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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Nov 04. 2023

스토너_STONER

 존 윌리엄스

 

 스토너의 이야기는 크게 그의 꿈, 사랑, 죽음 이렇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따라 변해가는 스토너의 인생을 작가는 그만의 디테일하고 상세한 묘사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래서 난 스토너의 일생을 꿈, 사랑, 죽음으로 3단계를 나누어 이야기꾼 존 윌리엄스의 문체를 인용해  나중에 다시 들여다 보아도 그때의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정리해 보았다. 


스토너의 꿈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구청 직원의 소개로 농과 대학에 입학한 스토너에게 있어 대학은 아버지의 농사를 좀 더 효율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곳, 그 이상의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개론 수업시간에 그가 낭독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를 듣는 순간 그는 영문학에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스토너의 인생에 획을 그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영문학과목에서 지속적으로 낙제 점수를 받던 스토너는 이 시를 듣는 순간 영문학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생략)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박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 강의 이후로 스토너는 모든 기본 농과과목을 수료하지 않고, 영문학에 몰두하였고, 그는 농과대학을 졸업을 앞둔 그 해에 영문학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 뒤로 미국과 독일의 전쟁이 시작되는 역사적 배경으로 스토너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대학에서 강사 활동을 시작하며 학자로서의 그의 인생 스토리가 펼쳐진다.

스토너의 첫사랑

 학장의 집에서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청혼을 하였지만 평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과 그런 그의 인생에 유일하게 단비 역할을 해주는 그의 딸 그레이스와 서재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그리 흥미진진하지 않은 삶을 존 윌리엄스는 그만의 유쾌한 문체로 생생하게 전달했다. 특히, 스토너가 첫눈에 반한 이디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자 내키지 않지만 거절을 못하는 이디스의 감정 묘사는 짧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스토너가 다시 그녀를 보러 와도 되겠냐고 하자, 이디스는 마지못해 답을 한다.

"네, 오셔도 돼요." 미소는 짓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남 이후로 이디스가 3주 뒤에 원래 머물던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간다고 하자, 스토너가 최대한 자주 만나야겠다고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이디스의 반응은 픽, 웃음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렬했다.

그녀가 거의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부디....."

 이 정도로 치를 떨 정도로 스토너의 구애에 치를 떨었지만, 이디스가 자라온 환경이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과 수줍은 성격은 스토너의 전혀 강압적인 의도가 없는 평범한  구애에 단 한 번도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이들은 결혼을 하게 된다. 사랑 없는 결혼이기에 이 들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고 아이를 갖는 과정도 끔찍했다. 이렇게 태어난 딸에게 이디스는 무관심했고 기저귀 냄새에 짜증을 부릴 정도로 애정을 갖질 못했지만, 스토너는 자신의 딸에게 빠져 들었고 함께 서재에서 독서를 할 정도로 둘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공감한다. 이따금씩 이디스의 말도 안 되는 정신 이상적인 히스테리가 읽는 나조차 짜증 나게 만들었지만 한결같이 두리 뭉실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스토너는 이 이상한 결혼생활을 위태롭게 잘 유지해 갔다.


 그가 워커라는 학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학부 생활 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세미나를 들어야만 했던 약간은 수상쩍고 기고만장한 워커의 수강신청을 수락 한 뒤로 스토너는 매 강의 시마다 수준에 맞지 않은 그의 질문과 온갖 변명을 난무하며 과제를 제때 제출하지 않는 불성실함에 불만이 가득 쌓여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학생의 과제를 깎아내리는 워커의 무례하면서도 엉터리 내용의 과제 발표를 듣는 순간 그는 그에게 낙제를 주기로 마음먹는다.


스토너는 결국 워커를 대학에서 쫓아내는 결정을 한다.

"데이브라면 워커를 세상으로 보았을 걸세, 그러니까 그 친구를 허락할 수가 없어, 만약 우리가 허락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이 비현실적이고 우리에게 희망은 그 친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뿐일세" 

하지만 그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도교수 로렉스의 도움으로 워커는 계속 대학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동료 이자 미래의 학장 로맥스와 의견 충돌이 생기게 되며 그의 인생에 파도가 일게 된다. 초보 강사가 받을만한 시간표가 할당되고, 이디스는 화실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스토너에게서 서재를 빼앗고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면서 학자로서의 열정이 천천히 식게 된다.


이때즈음, 스토너는 비현실적인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겨울밤의 침묵이 들려왔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조직이 성긴 눈이라는 존재에 흡수된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생략) 공기 중의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및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스토너의 끝사랑

 마치 인생을 포기한 듯, 그런 그에게 찾아온 캐서린의 논문은 그의 지적인 열망을 채워줄 뿐 아니라 그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스토너는 캐서린의 집에서 논문을 검토해 주고 나오면서 그의 감정의 변화를 눈치챈다.

뒷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는 안개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저녁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혀에 닿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았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이후로는 진정 내로남불이 뭔지 보여준다. 아무리 그들의 사랑이 지적이고 아름다워도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패스하겠다. 여하튼, 스토너는 불륜의 과정에서 진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들은 사랑을 했지만 결론은 불륜, 그들의 관계는 재직 중인 대학에 소문이 날 정도로 퍼지게 되고, 그렇게 스토너의 사랑을 끝이 난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향해, 캐서린을 향해,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은 방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스토너의 죽음

 너무나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고 원치 않는 이별을 겪은 이유일까, 스토너는 캐서린과 결별 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고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왔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존재의 작은 중심에서 자라난 무감각한 공간 속 어딘가에 자기 인생의 일부가 끝나버렸음을, 자신의 일부가 거의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라서 다가오는 죽음을 거의 차분한 태도로 지켜볼 수 있을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생략) 생명이 꺼져가는 라일락꽃의 달콤한 향기가 사방을 흠뻑 적셨다.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 병 암 앞에서 스토너도 결국 자신의 삶을 내려놓는다.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던 스토너는 손가락에 느껴지는 책장의 짜릿함을 느끼며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평생을 약간은 답답하게 학자의 길만 걸어온 스토너의 스토리는 현대 사회에선 호구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답답한 면도 있지만,  그의 열정은 계속해서 잔잔하게 호수에 일렁이는 물결의 파장처럼 여운을 남기고 있다. 존 윌리엄스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과 묘사력은 스토너에게 빠져들기에 충분했기에, 그의 또 다른 작품 세상을 찾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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