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지윤 May 26. 2021

木주아_해금에 관하여

천지윤의 해금이야기

주아     


주아는 현을 고정하고 조율하는 부분이다. ‘줄감개’라고 생각하면 쉽다. 해금은 2현이니 주아도 2개다. 2개의 주아가 입죽 윗부분에 고정되어 있다. 입죽에 주아의 기둥이 통과할 구멍을 뚫어서 그 안에 주아를 꼽는 형태다. 주아를 돌려 줄을 조율을 한다. 주아를 감으면 음정이 높아지고 풀면 낮아진다. 주아에 5회 정도 사용할 줄을 넉넉하게 감아 놓는다. 줄이 마모 되어 끊어진 경우, 마모 되어 음색이 투박하게 나빠질 때 즈음 주아에서 줄을 내려 쓴다.  


해금, 주아



완전한 고정을 이루어 조율이 변하지 않도록 꽉 잡아주어야 한다. 이것이 주아의 기본 조건이다. 주아가 입죽에 고정적으로 잘 박혀있으면서도 조율을 위해 잘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주아의 아이러니다. 완고하되 유연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녀야 하는 것. 주아의 입장에서도 참 난감할 것 같다.  



처음 해금을 시작하면 조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음정도 뭐가 맞는 건지 헷갈리는데 주아를 감고 푸는 행위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아가 스르륵 감겨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잘 돌아가지 않는다. 고정을 위해 주아와 입죽이 만나는 구멍에 송진가루를 발라 놓기 때문이다. 힘을 꽉 주고, 기합을 넣어 우두두둑 하는 소리를 내면서 주아가 감긴다. 원하는 음정은 머릿속에 있는데 주아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애가 탄다. 바깥줄의 음정을 맞춰 놓으면 안줄이 움직여 음정의 인터벌이 맞지 않고 틀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바깥줄 안줄을 오가며 음정을 맞추게 된다. 




주아와 여름 

여름에는 송진가루가 더 눅진해지기 때문에 고정력은 더욱 강해진다. 여름 습기에 전반적으로 나무로 이루어진 악기가 흐물해져 멍한 소리를 내고는 한다. 조율을 해야 하는데 주아까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한여름 악기에 매달려 진땀을 빼는 순간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해금연주가들은 가죽손수건을 꼭 가지고 다닌다. 일반적인 손수건으로 주아를 감기는 역부족이다. 애가 타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지고 땀이 찬 손으로는 주아를 돌려서는 꿈쩍도 안한다. 부드러운 손수건도 미끄덩하고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부드러운 손수건은 감자비 아래 고이 깔아주거나 악기를 닦을 때 쓰자.) 탄탄한 가죽 손수건으로 마찰력을 일으켜 주아를 감아야 한다. 맨 손으로 주아를 감았다가 손바닥에 피멍이 들고 살갗이 수차례 까졌었다. 이런 의미에서 가죽 손수건은 참으로 소중하다. 주아가 말을 안 들어줄 때 이것이 없을 때 망연해진다. 와인을 따야 하는데 와인 따개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과 비슷하다. 




주아와 조율 

조율의 상태는 연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콩쿨이나 입시 때 줄이 풀리면 손의 감각이 모두 재편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아니라 이번 연주는 망한, ‘이연망’이다.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입시에서의 연주는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한다. ‘그때 주아만 안 풀렸어도,,,’라며 먼 산을 바라보는 불운한 연주가들도 있으리라. ‘그때 주아만 안 풀렸어도 무대 위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이불킥 하는 연주가들도 있을 테다. 조율과 주아는 불가분의 관계. 이러한 이유로 주아는 해금연주가들을 (개)고생시키기도 하고 원성을 사는 대상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주아를 관리하는 것도 실력이다. 연주를 앞둔 한참 전부터 주아가 제멋대로 풀리지 않는지 매순간 점검해야 한다. 연주 도중 주아가 풀리면 송진가루를 빻아 주아에 듬뿍 묻혀 풀림을 방지해야 하고 송진가루와 습기가 지나쳐 주아가 안 움직이는 경우에도 조절을 해줘야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는 주아도 많다. 이것도 실력이나 관리의 문제일까 싶은 ‘몹쓸 주아’. 







전통주아 vs 개량주아 

이런 이유로 개량주아가 탄생하기도 했다. 주아를 5회 사용분을 감아 놓는 것이 아닌, 1회 사용분만을 걸어놓고 주아 속에 장착된 돌개가 줄을 고정한다. 주아 안에 신비로운 도드래 두 개가 장착되어 맞물려 돌아가는 원리다. 주아 끝부분 회전할 수 있는 부분을 돌리면 부드럽게 조율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전통주아를 선호한다. 손으로 주아를 우두두둑 감는 맛이 있다. 때로 말을 안 들어주어 여전히 진땀을 뺄 때가 있지만 줄과 주아에 대한 감촉과 주아를 다루는 노하우를 꾸준히 내 몸에 감각으로 아카이빙 하는 것이다. 악기의 탄력성도 더 좋은 느낌이다. 주아에 여분의 줄이 감겨 있기에 여기서 자연스런 잉여 장력이 발생한다고 믿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木복판 | 해금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