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진정한 Irish인 이유.
오는 15일 광복절. 킬리언 머피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펜하이머' 로 돌아온다.
이번 오펜하이머의 개봉으로 크리스토퍼 놀란과 5편이나 함께한 머피는 이제 '놀란의 페르소나'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이렇게 그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하디, 크리스찬 베일과 같은 배우들을 제치고 놀란의 총애를 받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이유를 그가 가진 아이리시(아일랜드스러운)한 매력 때문이라 사료한다.
1976년 아일랜드 제2의 수도 코크에서 태어난 킬리언 머피는 그가 태어나기 57년 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아일랜드처럼 다소 거칠고 독립적인 성향을 띠며 예사롭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런 성향은,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상업영화가 좀비 영화인 '28일 후'이며, 이후 그가 맡은 배역이 트랜스젠더, 살인자, 빌런, 갱단 두목이었던 것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렇게 그가 독특한 배역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스크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미남형 마스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두꺼운 입술과 튀어나온 광대, 깊게 파인 안골, 푸른빛 눈동자는 추후 그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나게 된다.
킬리언 머피는 '28일 후' 이후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독립영화,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중에서도 많은 대중들과 비평가들이 꼽는 그의 인생 작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피키 블라인더스'다.
머피가 나고 자란 아일랜드의 과거 독립 전쟁과 내전의 실상을 담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으며, 많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었는데, 박평식 평론가는 별 4개를 부여했으며, 이동진 평론가는 별 3.5개를 부여하며 "논쟁적 역사를 어떻게 영화로 다룰 것인가에 대한 모범례"라고 평했다.
두 번째 그의 인생작인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킬리언 머피는 그의 인생 캐릭터인 '토마스 셀비'를 만난다. 머피가 맡은 토마스 셀비는 '피키 블라인더스'라는 갱단의 두목이다.
하지만, 킬리언 머피의 체형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갱단 두목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머피는 그가 가진 연기만으로 새로운 형태의 두목이 되었다. (이는 그의 캐스팅 비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피키 블라인더스의 각본가 스티븐 나이트는 원래 토마스 셀비 역을 제이슨 스타뎀에게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킬리언 머피가 나이트에게 전화해 "나는 연기를 하는 배우입니다."라고 말해 캐스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킬리언 머피가 맡은 토마스 셀비는 기존 두목들과는 달리 우둔하지 않고, 총명하며 뛰어난 책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웬만한 시련에는 절대 당하지 않는다. 또 무리 지어서 다니는 갱단과는 달리 대개 혼자서 다니며 빠르고 탁월한 수완을 보인다. 이런 캐릭터 설정들은 킬리언 머피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토마스 셀비를 섞어주는 유화제가 되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킬리언 머피가 맡았던 캐릭터 중에서 가장 킬리언 머피와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머피의 인생 작이라고 불리는 두 작품 사이에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1900년대 초를 그린 시대극"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에서 맡았던 킬리언 머피의 캐릭터 모두 IRA라는 단체를 싫어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렇게 1900년대 초 시대적 상황을 담은 작품들이 그의 인생작으로 불리는 이유가 뭘까?
아마 그가 가진 아날로그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그의 독특한 마스크는 '시대극'이라는 장르에서 큰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 킬리언 머피 자체가 아날로그 한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킬리언 머피는 일반적인 배우들과는 달리 촬영 스케줄 관리와 의상 관리를 본인 스스로가 해결한다.
게다가 SNS를 기피하고,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하며 또 자식들의 정체성을 위해 할리우드가 아닌 더블린에서 거주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아이리시(아일랜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이제 킬리언 머피는 세기의 천재, 원자폭탄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캐릭터로 우리를 맞이한다.
과연 앞서의 시대극 캐릭터들이 그의 인생 캐릭터가 된 것처럼 오펜하이머 역시 그의 인생 캐릭터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