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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Nov 04. 2023

찌린내 속의 아름다움, PARIS

복잡한 지하철과 혼잡한 도로 위의 교통체증을 달래는 에펠탑

Thank you Gentel Man


 '젠장, 다음부턴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와야지!' 커다란 캐리어를 진땀을 흘리며 머리 위 선반에 올리려 고군 분투 하는 나를 딸아이가 보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돕는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뒤따라 찾아온 옆좌석의 친절한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20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거대한 화물 캐리어를 짐칸에 착석시켰다. "Thank you, you are a gentel man!!" 실력에 비해 자신감이 넘치는 말도 안 되는 영어를 던지며 엄지 척을 내보이자, 희끗희끗한 멋진 콧수염을 자랑하는 노신사의 얼굴에 유쾌한 미소가 번진다.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이마의 송글 송글 땀을 닦으며 감격스럽게 좌석에 착석하고 나니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잠들었던 여행세포들이 하나하나씩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대략 2년 만의 여행을 어린 6살 딸아이와 패기 좋게 파리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내릴 때 깨달은 사실이지만 열차 타는 입구에 무거운 캐리어를 위한 짐칸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돌아올 땐, 짐칸에 두고, 편하게 올 수 있었다. (혹시 모를 도난을 잠시 걱정했었지만, 다른 여행객의 캐리어가 이미 가득히 실려 있는 것을 보고 걱정을 걷어낼 수 있었다.)


선선한 가을에 진땀을 흘리고, 카디건을 벗으며 주위를 둘어보니 아직 코로나가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2년을 여행 없이 살아온 네덜란드인들이 모두 파리에 몰린 느낌이 날 정도로 날 좋은 가을에 스키폴에서 출발하는 파리행 좌석을 예약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나마 아직 백수 신분에 때마침 찾아온 아이 가을 방학에 맞추어 어정쩡한 평일 왕복티켓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나와 딸아이를 포함해서 제 몸 무겁게 여행객을 그득히 실고선 파리로 출발했다.

떠나기 전 기분내기 용으로 스키폴에서 찍은 기차 시간표

 당시 네덜란드에 살고 있었던 나에게, 파리까지 가는 선택지는 3가지가 있었다.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버스, 기차, 비행기 이렇게 비용순으로 선택지가 있었고, 가장 경비가 많이 드는 비행기는 당연하게 패스하고, 6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버스 여행은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자신이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남은 기차 여행을 선택했다.


두 번째 파리 여행은 코로나 끝난 직후라 기차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라 비행기로 떠났었는데, 시간이나 체력면에서 비행기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기억에 더 깊숙이 박힌 기억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을 지나 벨기에의 브뤼셀을 찍고 도착한 파리 북역이 더 유럽 스러운? 여행이었다.


세 번째로 파리를 가게 된다면 난 고민 없이 기차를 선택할 것이다. 스위스 산악열차처럼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멋진 자연경관은 아니지만, 딸아이와 조곤 조곤 담소를 나누며 바라봤던 그 평온했던 경치를 떠올리면 지금도 절로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사실 암스테르담에서 파리 북역까진 열차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장거리 여행은 아니기에 성인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면 금세 도착할 만한 좋은 시간이다. 하지만 6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3시간이 12시간이 되는 기적을 보여준다.


이런 내 걱정과 다르게 기특한 딸아이는 출발 전 남편이 스키폴 공항 자판기에서 사준 캐러멜 껍질로 꼼지락꼼지락 상상 속 친구들을 만들며 3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텨주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은 정말 끝이 없고, 노는 걸 옆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그 스토리에 빠져들어간다.


체리맛 캐러멜 껍질이 하트 인간이 되고, 오레인지 색 캐러멜이 토끼가 되어서 펼쳐지는 캐러멜 껍질 캐릭터들의 스토리는 나조차 빠져들게 만들었다. 외장 배터리도 챙겨 오지 않아 자유롭게 스마트폰도 할 수 없는 나에게도 아이의 이야기는 좋은 오락거리가 되었다. 들어는 보았나, 캐러멜 껍질 인간들의 세상 이야기,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줬다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캐러멜 껍질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영부영 3시간을 달려 파리에 도착했다. 평일의 시작인 월요일이고 백신 증명증 없으면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코로나 사정 때문에 한적할 줄 알았던 북역은 생각보다 북적북적했다. 살짝 긴장한 난 딸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왼손엔 묵직한 캐리어, 오른손엔 딸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일주일 동안 이용할 교통카드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북역을 헤매기 시작했다.

 우리를 고생시켰던 나비고 교통카드, 참 잘 쓰고 다녔다

 파리 북역은 44개의 승강장을 보유한 정말 거대한 역이기에, 이럴 땐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사원증 걸고 있는 직원한테 다가가서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한층 내려가라는 직원안내에 따라 내려간 곳에는 나비고 교통카드(프랑스에서 일주일 동안 무제한 사용 가능한 교통카드) 충전 기기와 일회권 티켓 발급기가 여기저기 있었다.


