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해야 할 일>
<해야 할 일>
박홍준
작품이 현실을 직시했을 때 불편함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그 이유는 높은 확률로 자신이 외면하고 싶은 일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이라는 주제로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늘 논쟁 거리가 만들어지곤 한다. 그 작품의 스토리와 유사한 실제 사건이 언급되고, 감독이나 배우의 정치 성향을 유추하며 작품을 비판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집중하지 않고 그 외부의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로 인해 작품의 본질이 흐려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은 언제나 씁쓸하고 안타깝다. 과연 이 주제는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이 작품을 보며 조금은 찾은 기분이다.
인사팀으로 부서 이동을 하자마자 구조조정이라는 큰 업무를 함께 맡게 된 준희는 여태 다른 부서에서 하던 대로 능숙한 문서능력을 활용해 일을 해나간다. 구조조정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회사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 사회운동을 하고,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하지 않는 준희의 사회의식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구조조정 업무를 거리낌 없이 돕는 게 관객에게는 의문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여자친구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어머니께 심술 섞인 말을 던지는 장면을 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이자 여전히 내면에 잠재된 의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나쁘거나 착하다는 단면적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을 보여 준다.
인사 업무라는 건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일보다 정신적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서류 속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회사생활에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가 해야만 한다.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직원들에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날이 지날수록 수척해지고 피로한 낯빛을 띠는 인사팀장 또한 입체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회사 외부의 인물을 많이 등장시키지 않고도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은 전개가 가능한 건 적은 비중의 인물까지 입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입장의 인물도, 구조조정을 당하는 입장의 인물도 어떤 뚜렷한 감정 상태를 지속해 나타내지 않는다. 이러한 인물의 입체성이 노동을 다루는 픽션으로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필수 요소가 아닐까.
작품의 중간중간 스쳐가는 익숙한 풍경과 구호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보여 주면서도 준희의 잠재된 의식을 건드리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정 이름이나 뉴스 화면 등 비교적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하지만 되도록 짧게 지나가면서 정치적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노동이, 인사가 사람의 일이라면 말 그대로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의견이 개입되기 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이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 그게 해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