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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BJ Oct 21. 2022

비싼 배추 대신 알싸한 돌산갓으로 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김장용 절임배추 사전 예약 판매> 동네 마트에 붙어 있는 걸 보니 벌써 김장철이 다가오나 보다.

하긴 우리 집 김치통도 오래전에 바닥이 났는데 겨우 배추 한 포기 정도 사다가 겉절이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 배추값이 떨어지겠거니 했는데 여전하다. 

아직 10월이라 김장철까지 기다리기엔 한참 남았는데 어쩔까 고민이다.

우리 입맛은 이미 맛있는 김치 맛에 길들여져 겉절이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 

식구들은 슬슬 내 눈치를 살피며 김치 타령을 한다.

예약한 김장배추가 도착하려면 아직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데...


마트에 둘러보니 돌산갓이 싱싱해 보인다. 

'벌써 가을 갓이 나왔네~.. 톡 쏘는 갓김치가 또 제 맛이지.'

두 단만 할까 망설이다 배추보다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져 세 단을 집었다.


전에 언니가 보내 준 갓김치에 쪽파가 섞여 있던 것이 생각나 쪽파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데 판매하시는 아주머니가 거든다

"갓김치에는 뭐니 뭐니 해도 쪽파가 들어가야 해요. 

갓 세 단이면 쪽파 한 단은 족히 넣어야 맛이 나지" 공식이라도 정해진 것 마냥 자신에 찬 목소리다.

밭에서 방금 뽑아 온 듯 파뿌리에 달린 흙덩이가 촉촉하다

"아-휴~ 이 걸 언제 다 까?" 자잘해서 까는 데 반나절은 걸릴 것 같은데요~"

"일 삼아 까면 금방이에요.~" 별 일 아닌 듯 말하는 투가 우리 언니와 닮았다. 

모르긴 해도 김치 담그는 일 정도는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쪽파 까는 일은 남편 찬스를 쓰기로 하고 떠밀려 쪽파 한 단도 카터에 담았다.


솔직히 주부 30년 차라고 하지만 김치를 직접 담가 먹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주부 10년 차 까지는 시어머니가, 그다음은 언니들이 번갈아 김치를 공수 해준 덕에 호사를 누렸다.

덕분에 맛있는 김치 맛의 기준만 높아져 식구들도 사 먹는 김치는 잘 안 먹는다.


이제 더 이상은 언니들에게 염치가 없어 김치 부탁하기 어려워졌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언제부턴가 언니들의 체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말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김장이란 걸 했다. 남편과 둘이서 첫 김장을 해내고 가득 찬 김치통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해했던가!

다년간의 주부 경력으로 배운 눈썰미와 언니들의 조언, 블로거님들의 레시피를 두루 살피고,

언니들은 반나절이면 뚝닥해냈을 일을 둘이서 하루 종일 걸려 김장을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 온 둘째 언니가 "오래 살다 보니 네가 만든 김치 맛도 보네~ 맛있다."

맛있다는 한마디에 으쓱해하며 남편 앞에 폼을 잡았다. "이래 봬도 주부 경력 30년 차라고~"

그 이후로 김치 담그는 일에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선지 갓 세단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고백컨데 갓김치 담그는 일도 이번이 처음이라 언니랑 한참 통화를 해야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갓을 다듬어 절이고, 찹쌀이 없어 대신 밀가루풀 쑤고, 양념 만들기 순서대로 일을 진행한다.

손톱 밑에 새까만 물이 들도록 쪽파 까는 일에 몰두하던 남편은 흙 묻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공치사를 한다 "눈물 한 바가지는 흘렸겠다~."

멀찌감치 서 있는 나도 눈이 매운 걸 감안하면 공치사 만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돌산 갓은 보기와 다르게 줄기가 연해서 배추보다 절이는 시간이 짧아 김치 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갓 감치 초보님들을 위해 돌산 갓김치 담그는 법을 공유해보기로 한다.


 

[돌산 갓김치 담그는 법]


[재료 준비]

-돌산 갓 3단 (6kg 정도),  쪽파 1 단(1kg 정도)

-간 절이기 : 물 5L에 천일염 2컵 녹여줌.  줄기에 뿌려 줄 천일염 1컵

-양념 1 

: #밀가루 풀(or찹쌀 풀) 2컵 반.  고춧가루 4컵.  고운 고춧가루 1컵.  

까나리 액젓 1/3컵.  멸치 액젓 1/3컵.  새우젓 1/3컵.  갈치 속젓 2큰술.  소금 2큰술

매실액 1/2컵. 설탕 1/3컵

통깨 약간

-양념 2 (믹서에 갈아 줄 재료)

: 마늘 10알.  생강 3톨.  양파 1/2개.  사과 2개.  홍 청양초 10개


#멸치 육수 내기 - 물 2L 정도에 다시 멸치 반 줌. 다시마 한 조각. 무 한 조각. 양파 속껍질.. 대파 뿌리/잎을 넣고 10분 정도 우려 내 넉넉하게 준비한다

#밀가루 풀 쑤기 - 멸치 육수 3컵을 식혀(뜨거운 물에 밀가루를 풀면 덩어리가 진다) 밀가루 1컵을 잘 풀어 준 다음,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가며 약불에서 보글보글 끓여 식힌다.


