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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윤 Jun 17. 2021

해금의 유래_상상력 한스푼 :-)

천지윤의 해금이야기

해금의 유래      



해금은 고려시대(918-1392) 중국-당나라를 통해 이 땅에 들어왔다. 몽골지방 해(奚)부족의 악기였다는 이유로 해금(奚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에 버젓이 다른 민족의 이름을 달고 있는 왜색이 짙은 악기다.



악기는 문화의 산물이다. 어느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다른 나라로 이동하며 그 나라에 맞는 모양새로 변화를 거듭했을 테다. 귀화 후 해금의 정체성은 충분히 토착화되었음에도 이름은 여전히 해부족의 해자를 쓰는 아이러니라니!     



우리나라 고대, 그러니까 고구려·백제·신라가 투닥거리며 영토 싸움을 하던 시절. 삼현(三絃) 삼죽(三竹)이라 하여 자생적으로 생겨난 악기들이 있었다. 삼현은 가야금·거문고·비파, 삼죽은 대금·중금·소금이다. 고대의 역사는 그 근거가 문헌이나 사료(史料)로 충분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늘 신화적 상상력과 함께 간다. 다행이 김부식(1075-1151)이 남긴 『삼국사기』에 악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구려의 음악가였던 왕산악이 거문고를 뜯으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문고를 검을 현(玄)을 써서 현금(玄琴)이라 부르기도 한다. 멋지지 않은가. 거문고를 둘러싼 신화 자체가 한편의 뮤직비디오요, 작명 또한 시크하다.


대금의 경우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하여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이 악기를 불면 나라와 백성을 수호할 수 있는 마술피리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한다. 대금은 호국설화의 주인공이다.


가야금은 고구려·백제·신라 사이에 끼어 있던 작은 나라인 가야의 악기다. 가야는 정복 전쟁에 희생되었지만 세련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가야금의 대가였던 우륵은 가야가 망하기 전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귀화한다. 신라의 왕이 이를 귀히 여겨 가야금 음악을 꽃 피울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우륵이 작곡한 음악은 그 곡목까지 남아있다.  



해금은 고려시대에 유입된 악기이기에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사슴이 해금을 켜거늘’ 이란 시구 안에 신비롭게 존재한다. 다행이다. 그럼에도 해금에 관한 이야기는 턱없이 빈곤하다 느껴진다. 이 땅에 해금이 유입되기 전에도 해금은 존재했으리라. 물론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해금이 몽골에서 왔듯, 악기의 원류를 중앙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여럿 있다. ‘산투르’라는 타현(打絃)악기도 페르시아문화권의 악기로 중앙아시아가 근거지다. 서양으로 건너가서는 산투르-심발론-쳄발로-포르테피아노-피아노로 개량을 거듭했다. 이름만 보아도 조상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듯 비슷비슷하다. 동양인 중국과 한국에서 양금(洋琴)이라는 단정하고 영롱한 음색의 악기로 뿌리내렸다.  



왼쪽 몽골의 마두금, 오른쪽 한국의 해금 두대.


중앙아시아에는 해금의 원류쯤 되는 악기도 있었으리라. 이것이 서양으로 가서 비올라다감바-첼로-비올라-바이올린과 같이 발전된 것이다. 동양에서는 몽골의 마두금, 중국의 얼후, 한국의 해금으로 변모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금의 형제라 볼 수 있는 마두금과 얼후. 형제간에도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왼쪽에 세워진 몽골 마두금, 그리고 나의 해금.




해금은 당기고 푸는 역안법을 쓴다는 . 얼후와 마두금은 줄을 사뿐사뿐 짚어가고 손가락의 자리를 이동하며 음을 만들어가지만, 해금은 줄을 당기고 푸는 행위로 음정과 농현을 만든다. 우리음악에 자리한 깊은 시김새와  땅에서 나는 재료와 철학사상이 바탕을 이루며 해금이라는 악기의 정체성이 만들어졌을 테다.  



해부족의 ‘해(奚)’자를 단 해금. 그것 이상의 멋진 의미를 더할 수는 없을까? 나의 상상력과 애정을 더하여 해금의 시작점을 생각해본다. 해금은 그 시절 몽골 어느 벌판에 있었으리라. 이곳의 유목민은 새로운 초원을 발견하면 그곳에 밤새 불을 피우고 춤을 추고 노래했으리라. 낮엔 양떼를 몰거나 소떼를 몰고, 밤엔 별을 보며 시를 짓고 해금(비슷한 악기)에 맞춰 노래를 불렀으리라. 이 축제에서 활약한 악기는 해금이었을 것이다. 해금은 광활한 초원, 별을 따라 다니던 음유시인의 악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함께할 ‘해(偕)’금,

화합할 ‘해(諧)’금,

만날 ‘해(邂)’금,

새벽을 건너 이슬 기운을 머금은 맑고 영롱한 ‘해(瀣)’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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