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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BJ May 15. 2023

MZ 세대의 양배추 자르는 법

어깨 골절로 6주 진단을 받고 이제 겨우 5주가 지났다.

뼈가 제대로 붙고 나서도 재활치료를 몇 개월 더 받아야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매사에  갑갑하고 답답해 체감상으론 1년은 된 듯하다.


막상 꼼짝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니 집안 구석구석 눈에 띄게 거슬리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식구들도 저마다 주된 일들이 있으니 집안일은 아무래도 뒷전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방구석 늙은이처럼 잔소리만 늘어간다.


평소에도 청소는 남편이 거의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깨끗이 했던 안 했던 별 신경 쓰지 않고도 잘 지내왔는데, 새삼스레 장학관 온다고 청소 검열하던 선생님 코스프레라니ㅎㅎ

 ‘내로남불’이란 말을 이럴 때도 쓰던가 생각하며 잠시 양심이 찔리기도 한다.

평상시의 나도 집안일이 하기 귀찮아 대충대충 하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집안 청소뿐만 아니라 식구들 끼니도 걱정이다.

최근 우리 집 냉장고 사정을 살펴보니 약간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 전 언니가 와서 채워 놓은 재고들은 거의 소진되었고 김장김치도 바닥이 보인다.


임시방편으로 각자도생?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 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쯤 되니 남편을, 때로는 아들을 아바타로 세워 무슨 수라도 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은 딸과 아들의 성향이 보편적인 것과는 반대다.

아들이 10분이면 될 설거지를 1시간을 해도 다 끝내지 못할 정도로 딸아이는 집안일에는 영 잼뱅이고, 요리에도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다.


'잘하는 사람이 각자 잘하는 일을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딸의 주장에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딴지를 걸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부엌일은 아빠랑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은 아들 몫이다.

다행히 자신의 역할에 별 불만은 없는지 아들은 종종 뭔가 요리를 만들어 보겠다며 일을 벌이기도 한다


“뚝딱뚝딱...”

부엌이 소란스럽다.

휴일이라 오늘도 아들 녀석이 셰프를 자청한 모양인지 냉장고 재고 상태를 점검하는 중이다.


“오늘 메뉴는 뭐임?”


각자가 먹고 싶은 요리 한 가지씩 제안해 보란다.

(제안하면 다 되나? ㅎㅎ)


“떡볶이, 샌드위치, 냉면, 피자, 스파게티... “

그때, (내 손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여긴) 남편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강된장에 찐 양배추 쌈.’을 외쳐본다.


그랬는데, 의외로 ’ 강된장 양배추쌈‘ 메뉴에 모두 표를 던졌다.

그렇잖아도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모두가 진짜 집밥 같은 음식이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트에 간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밥을 안치고, 내 주문대로 뚝배기에 된장을 넣고,

어설픈 칼질로 재료를 다듬고 썰어 강된장 만들기 도전이다.


“음~~ 오랜만에 집에서 집밥 냄새가 나네.”

커다란 수박통 만한 양배추 한 통을 사 들고 온 아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이렇게 큰 걸 언제 다 먹어~. 오래 두면 상해서 버리게 될 텐데...”

요리에 직접 관여하지 못하는 나는 실로 재고 처리가 더 걱정이다.


도마에 실험체(양배추)를 올려 두고 칼을 든 아들은 요리조리 재더니 확신에 찬 재단을 감행한다.

옆에서 보던 나는 미덥지 못해 몇 번이나 간섭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지켜보았다.


쓰윽쓰윽- 양배추 옆퉁이를 사정없이 자른다.

”이런 방법도 있었네~. “

솔직히 오랜 주부인 나도 양배추 한 통을 해체하자면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유튜브에~. 나름 공부 좀 했지ㅎㅎ. “

으쓱하며 거들먹거리는 아들의 손놀림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정보화시대를 실감하며 유용한 정보를 공유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뽀글뽀글 강된장 끓는 소리와 구수한 밥냄새도 한몫해 식욕을 자극한다.

알맞게 찐 양배추 쌈이 커다란 쟁반에 한가득 담겼고, 보글보글 짭짤한 강된장도 곁들였다.


어느새 그 많던 쌈도, 밥그릇도 바닥이 드러나고, 양 볼이 미어지도록 큼직한 쌈을 감당하기 버거운 턱관절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정작 배가 찰대로 찼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밥도둑 운운하며 과식을 하고 말았다.


”이런 건강한 음식은 과식 좀 해도 돼~. “

<여우와 신포도의 우화>처럼 우리 좋을 대로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맛있는 것 먹고 배 부르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오늘도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양배추 자르는 방법 공유하기>


-양배추 한 통의 겉면을 씻어 뿌리 쪽이 아래로 향하도록 놓고 4면을 일정하게 잘라낸다.

-4면이 잘라진 양배추는 위에서 보면 중간 부분이 네모 모양으로 남는다.

-중간 네모 부분은 심지가 없는데 까지 가로로 칼집을 내어주면 적당한 양의 잎 부분만 남는다.

-나머지 자른 양배추는 씻지 말고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해 두고 용도에 맞춰 활용하면 된다.

-먹을 만큼의 양을 씻어서 찜기에 물을 붓고 5분 정도 쪄내면 맛있는 찐 양배추쌈이 탄생한다.

-양념장은 취향대로 강된장, 양념 맛간장, 쌈장 등등 곁들여 먹으면 건강한 한 끼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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