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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국 Jan 23. 2024

사람답게 산다는 건

영화비평 <한 채>


<한 채>
허장, 정범


<한 채> 공식 스틸컷



촬영, 음향 등 대부분의 요소가 다큐의 형식과 유사한 이 작품은 현실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소재, 자연스러운 톤의 연기로 현실성을 더한다. 모텔에 캐리어를 끌며 등장한 두 남녀의 관계가 부녀라는 걸 알기 전까지 지속되는 긴장감은, 이후 낯선 인물과 정체 모를 서류를 나눠 가지고 사진관에 갈 때까지도 잔잔하게 이어진다. 문호가 돼지코를 만들어 보이며 지적 장애를 가진 딸 고은을 웃게 만드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관객은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쥐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를 끌고 가는 문호라는 인물의 장악력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며 앞으로 진행될 예상되지 않는 전개를 기대하게 만든다. 



<한 채> 공식 스틸컷

 


사건의 전개만 봐서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느낄지도 모르는 작품이지만, 인물 간의 관계와 그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 가족극의 면모가 비교적 크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문호와 고은, 도경이 함께 살게 되면서 다 같이 아침밥을 챙기고, 출근할 때 도시락을 챙겨 주고, 서로 일을 도우며 진짜 가족처럼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후 문호가 자리를 비워 고은과 도경만 남게 되었을 때는 서툴게라도 같이 아침을 차려먹고, 함께 일을 하고, 다투고 풀기도 하면서 문호 없이 독립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셋의 관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도경의 딸, 도경의 누나와 조카까지 고은과 만나 관계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구체화시킨다.

 


<한 채> 공식 스틸컷

 


문호가 떠난 농장에 온 고은이 도경, 도경의 딸 사랑과 함께 차에서 내려 문호에게 안기는 모습을 멀리서 담은 컷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들이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난 딸,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등장하는 딸의 남편과 자식. 품에 안긴 고은이 떨어질 때까지 등을 다독이는 문호의 모습은 강하게만 보였던 앞에서와는 달리 다정하고 따뜻하다. 비록 옳지 못한 방법으로 시작된 셋의 관계이지만 서로의 존재로 조금 더 사람다운 매일을 보내는 그들을 바라보면 그저 계속해서 잘 살아가길 응원하고 싶어질 뿐이다.


 

집의 존재는 사람에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의 안정감을 준다. 이 같은 의미에서 작품의 제목인 ‘한 채’를 사물로서의 집으로 한정해 해석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개념에 비추어 설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든 돌아오면 기대 쉴 수 있는 존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옆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 존재. 그렇게까지 집을 얻고 싶어하고 낯선 남자를 고은의 옆에 두면서 무리했던 문호는 사실 딸에게 평범한 가족의 존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집이 있어야 사람답게 산다고들 하지만, 같이 있어 줄 가족이 필요하단 말 아니었을까. 더 이상 옆에 아빠가 없을 고은에게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와 환경은 어둡게 끝난 결말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 준다. ‘잘 가’라고 문호에게 인사하는 고은의 외침이 슬프게 들리지만은 않는 건, 새롭게 열릴 그녀의 세상이 이전보다 더 나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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