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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미 Nov 23. 2022

아버지의 전기밥솥


'밥이 완성되었습니다! 밥을 잘 저어주세요 쿠쿠~~'

경쾌하고 친절한 알림 소리.

'저 친구 목소리 오랜만에 들어본다. 오늘따라 더 크게 들리네~.'

'일 하는 시간이 줄어든 전기밥솥이 퇴출될까 불안했나?'


구수한 밥 냄새를 맡으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식구가 적어)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해서 햇반처럼 냉동실에 두고 그때그때 데워 먹다 보니

아무래도 밥솥의 존재감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불안감을 잠재울 요량으로 요즘은 일부러 전기밥솥으로 고구마도 찌고, 죽도 끓이고, 닭볶음탕까지 다양한 요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사용해 보니 요리 종류에 따라 가스불에 한 것과 맛의 차이가 약간 있긴 해도 편하긴 하다. 적어도 가스불에 올려놓고 딴 일 하다 넘치거나 눌어붙는 참사는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기밥솥 예찬을 하려는 건 아닌데 얘기가 잠시 딴 길로 샜다.




밥솥 뚜껑을 열려다가 화면에 보온상태를 알려주는 <OH>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취사가 끝나고 보온 상태로 넘어간 시간을 표시해주는 '숫자 0 알파벳 H'

<보온 상태로 넘어간 시간을 알려주는 OH 표시>


"'영' 하고 '사다리'가 나오면 밥이 다 되었다는 표시더라."


알파벳을 배운 적 없는 95세 아버지의 새로운 발견!  '유레카'를 외치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밥 먹고 가지~. 밥솥에 밥 안쳐놨다~."

90 평생 밥이란 걸 손수 지어본 적 없었던 우리 아버지. 남자가 부엌 근처에는 얼씬거려서도 안 되는 세상?을 살아오셨던 아버지께 커다란 변화가 왔다.

이건 우리에겐 거의 혁명 수준이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서 나오지 못한 엄마의 빈자리가 그래서 더 크게, 아프게 다가와 한편으론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불과 몇 해 전 아버지는 돌연 가출을 감행하셨다.

"야들아! 느그 아버지가 없어졌다. 휴대폰도 없는데~."

어느 여름날 날벼락같은 소식에 우리 칠 남매는 비상이 걸렸다. 집히는 데가 있다며 큰오빠는 곧장 그리로 달려갔고, 역시 아버지를 찾았다는 연락에 그나마 안심을 했다.

70 평생을 아버지 바라기로 살아온 엄마에게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가셨던 모양이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로 걸음을 옮겨야 할 만큼의 구순 넘은 노인네가 혼자 지하철을 갈아타고, 버스터미널까지 찾아가 표를 끊고,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조상님들의 산소가 모여 있는 선산 밑에 조그만 농막이 있는데

거기서 혼자 지내겠다고 아버지는 한사코 고집을 피웠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여기로 모시고 올게요."

먹을 것도 없는 이 삼복더위에 어떻게 혼자 지내냐고, 가당치도 않다고 반은 협박을 해도 소용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는 엄마대로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배신감에 입맛도 잃고 우울증에 몸져누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열아홉에 시집 온 엄마는 70 평생을 남편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헌신했다.

아버지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아채고 수발을 들었던 엄마는 (그 시대의 아내들이 대부분이 그랬듯이)

그걸 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아오셨기에 엄마의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뚝뚝하긴 해도 아버지 또한 외출했다 집에 오시면 첫마디가 "느그 엄마는?." 하셨던 것만 봐도 두 분의 금슬은 꽤나 좋은 편이었다.

"내가 안 챙겨 주면 한 끼도 못 얻어먹을 양반인데.."

그랬는데, 아버지의 이번 돌발 행동에 엄마는 당신의 70 평생이 부질없고 하찮은 취급을 당한 것 같은 상실감이 컸던 모양이다.


냉방 시설도 없는 농막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당신의 온돌 침대까지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셨고, 전기밥솥에 TV까지 설치해달라고 하셨다.

(아마도 그때 전기밥솥으로 밥 짓는 방법을 터득하신 게 분명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차례대로 아버지 농막을 드나들던 식구들은 더위에 지쳐갔고, 아버지의 유별난 고집을 꺾지 못해 손주들까지 동원되었다.

"할아버지! 이러시다 큰일 나요~. 예사 더위가 아니잖아요~."

결국 아버지는 손주들한테는 못 이기는 척, 아니면 집으로 귀가할 명분이 필요했던 차였던지,

더위에 숨이 막힌다며 거의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오셨고, 아버지의 가출 사건? 은 그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아버지... 아무래도 치매 아닐까?"

치매라고 하기엔 매사에 너무 또렷하고 분명해서 도저히 그 이유를 갖다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 그랬는지... 엄마한테는 말씀하셨을까? 엄마는 납득을 했을까?

우리 중에 아무도 아버지의 가출? 이유를 끝내 알지 못했고, 엄마의 가슴앓이도 차츰 치유가 돼 가는 듯했다.

그러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정작 걱정했던 아버지보다 엄마가 먼저 쓰러져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 혼자 남게 된 것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엄마가 완쾌되어 돌아오실 거라는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 버티시던 아버지는

엄마보다 먼저 하늘 나라고 가셨고, 그런 사실조차도 모른 채 엄마도 3주 만에 아버지 뒤를 따라가셨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밥 안쳐놨으니 밥 먹고 가라'시던 아버지를 뒤로 하고 서둘러 나왔던 그날이 무척 후회된다

이렇게 금방 우리 곁을 떠나실 줄 알았더라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해 주시는 밥맛을 봤을 텐데..

집안에 퍼진 밥 냄새가 불현듯 아버지를 소환했다.

'보온 <OH>' 아버지의 전기밥솥에도, 우리 집 밥솥에도 사다리 표시가 선명하다.

괜스레 콧날이 시큰해진다

생전에도 자주 연락 못 드리고 그저 명절 때나 찾아 뵐 정도로 그리 다정했던 부녀지간도 아닌데,

아버지는 이렇게 불쑥불쑥 내 일상에 나타나 안부를 묻곤 하신다.

"느그 엄마 만나 잘 살고 있다. 우리 걱정 말고 잘 살거래이~."

'아버지!  오늘이 엄마 생신인 거 아시죠?  두 분 손잡고 소풍 다녀오실래요~.'



*추신: 아버지는 가출사건? 이후로, 젊은 날의 지인(오래전 고인이 된 사람)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며 혼자 중얼중얼하시는 일이 가끔 있었다고 한다.
기억력이 또렷해 치매는 아닐 거라고 장담을 했었는데 아마도 노인성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돌발 가출 사건과 무관하지 않았음이 짐작되니, 혹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분이 계시다면 평소보다 더 신경 써 지켜봄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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