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질문하기 위해 걷는다
매일 아침 산책을 루틴으로 하며 살아가기로 한지 10여 년이 넘어간다. 내게는 걷고 또 걷는 행위가 나를 살렸던 시간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우산을 받쳐 들고 빗소리를 들으며 걷고 바람 부는 날이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바람 냄새를 코로 들이마신다. 겨울엔 내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온도에도 차디찬 온도를 견디며 걷고 또 걷는다. 왜 걷냐는 질문에 그냥 걸었어라는 대답은 철학적 사유가 깊이 담긴 말이라는 걸 50살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은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멀었다. 더 늦게 천천히 걸어서 귀가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 부정적 생각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느리게 걷기를 했다.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하면 걷는 일은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밤 사이 내린 비가 멈춘 어느 날 아침 산책길은 전날에 남아 있는 찌꺼기들까지 모조리 내 보내는 일을 했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흙땅은 폭신해져 있어 족저근막염을 고질병으로 가지고 있는 내게는 완충제 역할을 해 주었다. 가끔 이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마치 내가 색의 마술사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끼색은 초록색 중 가장 아름다운 색이었다. 자연을 느끼며 걷는 날이 많아질수록 내게 질문하는 날이 많아졌다. 신기하게도 가끔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낼 때도 있었다. 질문을 하는 날은 나를 꾸짖기도 하고 토닥이기도 했다. 누군가 내 옆을 지나간다면 너무 창피한 질문 내용에 유치한 눈빛을 보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을 천천히 걷는 동안 수십까지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심지어 세상 속에 살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건 나를 타인처럼 대하는 시선이었다. 내가 가장 취약성이라고 생각하는 회피성향의 근원도 알게 되었다. 완벽하려고 애쓰며 살아도 완벽할 수 없는 나를 채찍질만 하고 살았던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던 어느 날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매일 아침 걷는다. 살기 위해 걷고 질문하기 위해 걷는다. 아침 산책에서 만나는 모든 자연에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자연은 말 없는 스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