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모린 파젠데이로/미겔 고미쉬
8월을 뜻하는 단어가 반대로 적혀 ‘트스거오’라는 제목을 만들어냈듯, 영화는 22일 동안의 이야기를 역순으로 배치한다. 앞선 배경과 사건들을 알지 못한 채 가장 이후의 이야기부터 보게 되는 우리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의문을 가지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 속에서 촬영되고 있는 영화인지, 그 외부의 모습인지. 배우들은 배우인지, 캐릭터인지, 혹은 둘 다인지.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역순으로 이어지는 것이 서사뿐이라면 일기장을 뒤에서부터 펼쳐 읽듯 머릿속에서 장면들을 재배열시켜 이해하면 되는 일이겠지만,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구조 또한 특이해서 어려움을 준다. 모호한 구분 속에서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영화를 이해해 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길을 잃을 뿐이다. 길을 잃지 않고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영화에는 허구와 실제를 구별하는 지점들이 몇 군데 존재한다. 영화 속 영화에서는 허구의 세 캐릭터 사이에서 로맨스가 진행되지만, 그 외부에서는 실제로 각자의 애인이 있다. 카를로토는 통화를 하고, 주앙은 편지를 쓰고, 크리스타는 함께 길을 거니는 모습으로 그 존재를 인지시킨다. 또한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가 프레임에 들어오면 우리는 그 장면을 실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영화 속 영화는 허구이며 그 외부는 실제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무시할 수 없었다. 프레임 속에 스태프 없이 세 배우의 모습만 담긴다 하더라도 그 장면이 무조건 허구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셋이서 양산을 쓰고 매머드와 코뿔소 이야기를 하던 모습은 영화 속 영화의 장면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게 허구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스태프들 역시 연기자이며, 영화를 만든다는 설정 또한 이 영화 속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허구 속에서 실제를 발견하게 된다. 이전처럼 모호한 실제를 찾으려 하지 말고 사소하지만 확실한 실제에 집중하면 우리의 시야는 이전보다 풍부하게 채워진다. 가령 상했던 모과가 신선해지고, 나비가 애벌레가 되는 장면들 말이다. 이야기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변화들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시선을 끈다. 화창한 날 울창한 풀과 꽃 사이를 오가며 물을 주는 크리스타의 모습, 모기를 피해 방에서 나와 나비 집에 몸을 누인 카를로토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여름 향기가 느껴진다.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은 영화 속 구조를 분해하고 있는 것보다 허구일 수 없는 자연의 모습과 우리가 실제로 느껴본 적 있는 감각들을 상기하는 일이 영화를 보는 일에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본 마지막 날이자 그들의 첫째 날, 모두가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영화 제작 허락을 받아내는 장면에서 이것이 실제인지 연출된 영화의 한 장면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 모두 코로나를 경험해 봤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적이 있다. 그 경험과 감정에 집중하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영화는 어느새 입체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모두가 성공적인 시작을 축하하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우리는 영화 첫 장면의 세 배우가 춤추는 모습을 겹쳐 본다. 그것은 허구이고 이것은 실제일까. 또 다시 이런 생각이 스치지만 감상에 방해되는 분석은 넣어두고 그들의 즐거운 몸짓에 함께 고개를 까딱이다 보면 아무래도 좋을 기분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