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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Byun Nov 04. 2021

프롤로그. 전조증상

*사춘기思春期 명사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유의어: 춘기 발동기. 보통 15~20세


초등 고학년쯤 나이가 되어 아이가 짜증 섞인 말대답을 한다면, ‘어, 얘 봐라?’ 하며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건 사춘기 호르몬과 관계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 시기’가 도래하면 아이들은 단순한 짜증이 아닌 엄마 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마치, 엄마 말만 자체 ‘삐~~~~’  처리하여 걸러내는 것처럼.

하여,, 묵묵히 나의 말을 듣고 있다고 해서 ‘먹히고 있구나. 반성하고 있구나.’ 착각해선 곤란하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무시당하는 것 같아 미치고 팔짝 뛰게 화가 나지만 엄마의 에너지만 바닥날 뿐 아이는 뜻대로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깨닫는 순간이 바로 내 아이의 사춘기다.



소리 없는 아우성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이후, 딸의 학기 첫 등교 날이었다.  

아이를 보내고 방문을 여는 순간,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인류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 처절한 살풀이라도 벌였다면 모를까, 어떻게 방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지 볼거리가 가관이었다.   

벗겨진 허물처럼 널려있는 옷가지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양말 한 짝, 쓰레기가 능선을 이룬 휴지통.

둘러볼수록 장관인 풍경이 기가 찼다.

원래 이런 아이는 아니지 않았나. 자기 일은 알아서 해결하던 손 안 가던 딸 아니었던가.

그런데 중학생이 되며 그 야무진 아이는 행방이 묘연했다. 시절의 특성상, 방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렇더라는 주변인들의 얘기에 참고

기다려봤다. 하지만 대환장파티를 눈앞에서 목격한 이상 더 이상의 정상참작은 없을 것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처참한 현장을 증거로 남겨놓기 위해 휴대폰의 카메라를 열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렌즈에 수상쩍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사준 적 없는 색조 화장품들, 거울 앞에 놓인 어른스러운 액세서리들 그리고 잡다한 물건들 사이의 자물쇠

수첩 하나.

아이는 요즘 들어 밤늦게까지 통화를 하고 폰에 잠금 설정을 해놓던 것이 생각났다. 신변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게 아닌지, 이번엔 불길한 촉의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수첩을 집어 들어 열어 보았다.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같은 반 남자 친구의 이름. ㄱ ㅣ ㅁ ㄸ ㅐ ㅇ ㄸ ㅐ ㅇ.

아래에는 본인의 이름. 그리고 자음 모음 획수를 더한 숫자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이름으로 점치는 애정운 매치 테스트에는 언뜻 세어 봐도 열댓 명 이상의 이름들이 나열돼 있었다.

모두 다 맘에 들 리 없고, 그냥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스타일?

‘흥!’ 하는 코웃음이 나왔다. 나머지 페이지를 연이어 넘겨보았지만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 같은 시시한 낙서뿐, 이렇다 할 혐의점은 없어 보였다. 김이 샜다.       


‘치명적인 첫사랑! 이유 없는 분노!! 방황과 탈선!!!’  

사춘기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런 이미지는 사실 그들의 일상에서 비중이 크지 않다. 호르몬 폭발로 인한 잦은 감정 변화가 있을지언정,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다른 아이로 ‘짠’하고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한 발 앞 선 부모들의 걱정과 불안이 오히려 그들을 ‘나 삐뚤어질 테요’로 만드는 지도.

방 치우는 일로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이 녀석과 전쟁 중이지만, 이건 사춘기가 야무진 아이를 변이 시킨 것도 아니고 무언의 반항을 하기 위함도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아이는 그간 하기 싫었던 정리정돈을 참고한 것일 뿐, 정리가 체질이라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 시기가 오면 아이들은 슬슬 엄마를 인내하고 싶어 하지 않고 모든 일에 ‘내가 왜 해야 해?’라는 의문을 갖는다.


‘양육’의 의미에는 한 인간이 태어나 자랄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온전히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고 한다. ‘중2’를 양육 중인 내가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 바로 ‘이해’에 대한 것이었다. 내 안에 속해 있다고 착각한 한 인간을 타인으로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지점.   

그러니까, 본 글은 중2병을 퇴치하기 위한 전쟁과 소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춘기 발동기>를 지나는 한 인간에 관한 고찰과 그를 이해하기 위한 한 사람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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