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도를 닮은 안개
언제부턴가 아침에 일어나면 주방 창가에 서서 오늘의 날씨를 체크하고 카메라에 남기곤 한다. 오늘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안개로 가득해 뿌연 연기가 뒤 덮여 숨 쉬기가 힘든 날처럼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았던 독일의 날씨가 생각나는 안개 낀 어느 날이 생각이 나는 날이다. 지금보다는 훨씬 추운 날 코 끝이 시린 날 서리가 내려 식물들이 살얼음에 쌓여 한국의 전통 디저트인 도라지 정과 같은 식물들이 천지에 가득한 날의 기억은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하는데 가끔은 꺼내고 싶은 날이 있다. 혼자 걷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날도 있고 생각주머니가 비워지는 날도 있다. 오늘은 아주 아주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안개가 가득한 창 밖 풍경을 보다가 기상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수증기를 포함한 대기의 온도가 어떤 이유로 내려가 이슬점 온도에 도달할 때 포함된 수증기가 아주 작은 물 입자가 되어 공중에 뜬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것들은 나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줄 때가 많은데 구름 말고 안개도 그런 것 같다.
오늘 하루의 시작은 안개로 시작했으니 내 마음의 온도는 몽글몽글 일 수는 없다. 구름은 아니니까 말이다.
앞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 날은 해를 자연스럽게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내 삶에도 안개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날이 수없이 많았다. 그래도 더듬더듬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던 나의 작은 걸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내가 걸어간 걸음수만큼 발자국이 남아 있으니 뒤돌아 본 어느 날에는 길이 나 있을 거란 믿음으로 하루를 산다.
오늘 하루를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잘 넘기면 된다. 2025년 트렌드 코리아에서 발표한 키워드 중 제일 맘에 드는 키워드는 #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Nothing Out of the Ordinary:Very Ordinary Day )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하반기와 내년의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잘 정리하고 싶다. 오늘은 마음의 온도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날이다. 그래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