*Tip. 김치 양념은 모자라지 않도록 넉넉하게 만든다. 남은 것은 꽁꽁 싸서 냉동실에 뒀다 다음 김치 할 때 쓰면 아주 유용하다.



<갓김치 만드는 과정>


[1] 갓을 잘 다듬어 흙을 대충 씻어낸 다음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 5L에 천일염 2컵을 녹여 갓 위에 골고루 붓는다/ 대야를 기울여 절임물이 골고루 스며들도록 해준다.

   ( 소금 한 컵은 줄기 부분마다 조금씩 뿌려 고루 절여지도록  한다)


[2] 3시간 정도 절여 줄 거라 1시간 정도 지나면 위. 아래 위치를 바꿔 절임물이 고루 가도록 다독거려주고, 

대야의 절임물이 줄기 쪽에 적셔지도록 기울여 준다.


[3] 갓이 절여지는 동안 양념 만들기를 시작하는데, 

먼저 #멸치 육수를 끓여 식혀 #밀가루 풀을 쑨다.(or찹쌀 풀)


[4] 믹서에 갈아 줄 양념 재료를 갈고, 밀가루 풀+고춧가루+액젓을 넣고 섞어 고춧가루를 불린 다음, 

믹서에 간 재료를 부어 골고루 섞어 최종 양념을 만든다. 양념 간을 보고 부족한 양념을 추가해 입맛에 맞춘다. (*Tip. 짤 수 있으니 처음엔 양념을 약간 싱겁게 맞추어야 나중에도 수습이 가능하다)


[5] 절이기로 되돌아가서- 2시간 반 정도 지나 줄기를 구부려 봤을 때, 잘 휘어지면 씻어야 할 타이밍이다(*Tip. 요 타이밍이 김치 맛을 좌우한다)


[6] 절여진 갓은 물에 2~3번 헹군다. 

특히, 넓은 이파리 속을 잘 흔들어 씻어 줘야 숨어 있던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다.


[7] 채반에 건져 물기를 쫙 빼주고 쪽파도 씻어 물기를 뺀다. (쪽파는 따로 소금 절임은 하지 않는다)


[8]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면 갓을 조금씩 덜어내 쪽파를 한 움큼씩 곁들여 가며 양념을 치댄다.

(*Tip. 한꺼번에 많은 양을 넣고 버무리면 양념이 뭉쳐 골고루 간이 배어들지 않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할 것!)


[9] 통깨 솔솔 뿌려 통에 담으면 완성! (기호에 따라 실온에서 숙성시키거나, 냉장 보관한다)




완성하고 보니 내가 보기에도 그럴싸하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인 것 같고... 맛은 어때?" 물으니, 식구들이 엄지 척척척! 을 연발하며 비행기를 태운다.

오늘 우리 집은 갓김치 파티다!

생김치에 돼지고기 수육은 필수과목 이라며, 진작부터 솥에선 김이 풀풀.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타고 밖으로 흘러 나간다.

"여러 사람에게 민폐 겠는 걸~! 하필 배고플 시간인데 이건 반칙이야~~!" 딸아이의 흡족해하는 목소리에서도 구수한 맛이 나는 것 같다.


드디어 탱글탱글하게 잘 익은 수육을 꺼냈다. 음~~ 구수한 맛 좋은 냄새!!

"우리도 채식을 해 보자"던 딸이 가장 먼저 젓가락을 들고 달려온다. 늘 마음으론 실천 중이겠지.

원래 나는 얇싹한 수육을 좋아하는데 옆에 지키고 선 아들이 칼질하기가 무섭게 더 더 더 두껍게를 주문한다.

에라 모르겠다~~ 큼직하게 찹찹찹 썰어 접시에 담아냈다.

갓 한 줄에 도톰하고 야들야들한 수육 한 점 올려주고, 기다란 파김치도 한 줄... 톡 쏘는 알싸한 맛이 고기와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음~~ 바로 이 맛이야!~" 옛날 옛적 유행이던 카피 한 줄인데 남편만 알아듣고 맞장구를 친다. 

역시 우린 갑장이야ㅎㅎ

그런데 그 많던 쪽파는 다 어디로 갔을까?  파 한 단으로도 부족한 듯 존재감이 미미하다.

사냥하듯 속에 파묻힌 쪽파 한 가닥을 겨우 뽑아 올렸는데 마주 앉은 남편 얼굴에 양념 투성이다.

"쏘리~~ㅋㅋ"

이렇게 해서 돌산 갓김치의 첫 경험은 대 성공이었고, 주저 없이 올 겨울 김장 품목에도 갓김치 추가!

은근 김장할 날이 기다려지는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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