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쯤이면 딸을 데리러 집을 나선다.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나를 맞아줄까?’ 유치원에서 친구와 싸운 날에는 축 처진 어깨로 나온다. 신나게 놀은 날에는 ‘다다닥’ 뛰어나온다. 더 놀고 싶은데 엄마가 일찍 데리러 간 날에는 입술을 삐죽거린다. 오늘은 뛰어와 폭 안긴다. 딸을 품에 끌어안으며 “즐거웠어?”라며 속삭인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온 힘을 실어 팔을 흔든다. 마지막으로 친한 친구와는 꼭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인다. 내일이면 다시 볼 친구인데 인사만 5분 걸린다.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하는 딸은 무거운 문을 ‘끼익’ 연다. 아이를 데리러 오는 차 들이 하나, 둘 줄을 선다. 들어서는 차를 피해 딸의 손을 잡는다. 호기심 많은 딸은 한사코 내 손을 뿌리친다. “위험해 차가 움직이잖아”라며 헐레벌떡 딸의 옷자락을 잡는다. 엄마의 급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유유히 앞을 향해 사라진다. 신나게 걷던 걸음이 멈춰 선다. “미야옹” 이라며 작은 손으로 양 볼에 수염을 그린다. “맞아 고양이는 그렇게 표현하는 거야”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반쯤 돌리니 어느 집 앞에 까맣고 뚱뚱한 고양이가 엎드려있다.
몇 걸음 가다 또다시 딸의 발이 멈춰 선다? 양팔을 펴고는 위, 아래로 날갯짓을 한다. “새? 새가 어디 있어?” 라며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니 한 마리의 새가 날아간다. 이전에는 관찰만 할 뿐 몸짓으로 표현해내지 못했었는데. 눈으로 보고 작은 머리로 생각해 내며 몸짓으로 표현하는 딸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한 뼘 자랐구나’
언제부터인가 집에서도 몸짓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세탁기에서 빨래가 다 돌아갔다며 울리는 알람 소리에 “엄마”를 부르며 뛰어왔다. 두 오빠가 싸우면 급히 엄마에게 와서 손과 발을 움직여가며 상황을 재현해 주었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엄마, 냠냠?” 이라며 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목이 마르면 손을 모으고 컵 모양을 만들었다. 딸은 그렇게 소통해 오고 있었다. 감사함에 목이 메어왔다.
저녁 무렵 딸은 침대에 작은 몸을 폭 심으며 이불을 덮는다. 옆에 나란히 누운 엄마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잘 자”라며 싱긋 웃는다. 딸의 작은 팔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