이미 네덜란드에서 키오스크는 종류별로 다 경험해 봤기에 자신 있게 기계 앞에 서서 이것저것 터치하며 뒤져 봤지만 충전기능만 있었고 정작 나비고 교통카드를 신규로 발급해 주는 기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 기계 저 기계 다 뒤져가며 확인했지만, 카드 발급기는 찾을 수 없었고, 포기하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카드를 발급해 주는 창구를 찾을 수 있었다. 어이없게도, 처음 찾아갔던 교통카드 충전기 바로 옆 코너에 카드 발급 창구가 위치하고 있었다.

 ‘아..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 수동으로 발급해 주는구나..’

왜 나는 발급 기계만 찾아다녔는지, 함께 고생한 딸에게 미안해졌다. 하지만 난 뻔뻔하게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여행 첫날은 헤매고 많이 걷는 거야”. 나름 쌀쌀한 10월 날씨에, 후끈후끈 열기가 느껴질 만큼 두발에 땀나게 헤매며 힘들게 구한 교통카드로 우리는 드디어 파리 북역에서 떠나 파리의 상징 에펠탑 근처에 있는 숙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로 향했다.

여행객 수와 비례하는 찌린내

 영화 속에서만 보던 아름다운 파리를 기대하고 떠났다가 예상보다 미학적이지 않는 파리에 실망한 현상을 뜻하는 파리 증후군을 아마 한 번씩은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파리의 로망이 있지도 않았고 그냥 가까워서 떠난 여행이기에 첫 파리 여행에선 '생각보다 깨끗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쁘지 않았고 놀랍게도 찌린내도 맡지 않고 평화롭게 다녀왔었기에 첫 여행일지에도 생각보다 깨끗하다고 기록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다시 찾은 파리는 지하철은 물론 거리 온 곳에 영역표시가 되어 있어 찌린내의 천국이었다. 특히 파리 지하철을 뜻하는 'Métro de Paris'에서 메트로가 유래된 만큼 파리 지하철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고 다른 유럽에 비해서 더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지하철역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찌린내는 항상 따라다니는 동반자 역할을 했다. 비위가 유난히 약한 사람이라면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추천한다. 나의 경우도 여행객이 적었던 만큼 찌린내가 적었던 첫 여행 때는 지하철을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했지만, 두 번째 여행에선 거의 버스를 이용했었다.


여행하면서 유독 지하철역에 찌린내가 심한 원인에 대해서 분석한 내 의견을 더해 보자면, 한국 지하철역에서 볼 수 없는 파리역 내부의 특징이라면 역내 도보로 이동하는 통로 사이드에 작은 수로들이 형성되어 있다. 많은 비가 내리는 경우 물에 잠기지 않게 하기 위해 물이 흐를 수 있는 수로를 만들어 놓은 거 같은데, 이는 비뿐만 아니라 위급상황에 잠시 나만의 화장실을 오픈하더라도, 소변이 신발에 묻는 대형 참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쾌적하게 만들어 놓은 공간인 것이다.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워낙 보고 맡은 것이 많아서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 추측이라고 생각한다. 뭐 물론 역내에 화장실도 없고, 워낙 파리가 유명한 여행지인 것도 한몫하겠지만, 결론은 이 찌린내로 인해서 남편은 파리를 유럽의 최악의 도시로 뽑을 정도로 찌린내의 위력은 대단하다.

오랜 역사와 찌린내가 공존하는 파리의 지하철

 하지만 여행의 매력은 모든지 처음 경험하는 신선함이 크기에 지하철여행에 한번 즈음은 도전하길 추천한다. 찌린내 속의 숨어 있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수동으로 문고리를 풀어서 열고 닫아야 하는 지하철문을 바라보며 과연 내가 저 문을 잘 열 수 있을까 하는 신선한 긴장감과 깨끗한 한국 지하철에선 느끼지 못하는 터널 내부의 세월의 흔적을 바라볼 때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추가로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과 캐리어로 북적 되는 지하철 안에서 파리가 변함없이 사랑받는 여행지임을 다시 한번 느껴 보며 잠시 파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경험을 해보길 추천한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설렘과 긴장감과 함께 에펠탑에서 가까운 Strasbourg Saint-Denis 역에서 무사히 하차 한 뒤로 찾아온 무수히 많은 계단을 보며 설렘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캐리어를 끌고 한 칸 한 칸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이 한 칸 한 칸이지, 한번 숨 고르고 나면 계단이 또 나오고 또 한 번고 나면 또 나오고, 마치 약 올리듯이 깐죽 깐죽 거리며 계속 등장하는 계단에 다음번에는 반드시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오리라, 다짐을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 지하철역에 흔하게 널린 에스컬레이터가 다시 한번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파리 지하철역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보이지 않았기에, 나 홀로 고군분투하며 길고 긴 지하철역에서 벗어난 순간, 내 폐 속으로 들어온 파리 공기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아이슬란드 공기보다 더 청량하게 느껴졌다.


