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천사' 다희는 내내 막내로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야말로 뒤집어져 울어도 예쁘고 엎드려 울어도 예쁘다며 사랑을 받았더랬다. 불과 1년 전까지는 그랬다. 다희에게 사촌 여동생이 생기며 그 사랑이 나뉘었다. 1년 전 자기도 작으면서 신생아 아가를 보고 신기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세 살인 다희는 동생이 아가라며 많이 예뻐했다.
다희와 조카는 매주 한 번은 꼭 만났다. 조카가 7개월 되던 때 한국에 나가 한참을 머물렀다. 다희는 동생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다시 집안의 막내가 돼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5개월 만에 독일로 돌아온 조카는 더 이상 아가가 아니었다. 자박자박 걸어서 다희에게 왔다. 분명 누워만 있던 아가로 기억했는데. 다희는 동생의 낯선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희는 자기와 동등하게 서 있는 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낯가림이 심한 동생은 갑작스러운 거센 포옹에 몸부림을 쳤다. 다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동생이 예상과 달리 자신을 거부하자 다희는 온몸으로 화를 냈다. 헤드록을 걸어 조그마한 동생을 푹 앉혀버렸다. 엉덩방아를 찧은 조카는 통곡했다.
다희는 사촌동생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걷고 있는 동생을 툭 쳐서 넘어뜨렸고 예쁘다고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다 헝클어뜨렸다. 의자에 앉아있으면 끌어내렸다. 미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둘째 오빠에게 배운 그대로 동생에게 똑같이 했을 뿐이었다. 사촌동생은 괴로워했다. 다희가 다가오면 뒷걸음치며 울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받았을 텐데 고모인 내가 다 미안했다.
둘은 애증의 관계로 투닥거린다. 눈에 안 보이면 궁금하고 만나면 서로 견제한다. 사촌동생은 더 이상 다희에게 당하지 않고 맞선다. 다희의 손이 다가오면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문다. 물린 다희는 꼬리 내린 강아지 마냥 놀란다. 자기는 이보다 더한 행동도 했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듯 운다. 아주 잠시뿐 이지만 서로 거리 두기를 한다. 얼마 못 가서 다희는 동생을 또 넘어뜨린다.
이 뿐 아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녀석은 양보할 줄 모르고 싸운다. 동생이 과일을 먹으면 다희는 악착같이 동생 것을 뺏어 먹었다. 동생은 빼앗기지 않으려 얼굴이 빨개져라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과일도 똑같이 나눠 줘야 하고, 과자도 똑같이 나눠 줘야 했다. 다희는 샘도 얼마나 많은지 숙모 품에 안겨있는 사촌동생을 밀쳐서라도 그 자리를 독차지했다. 자기 엄마도 아니면서 그 자리를 파고드는 모습에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이럴 때에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 노래에 맞춰 둘은 신나게 춤춘다. 아주 잠깐은 서로 애틋하며, 손도 잡아 주고 안아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인다. 노래가 끝나면 ‘아침 바람 찬바람에’ 서로의 손을 맞잡고 놀아주었다. ‘구리구리 가위 바이 보’ 할 때는 까르륵 넘어가게 웃었다. 혼자 자라는 조카도, 동생이 없는 다희도 서로 배워나간다. 오빠들의 틈 속에서 보지 못했던 다희의 해코지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 혹시 유치원에서도 그런가 싶은 걱정이 들었다.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다행이다 싶어 마음을 쓸어내렸다.
첫 조카는 나에게도 각별하다. 보기만 해도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고모라고 나에게 와서 폭 안기면 그 말랑말랑한 살의 느낌이 부드럽다. 조카를 바라보면 예쁘면서도 한편 조카보다 다희가 먼저 말해야 할 텐데, 기저귀도 먼저 떼야할 텐데라며 괜한 걱정이 든다. 엄마의 노파심에 마음이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