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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베러 Oct 28. 2024

사랑은 전파가 강하다


태경씨는 나의 엄마다.

그녀는 원래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새롭게 이름이 생겼다. 태경.

좋은 이름은 자주 불러줄수록 좋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녀를 앞으로 태경씨라고 자주자주 불러줄 예정이다.




얼마 전 <음악 소설집>에 수록된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를 읽었다. 

그 작품을 읽고 며칠 전 태경씨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죽게 되면 딸인 내 주변에 머물며 나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레 오갔던 말인데, 찰나의 순간이 감동이었고 뭉클했다.

구천을 떠돈다는 게 아니라 당신이 없는 공간에서 내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겠다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자장가] 속 딸이 잠 못 드는 엄마의 곁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태경씨도 나를 지켜주면서 자장가를 불러줄 것만 같아서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태경씨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란 나도 많이 닮았다.

사랑이 많고 사랑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어릴 땐 사랑이 많다는 게 내가 엄마로부터 받은 엄청난 자산인지 몰랐다. 이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누구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나는 자녀들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크면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서 교류하고 이야기 나누며 새삼 느끼고 알게 된 점이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몇 가지 풀어보자면 나는 어릴 적부터 아날로그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을 지닌 아이였다. 그래서 각자의 방 문 앞에다가 편지함을 만들었고, 같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포스트잇에다가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 떠올려 보면 별 내용은 없었다. 그리곤 아침에 편지함 속에 넣어두고 가면 저녁이나 밤이 되면 항상 내 방문 앞 편지함에 답장이 꼭 돌아왔다. 몸이 피곤한 날엔 성가실 수 있었을 텐데 항상 답장을 해준 태경씨가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태경씨는 당시 저녁에 잠깐 아르바이트 형식의 일을 하러 다녔었는데, 그때마다 냉동 만두를 굽거나 스팸 한 조각을 구워 식탁에 두고 가는 날엔 그 음식들 옆에 항상 빠지지 않고 함께 남겨진 게 있었다면 작은 포스트잇이었다.


태경씨는 항상 


"사랑하는 딸, 아들 -이라고 시작해서 오늘은 어떤 메뉴를 만들어 놓았어."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면 엄마가 빨리 돌아올게" 등의 쪽지였다.



실은 이 쪽지들을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아놓았기에 지금도 태경씨 집에 있는 편지함 속에 다 남아있다. 그녀는 훗날 내가 이 쪽지들 기억나?라고 보여줬을 때 이걸 다 들고 있었냐며 놀래기도 했다.

(이 얘기를 읽고 있노라면, 누군가 내게 가족 3명이서 어렵게 지냈나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아빠는 항상 한 공간에 있으며 저녁엔 우리 남매 곁에 계셨다 ㅋㅋㅋㅋㅋ 마치 한 공간에 있는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이랄까!) 그리고 여느 날이면 내 책상 위에 한 통의 편지들이 올라왔는데. 예쁜 편지봉투 안에 담겨 있는 편지가 아닌 공책 한 장을 북 - 찢어 적은 편지였다.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 딸"로 시작되는 그녀의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딸아, 오늘도 엄마는 퇴근 후 곤히 잠든 너의 얼굴을 보았어.

요즘 새로운 수학 학원을 다녀서 많이 힘들지? 엄마가 너의 문제집을 보는데 빨간 비가 내리는 부분이 많더라.(ㅋㅋㅋ) 다른 아이들보다 뒤늦게 시작해서 힘들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언제나 우리 딸을 응원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주변 이들로부터 듣는 얘기가 있다.

"재이님은 표현을 잘해요, 상대에게 말했을 때 기분 좋은 표현은 하면 할수록 좋잖아요. 알지만 그게 내 입에서 선뜻 나오지가 않기도 하고요. 그런데 재이님은 표현을 잘하잖아요. 그게 정말 장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제게 말해주시는 당신도 이미 표현을 잘해주시는 분인걸요라고 답했다.)


사랑이 많고 표현을 잘하는 것이 엄마로부터 배운 것들이란 걸 안다. 무뚝뚝한 경상도 츤데레 아빠 밑에 자라면서 가끔 억압받는 느낌도 들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태경씨가 곁에 있어 주었기에 우리 남매는 더 잘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항상 태경씨에게 고맙다. 여전히 가끔 티격태격하고 그녀가 이해 안 되고 미울 때도 있는 애증의 관계라지만,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태경씨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있어 참 행복한 삶이다.




사랑의 감정은 전파된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무궁무진한 많은 사랑을 서로에게 줄 것이다.

태경씨, 욱이씨, 민석씨 뿐만아니라 내가 애정하는 많은 이들에게 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나의 짝지와 자녀에게까지 온전히 주고 싶다. 나는 오늘도 태경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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