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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BJ Nov 16. 2022

건강검진에서 생긴 일

살면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들이 몇 있는데, 그것은 치과에 가는 것과  산부인과에 가는 것, 그리고 건강검진받는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 이 세 가지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해 가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기에 매번 밀린 숙제를 치러 듯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건강검진을 받아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결과지를 열어 볼 때의 떨림은 마치 합격이냐 불합격이냐의 통보를 받는 것만큼 긴장되는 순간이다.

2년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떨림의 강도는 더 세게 다가오는 것 같다.


올해는 딸이 다니는 회사에서 행하는 가족 할인 혜택을 받아 특별히 더 꼼꼼한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검진할 항목들은 늘 해 오던 것이라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위 내시경 검사는 여전히 나에게 가장 두렵고 힘든 항목이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수면 내시경이 보급되기 전, 직장 의료보험(건강보험)으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간호사가 건네주던 뽀얀 우유처럼 생긴 액체를 한 컵 마시고는 느글거리던 속을 겨우 달래고 있는데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지고,  얼떨결에 침대에 누워 콩나물 보다도 훨씬 더 기다란 호스가 목에 걸리는 대참사를 경험해야 했다.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포기한 채 눈물 콧물에 마우스피스 같은 걸 물어 벌어진 입에선 침 범벅에 구역질까지...

고작 3분이 30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땐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일이라  뭐가 뭔지 모르던 상황이었기에 그나마 치를 수 있었지만, 두 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후로 그 기억 때문에 위 내시경 검사 대신 위장 조영술 검사를 선택했다.

그 또한 삼켜야 하는 약물이 만만치 않게 고역스러웠지만 적어도 기다란 호스가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수면 내시경이 보급되면서 위 내시경 검사가 훨씬 편해졌다는 소식을 들어 안심할 수 있었다.


예약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하고 건강검진센터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센터는 사람들로 붐볐고 마치 공장에서 기계가 돌듯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고 다음 단계로 이동하느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 또한 일복?으로 갈아입고 그 대열에 합류했다.

"매번 여기 올 때마다 무서워~"

신혼부부쯤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남 일 같지 않게 들려온다.

'급 공감이요~!' 옆에 있던 딸과 눈빛으로 교환했다.


원활한 수행을 위해 우린 각자 플레이를 했는데 딸은 순서를 살짝 바꿔 수면 내시경을 먼저 해야겠단다.

마취에서 자신이 먼저 깨야 엄마를 케어할 수 있다며 유난을 떨었지만 솔직히 꽤나 안심이 되었다.


안내에 따라 손목에 찬 태그를 찍고 개인 정보가 적힌 차트를 꽂아두고 기다린다. 

이름을 부르면 손목에 찬 번호를 대조하고, 검사를 받고... 다음 단계로 이동... 이렇게 해서 무리 없이 미션을 완수하고 드디어 마지막 코스인 위 내시경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문득 몇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수면 내시경이 처음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은 얘기가 많아 담담하게 임할 수 있었다.

단지, 간혹 마취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지라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했다.


"주사 바늘 들어갑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그랬는데,.... 어렴풋이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물건들이 부딪치는 소리...

'어라? 이건 무슨 상황? 마취가 제대로 안 되었구나!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이전 내시경 트라우마가 생각나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어쩌지...? 이 상황에 창피함이 문제인가? 이야기를 해야지.'

"저기요~ 간호사님~!" 그 와중에 용기를 냈다.

말이 제대로 안 나왔지만 안간힘을 써 간호사를 불렀다.

"저~아무래도 마취가 아직 덜 된 것 같은데요~?"

"깨셨어요~? 검사는 잘 끝났고요~ 걸을 수 있으면 나가셔도 됩니다~."

"네에~? 검사가 끝났다고요?"

그때의 황당함이란.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안도감에 큰 숨을 몰아 쉬며 그제야 부끄러워 재빨리 병실을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기실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는 (지난번의 경험을  올리며) 이번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마취 들어가는 순간을  기억해야지 다짐했다.

"베개 쪽으로 머리 두고 옆으로 누우세요~. 마취 들어갑니다. 마취되는  저희가 봐야 하니  감지 마시고 뜨고 계세요~."

'바라던 말씀!. 안 그래도 마취되는지 꼭 확인할 거임.'

속으로 한번 더 다짐하며 최대한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    '깜빡'  같은데 주변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소리... 소리들...

'휴~~ 마취가 깼나 보군! 이번엔 말도 안 되는 질문 따윈 하지 않아도 되겠어.'.

