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07일의 꿈
분명히 장소는 평범한 사무실이고, 옆의 동료들도 앳된 학생들이 아닌 낯이 익은 내 전 직장 동료 들이다. 그렇다면 우린 분명히 시선은 모니터에 집중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을 해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다. 그것도 약간 잿빛을 띄는 그다지 부드럽지 않은 종이 위에 정갈하게 프린트되어 있는 수학문제는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을 기억나게 해 준다. 상황이 이렇게 아이러니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누구도 심지어 나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이곳에서 나에게 할당된 수학 문제를 해결해 따박 따박 들어오는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서 끙끙되며 고민을 하고 있다.
문제 형태를 보아하니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프로페셔널한 연구원도 아니고 그저 입시 문제처럼 보이는 1번, 2번, 정확히 번호가 매겨진 수학학문제를 최대한 꾸역꾸역 풀어 거의 막바지까지 풀어냈다. 하지만 거의 마지막 부분에 빠진 이 처럼 고민 끝에 답을 마킹하지 않고 건너 띈 문제가 보인다. 아무래도 이 문제를 다 풀어야 속 편하게 퇴근할 수 있을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올라온다. 불행 중 다행히도 내 옆엔 미궁에 빠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는 눈에 익은 앳된 얼굴이 보인다.
가만히 보니 이 아이는 전회사에 재직당시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아이다. 그리고 이 아이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입 사원 중에서도 유독 본인의 분야를 즐겨 노력도 하고 두뇌 회전도 빠른 영특한 아이였다. 스승보다 난 제자의 표본을 보여주듯이 그 아이는 차분하게 몇 번 끄적끄적거리더니 내가 끙끙 머리를 싸매고 있던 문제의 핵심 풀이법을 제안한다.
게다가 '이건 이렇게 풀면 쉬워요' 라며 폼나는 발언과 함께 밝은 미소를 던진다.
그 아이가 입사했을 당시 유독 바빠서 일을 주기만 하고 잘 봐주지도 못했던 시절에 혼자서 척척척 일을 해결하던 그 아이는 이번에도 척척 문제를 해결한다.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떤 문제였는지는 관심도 없었는지 기억에도 없고 그저 해결했다는 기쁨과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만 남았다.
니가 최고야! 기쁨의 찬사를 날려주면서 좀 더 깊은 숙면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날이 갈수록 갓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은 점점 힘들어졌고,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중견기업에 입사하려면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스펙을 꾸준히 쌓아두지 않으면 합격이 불가능한 시절이었기에 열정과 설실함, 거기에 능력까지 더해진 괴물 신입사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영리한 친구라며, 잘 교육해 달라고 부탁하는 팀장님의 말씀처럼 그 아이는 정말 매우 매우 영특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내 신입 시절과 다르게 그 아이는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이미 프로젝트 경험도 있고, 꾸준히 실력을 축적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이가 업무를 하면서 나에게 던지는 수준 높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주말에 열심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동료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재밌다는 듯 내 상황을 보면서 깔깔 거리며 웃던 동료들이 기억난다.
그 아이는 모를 것이다, 본인이 질문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여하튼, 나의 두 번째 회사는 내가 배운 것도 많고 뜻이 맞는 동료들도 만났고,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다녔던 곳이어서 아직도 가끔씩 내 꿈에 엉뚱하게 등장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