1일 1 에펠탑은 행복이다


 드디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왔지만, 아직도 숙소까진 10분 남짓 걸어가야 했다. 물론 역 근처에도 널린 게 파리 숙소지만 북적한 숙소보다는 여유가 있으면서, 1일 1 에펠탑을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 가격도 합리적인 숙소를 찾다가 작고 아담한 3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물론 비슷한 가격대에 4성급 호텔도 있었으나, 이미 유럽의 3,4성급은 별 차이가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았으므로, 숙소에서 에펠탑 부스러기라도 볼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이 당시에는 팬데믹 때문에 가격이 합리적인 숙소에 속했으나 두 번째 여행 때는 에펠탑 근처 호텔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가격이 치솟아 있었다.) 물론 파리의 숙소는 호텔 외에도 한인민박, 에어비엔비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나 아이와 단둘이 하는 하는 여행이고 무엇보다 그날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호텔을 선호하는 나이기에 고민도 없이 호텔을 선택했다.


파리 첫 여행 때 머물렀던 호텔은 가격에 비해 다른 유럽의 호텔보다 무척이나 작고 아담했지만(파리의 호텔은 비교적 다른 유럽보다 비싸고 룸 사이즈가 적은 편이다) 바로 옆에 있었던 베이커리의 잊지 못할 크로우상과 밤마다 빛나는 자태를 뽐내던 에펠탑의 불빛이 아직도 어른거리게 만든다.


두 번째 여행 때 묵었던 오페라 가우디에 근처의 호텔은 에펠탑 근처보다 가격이 더 합리적이었고 역도 가깝고 룸 사이즈도 좀 더 큰 편이었으니 에펠탑을 하루만 봐도 되는 여행객이라면 오페라 가우디에 근처에 숙소에 묵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파리를 갈 수 있는 세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민 없이 에펠탑 근처에서 말도 안 되는 몸값을 자랑하는 호텔을 선택할 것이다. 1일 1 에펠탑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행복이다.

도심 속의 아름다움, 에펠탑

 명심할 것은, 나처럼 에펠탑을 그냥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여성의 경우였다.) 남편처럼 못생긴 철탑이라며, 파리의 흉물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으므로, 사심 가득한 이글만 보고선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에펠탑 주변 숙소를 구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냥 사진처럼 지나갈 때 보이는 에펠탑도 감동적이고, 워낙 유명한 스팟인 샤이오 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휴대폰 갤러리에 내 실루엣이 저장되는 순간을 참으며 에펠탑을 바라봐도 행복할 것이다. 그뿐만 인가, 기가 막히게 한국인을 알아보고, "싸요 싸요"라고 한국 말로 에펠탑 키링을 파는 장사꾼이 가득한 이에나 다리에서 날 내려다보는  웅장한 바라보는 에펠탑도 좋고, 마르스 광장에서 아이가 노는 걸 지켜보며 벤치에서 바라보는 에펠탑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특히 마르스 광장의 공원엔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이동식 놀이공원이 주말마다 열리기 때문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해맑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래서 여행을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느끼게 된다. 파리 외에 여러 유럽 도시들을 다니면서 느낀 건, 롯데 월드 같이 큰 테마 파크도 물론 있지만 작은 이동식 놀이기구가 도심 곳곳을 다니면서 동네에서 쉽게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어렸을 땐, 부모님께 조르고 졸라서 큰 맘먹고 차로 빽빽한 고속도로를 달려서 도착해 또 긴긴 줄을 기다려서 놀이기구를 타곤 했었는데, 도심 한복판에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하고 작은 테마파크를 만들고 또 옆 마을로 이동하면서 모든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방법이 꽤 괜찮다고 느껴졌다. 물론 롤러코스터 같은 액티브 한 놀이기구는 불가능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론 충분해 보인다.

d'Iéna다리 위에서 바라본 에펠탑

 마르스 광장에서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고 나면 이끌리듯이 눈앞에 커다란 에펠탑이 과연 얼마나 큰지 하기 위해 이끌리듯이 특히 아이와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낸 이에나 다리 위는 특별한 스팟이였기 보다, 에펠탑을 바로 앞에서 구경하고 이제 슬슬 쉴 곳을 찾다가 모두가 사진을 찍기에 여기서도 찍어보자 하고 찍었던 장소인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이 자리가 가장 맘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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