인지하게 된 출판사의 의지와 실행, 열심히 뛰어주는 그 땀 흘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기분 좋은 바쁨'이라고 표현해 주셨던 후속 홍보, 과연 얼마나 큰 결과의 차이를 보여주었을까요?
깜짝 놀랄 만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지 2주도 채 안 돼서 4쇄를 찍는다는 연락을 받았으니까요. 지인의 제보와 제 눈에 걸려든 오타까지 수정해서 책이 재쇄 되기 무섭게 3쇄를 건너뛴 4쇄 소식이라니요. 저자의 낮은 인지도와 이미 포화상태인 영어 필사 시장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출판사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출간 시기가 계획 보다 한 달 이상 밀려 버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하게 유명인들의 영어 필사책이 신간으로 나와 걱정이 많았어요. 이제야 한시름 놓습니다.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열심히 책을 만들고 뛰어주신 덕분에 저도 학생들과 함께 편안히, 그리고 매일 필사하고 있습니다. 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출판사와 책을 찾아주시고, 사랑해 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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