밖에서 딸이 걱정할까 봐 신경이 쓰여 더 누워 있어도 된다고 하는데 굳이 일어났다

"걸을  있겠어요~?. 소지품 챙기시고요~ 마스크는 귀에 걸려있습니다~."

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아직 정신이 몽롱하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내딛는데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폰을 챙겨 들고 마스크를 찾는데 안 보인다.   

"마스크가... 없는데요~?"

"귀에 걸려 있네요~."

'이 그 그~~~ 이런! 또...'

마취가 덜 깨 좀비처럼 걸어 나오는 나를 본 딸이 약간 걱정스레 물었다.

"좀 더 누워있지~. 이번엔 마취 잘 됐어?ㅋㅋ"

마스크 건을 얘기    없어 상황 재연을 했더니 "역시 우리 엄마 맞네~" 한다.

아빠랑 또 얼마큼 제 엄마를 놀려 먹을지...


모든 미션을 무사히 수행하고 센터에서 나눠준 쿠폰으로 죽집을 향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약간 신경 쓰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밀린 숙제를 해치운 듯 홀가분하다

미리 대비하는 차원의 검진이라고 해도 늘 긴장되는 걸 보면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구나 싶다.


병원 가는 걸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니 간단한 검사에도 긴장되고 온통 신경이 쏠린다

<아는 게 병이고 모르면 약이다>는 옛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이유다.


의학적 전문 지식이 없는 내 소견으로는, 특별한 질병이 없다면 2년마다 종합검진을 할 게 아니라,

피검사로 대체하고, 피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올 경우 정밀 검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의 검진은 꼭 필요한 일이겠지만, 어쩌면 현대인들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을 자주 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는 하루 불편함을 감당하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더 좋을 거라는 게 내 결론이다.


간혹 결과가 두려워 건강검진을 못 받는 분들께 작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걱정의 90%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


추신.

엄마의 글을 발행 전 읽어보다 건강검진 날 우리를 가장 웃게 만든 방구사건(?)이 생략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도 엄마는 시크릿 한 것으로 남겨두고 싶어 그랬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위내시경 후 가스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조직검사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 일정량의 가스를 주입하기에, 평소보다 잦은방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엄마'만'의 문제가 절. 대. 아님을 공표하며 마음 편하게 그날 우리 가족을 웃긴 사건을 공유해본다.


사건의 발단은 건강검진 후 탈의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엄마에 이유를 물으니 '아니 가스가...'라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탈의실에 우리뿐이어서 기꺼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가스 배출을 승낙했다.

막상 판을 깔아주니 거기서는 안된다고(?) 그러더니 나가는 길에 시원했음이 분명한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하필 내가 뒤에 있었으나, 엄마 피셜 소리는 크지만 냄새는 나지 않는 방귀였으므로, 그런 것으로 믿기로 했다.

그렇게 죽집을 향하는 길에 우리 둘 뿐이었던 덕분에 로켓 같은 소리를 수도 없이 내며 걸어갔다.

뿡뿡이가 아니냐며 깔깔거리며 죽집에 도착해 예약을 하고 앉았다.

앉아있는데 엄마는 갑자기 엉덩이를 살짝 드는 시늉을 했다.

방구를 뀔 것 같은 제스처?를 너무 대놓고 취하기에 당연히 장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부앙!!!!!!' 하는 소리가 났다.

잠시 정적 후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내시경 후에 그렇게까지 배 아프게 웃어도 되는 걸까 싶게 웃었다.

엄마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사운드였다며 진짜 시늉만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시경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시경은 엄마 혼자 받았냐고, 가게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이건 사과해야 할 정도라며 엄마를 놀려댔다.

다행스럽게도 애매한 오후 시간에 건강검진을 받은 덕분에 오후 세 시경 죽집엔 사람이 없었다.

우리의 죽도 아직 나오기 전이었기에, 그 상황에 방구로 인한 피해(?)를 본 건 나 하나였음이 새삼 다행스럽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죽을 먹고, 코로나 이후 조금은 활성화되었다고 하는 명동 거리를 걸으며 남은 가스를 다 내보내고서야 집으로 귀가했다.

엄마와 함께해서 평소보다 덜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진행했던 건강검진이었다.

건강검진이 무서운(?) 20대에게 부모님과 함께하기를 추천한다.

부모님을 챙기느라, 평소처럼 내 걱정 같은 건 할 시간이 없다는 장점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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