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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Mar 24. 2024

딸에게 특별한 아르헨티나 선생님

‘다운천사’ 딸은 32개월에 기저귀도 떼지 못 한 채 유치원에 갔다. 느리게 크는 딸은 12개월 아이같이 작았다. 이 작은 아이를 낯선 이의 손에 맡겨야 한다니 걱정이 앞섰다. 딸을 품에 안고 유치원에 첫발을 내딛던 날 원장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원장선생님은 딸의 반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선생님은 스페인 억양이 들어간 독일어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라우라예요. 한 교실에 선생님이 4명이에요. 그중 제가 메인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 라며 교실로 안내했다. 한국인 가정에서 자라나는 딸은 독일어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유치원이었다. 선생님의 부정확한 독일어가 신경 쓰였다.


배정받은 반이라 일단은 적응해 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다운천사’ 딸이 충분히 유치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무려 한 달 동안 엄마와 함께 교실에 머물 게 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점차 줄여나갔다. 선생님은 말을 못 하는 딸의 표정을 보고 불편한 부분이 뭔지 빨리 알아차렸다. 때마다 반응을 해주며 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신나는 곡을 선정해서 틀어주었다. 같이 춤을 추며 유치원이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알려줬다. 딸을 살뜰히 돌봐주는 선생님을 보니 독일어 억양은 문제 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며 딸은 선생님을 엄마 이상으로 잘 따르게 됐다. 두 가지 언어라 말이 늦된 딸을 위해 “식사 시간이야, 나가자, 손 씻자, 옷 입자” 등 말과 함께 손동작으로 알려줬다. 그렇게 딸과 소통을 이어 나갔다. 매주 수요일이면 언어치료 선생님이 유치원으로 방문한다. 라우라 선생님은 그날 딸이 배운 자료를 공유해 주며, 유치원 놀이에도 점복시켜 그 단어를 익히게 해 주었다. 선생님의 노력이 모여 딸은 색깔을 구분하며, 숫자를 셀 수 있게 됐다. 선생님이 휴가를 떠나면 딸은 유치원 가기를 거부했다.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선생님이 돌아오는 날에는 마음이 놓였다.


겨울이 되면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유치원에 못 나오는 선생님이 늘어나면 라우라 선생님은 혼자서 종종걸음으로 아이들을 챙겼다.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딸을 일찍 데리러 갔다. 나를 발견하고는 한국말로 “고마워 “ 라며 웃어 보이는 그녀. 우리를 위해 배워뒀다던 ‘고마워’가 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병원 예약이 8시에 있던 날. 딸을 데리고 갈 수 없었다. 나의 난처한 상황을 듣고는 딸을 돌봐주기 위해 7시

30분까지 유치원에 와주었다. 딸을 안고 유치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딸을 이어받아 안고는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덕분에 병원 진료를 잘 마칠 수 있었다.


독일 선생님이었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일이었다. 아르헨티나 선생님이라 받아줬을 지도. 선생님의 진심 어린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는다. 가을 학기면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7월 여름 방학을 맞으며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한다.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선생님 덕분에 딸은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엄마 품을 떠나 맞이한 세상. 선생님은 딸에게 따뜻한 세상을 알려줬다. 헤어지는 날 울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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