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안테벨룸’ 분노만 담겨 공감 힘든 막무가내 스릴러
인종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 소식을 알렸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와 현대를 오가는 색다른 미스터리로 흥미를 돋운 작품 ‘안테벨룸’이 그것. 그러나 영화는 흥미로운 설정, 중요한 주제의식과는 달리 어설픈 전개와 허술함이 묻어나는 구성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 '안테벨룸' 스틸. 사진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미국 남부의 한 작은 목화 농장에 수십 명의 흑인 노예가 가혹한 환경 속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다. 탈출을 시도하던 한 흑인 여성은 처형 당하고, 흑인 사이 정신적 지주인 한 여성은 자신의 무력함에 눈물을 흘린다. 한편 현 시대 가장 성공한 흑인 여성 작가 베로니카(자넬 모네)는 섬뜩한 꿈에서 깨어나 놀란 마음을 다스리고. 가족과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외로운 출장길에 오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근사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던 길, 그는 심상치 않게 흐르는 분위기와 이상함을 감지한다.
영화 ‘안테벨룸’(감독 제라드 부시, 크리스토퍼 렌즈)은 성공한 흑인 여성 작가 베로니카가 무언가에 의해 선택 받은 후,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끔찍한 세계에 초대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겟 아웃’, ‘어스’ 제작진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며 인종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 작품으로, 꿈과 현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펼쳐지는 섬뜩한 설정이 흥미를 돋운다.
영화 '안테벨룸' 스틸. 사진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여러 신조어 가운데 ‘뇌절’이라는 말이 있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똑 같은 말이나 행동을 반복해 상대를 질리게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다. 영화 ‘안테벨룸’에는 이 ‘뇌절’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듯 하다. 독특한 소재와 문법으로 호평을 받았던 영화 ‘겟 아웃’, ‘어스’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한 채 자가복제 됐다.
물론 설정과 소재는 다르다. 허나 이야기 구성과 전개 방식은 여전하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기이한 공간, 광기에 사로잡혀 끔직한 짓을 자행하는 백인 집단, 선량한 피해자인 흑인들. 겉으로는 없어진 듯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여전히 만연한 인종차별에 대해 꼬집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매번 같은 방식으로 그리는 것은 일종의 세뇌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영화 '안테벨룸' 스틸. 사진 올스타엔터테인먼트
특히 ‘겟 아웃’, ‘어스’와 달리 ‘안테벨룸’이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장르의 변주에 기인한다. 전작의 장르는 명확히 호러였다. 호러는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그때 관객은 이야기에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입체성을 요구하기보다 섬뜩함과 스릴 자체를 즐기게 된다. 때문에 ‘겟 아웃’, ‘어스’는 허무맹랑한 설정을 갖고 있을지라도 흥미로웠다.
반면 ‘안테벨룸’은 호러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 보다 현실에 발이 붙어 있다는 의미다. 악몽 같은 공간일 뿐 현실 속에 존재한다. 현실임을 자각하는 순간 관객은 개연성에 집착하게 되고, 캐릭터들의 내면에 궁금증을 갖게 된다. 허나 ‘안테벨룸’은 개연성을 따지기 조차 민망할 정도로 과하게 허술하고, 캐릭터 역시 사실감을 부여하기보다 그저 인종차별을 의인화하는데 치중했다.
영화 '안테벨룸' 스틸. 사진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때문에 ‘안테벨룸’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가 느껴지긴 하지만 되레 심히 맹목적으로 비춰져 반감을 부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 속 흑인은 모두가 재치 넘치고 선량한 이들인 반면 백인들은 일상이 인종차별로 점철돼 있다. 정작 미국 사회에서 흑인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히스패닉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으며, 아시아인에 대한 은근한 무시와 경멸 역시 엿볼 수 있음에도 그저 분노만 하고 있으니 영화에 공감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개봉: 2월 23일/ 관람등급: 15세 관람가/감독: 제라드 부시, 크리스토퍼 렌즈/출연: 자넬 모네, 잭 휴스턴, 지나 말론/수입·배급: ㈜올스타엔터테인먼트/러닝타임: 106분/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