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윤의 해금이야기
革
가죽
가죽손잡이는 말총 오른쪽 끝의 매듭 부분과 활대 오른쪽 끝 부분을 연결한다. 오른손으로 가죽손잡이를 잡아 말총과 활대의 균형을 잡고 힘을 전달한다. 해금을 처음 배울 때 활 잡는 법부터 배운다. 입문자를 가르치며 수도 없이 설명하며 정리 된 방법이 있다. 이 매뉴얼대로 따라해 보자. 그리고 이 모양이 완전히 몸에 익을 때까지 매일 이 순서를 떠올리며 활대 잡는 법을 익히도록 하자. 매 연습 시작 전 이 매뉴얼로 3분만 투자하면 큰 무리 없이 활대 연습에 돌입할 수 있다.
1. 오른손바닥이 보이도록 펴보세요.
2. 3,4,5번 손가락을 접어서 가죽 위 가지런히 얹어보세요.
3. 모양을 유지하며 왼쪽 90도로 회전하세요.
4. 2번 손가락을 90도로 굽혀 활대 아래를 받쳐주고요.
5. 1지 즉, 엄지손가락은 왼쪽 45도 방향을 향하게 한 후 활대를 살짝 밀어주세요.
가죽손잡이는 말총과 활대에 힘을 공급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힘점을 잘 잡아주고 균형감을 유지하기만 해도 활은 저절로 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말이 쉽지) 초심자에게 이 활 잡는 모양이 유지되고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말처럼 잘 된다면야...) 활이 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해금연주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활 잡기는 집짓기로 따지면 주춧돌을 바르게 놓는 것과 같다.
힘의 공급을 잘 해주려면 손 모양은 기본이요, 가죽 또한 튼튼해야 한다. 해금을 처음 시작했던 1995년만 해도 가죽의 두께가 얇았다. 점차 다양한 해금음악이 나옴과 동시에 활 테크닉이 변화무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이를 잘 받쳐주기 위해 우렁찬 톤부터 여리여리한 음색까지 다양한 활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활의 힘을 더 내기 위해 가죽을 2-3겹 겹쳐 쓰는 연주가들이 있었다. 이후 악기사에서 2-3배 두껍고 튼튼한 가죽손잡이를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했다. 가죽의 색상도 다양해졌다. 기존 천편일률적인 갈색 톤의 가죽에서 보랏빛, 붉은빛, 누런빛까지 과감해졌다. 나 역시 두꺼운 가죽손잡이를 선호한다. 테두리에 고운 색실 스티치까지 있으면 더 좋다.
연주에 있어 튼실하고 긴 활법은 팔의 전체적인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테니스 칠 때 어깨와 팔 전체를 휘두름과 동시에 전신의 힘을 쓰는 느낌으로 채를 휘둘러야 공이 힘을 받을 테다. 힘찬 공을 칠 때 스냅을 사용하다가는 손목의 작은 근육들이 빠른 시간 내에 수명을 다하고 말 테니. 힘찬 공 뿐 아니라 상대가 예측하지 못할 다양한 방향과 힘으로 공을 보내야 승리할 수 있는 법. 힘차게 멀리 뻗는 공, 짧게 가는 공, 변화구, 긴 포물선을 그리는 공 까지.
해금도 마찬가지다. 0부터 100까지의 볼륨. 빠른 활, 느리고 긴 활, 작았다가 커지는 활, 희미하게 사라지는 활 등등 다양하게 그려내고 싶다. 다양한 소리의 볼륨감과 색채감은 가죽손잡이에 얹힌 오른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들이다. 두텁고 힘찬 활과 더불어 긴 호흡의 음악은 손-팔-어깨-상체-코어-하체까지 연결된 큰 차원의 힘을 쓴다. 여리고 섬세한 세필을 써야하는 구간에서는 손의 작은 움직임들로 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가죽손잡이 위에 얹힌 3,4,5번 손가락이 꿈틀대며 힘을 조절한다. 깊은 소리를 표현할 때는 손가락으로 깊은 구덩이 흙을 파듯 가죽을 움푹 눌러줘야 한다. 음절 하나하나 발음을 명확히 해야 하는 구간에서는 손가락으로 통통통 가죽을 튀기듯 움직여 음표마다 새침한 힘을 전달한다. 이 힘 조절이야말로 음악을 섬세하게 세공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소리의 음각과 양각, 색채의 분별을 최전방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이가 가죽손잡이다.
가죽손잡이를 오래 사용하다보면 너덜너덜해진다. 가죽에 손가락이 닿는 부분은 꾹꾹 눌려있고, 땀에 절어 시커멓게 태닝 된다. 수명을 다해 송진을 먹여도 금새 반딱반딱한 낡은 빛을 내며 소리를 고이 내주지 않는 말총과 더불어 망가진 가죽 또한 폐기처분 된다. 새 말총과 새 가죽을 받아들이고 다시 내 몸의 일부처럼 길들인다. 어느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