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고 느긋한 독일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난 여전히 ‘빨리빨리’를 외친다. 내가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인터넷 설치 만 한 달이 걸렸다. 비자 신청해서 받기까지도 한 달. 성격이 급한 탓에 기다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는 줄 알았다. 신혼 초에는 서툰 음식솜씨도 있었겠지만 덜 익은 음식을 내놓기일 수였다. 예정일이 되어도 나오지 않는 첫째를 기다리지 못하고 쪼그려 뛰기를 했다. 둘째까지 낳고 아이가 둘이 되며 급한 성격은 더 도드라졌다. 외출 시에는 두 아들을 양몰이하듯 몰아서 나갔다.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누가 쫓아와? 술래잡기해?”라며 여유를 가지길 바랐다.
이런 나에게서 느려도 너무 느린 ‘다운천사’ 딸이 태어났다. 딸의 시간은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북이었다. 토끼 엄마와 거북이 딸의 삶은 쉽지 않았다. 딸은 100일에도 목을 가누지 못했다. 6개월이 되어서야 목을 가눌 수 있었다. 배밀이는 9개월, 기기 시작한 건 1살 생일을 맞이하면서였다. 2살이 되어서 한두 발자국 걸었다. 딸의 시간에 맞춰 차츰 인내심을 배워나갔지만, 인내의 열매를 맺기까지 쉽지 않았다. 목놓아 펑펑 울은 날도 있었고, 감정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날도 있었다. 나를 내려놓는 과정은 혹독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려놓음의 연단을 받고 있다. 독일은 3살까지 기저귀를 채운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서서히 떼는 걸 선호한다. 느린 딸이기에 4살까지 기저귀를 차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조급하지 않고 딸의 시간에 맞춰 차츰차츰 기저귀 떼기를 시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화장실로 데려갔고 성공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횟수도 늘어났다, 외출할 때는 어린이 변기 커버를 가지고 다녔다. 이대로라면 곧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딸은 다시 기저귀를 찾았다. 딸의 시간을 맞춰 걷는다 생각했지만 딸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기저귀를 찾는 딸을 보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독일에서는 보편적으로 “다운천사 아이들은 5살까지 기저귀를 차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어르고 달래며 이끌고 가면 될 거라 여겼다. 두 아들도 그랬으니깐 다만 딸은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 예상하며 기다렸지만 6살까지 기저귀를 찰 줄 몰랐다. 기저귀 차고 학교에 입학하게 생겼다. 특수학교라 문제 되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의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이 변기를 샀다. 물 내리는 소리가 나는 변기, 칭찬의 말이 나오는 변기 그렇게 산 것만 해도 4종류였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딸은 모든 걸 거부했다. 조금씩 화장실 가던 것도 안 갈 것 같았다. 기저귀를 떼고자 하는 열정을 뒤로하고 일단 후퇴였다. ‘말이 트이고 의사소통이 된다면 수월할까?’ 이젠 정말 다 내려놨다. 딸의 성장을 돌아보면 느렸지만 하나하나 해냈다. 이 또한 지나가는 시간이라 여겨본다.
언젠가는 인내심의 열매가 달게 느껴지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