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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Dec 14. 2024

별것도 아닌 것이

주름진 손등속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주방으로 갑니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니, 시원한 청량감이 입을 적시고 목으로 넘어갑니다. ‘아~ 시원하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단어는 '감사'입니다. 내 안에서 진실된 감사가 나오는 순간입니다.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콩팥기능이 조금 약해서 2-3달에 한 번은 피검사를 하는데, 근육에 생성되는 노폐물인 크레아틴(Cr) 수치로 신장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물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실 것을 권유받으면서도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는 커피를 줄이고 물을 좀 많이 마셔야겠습니다. ^^


  큰 아이가 어릴 때는 아토피가 심해서 피부가 많이 건조했습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자기 몸을 긁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자기 전에 침대에서 누워있는 딸의 등을 긁어줍니다. 혹여나 상처가 날까 봐 손톱으로도 못하고 손바닥으로 보듬어 줍니다. 요즘엔 제 등이 가렵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피부도 건조해지고 관절도 부드럽지 못하니 팔이 등 뒤로 넘어가지가 않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이 보입니다. '바각바각 바각바각' 효자손으로 등을 긁습니다. 세상에나! 너무 시원합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에 '바퀴', '나침반', '전기', '안경'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 '효자손'도 하나 추가하겠습니다.ㅎㅎ


  양말을 신을 때 엄지발가락이 '따끔'합니다. 가시가 들어간 거 같긴 한데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됩니다. 가끔씩 따끔거리기 때문에 거슬리긴 해도 그럭저럭 견딜만합니다. 두 세주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우연히 거실에서 엄지발가락 쳐다보았습니다. 무엇인가 반짝거리는 물체가 보입니다. '어머나!' 미세한 유리조각이 반쯤 피부를 뚫고 나왔습니다. 피부가 그동안 이물질을 조금씩 밖으로 밀어낸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핀셋으로 유리조각을 제거했습니다. 신경 쓰이던 까끄라기가 없어지니 앓던 이가 빠진 것 처럼 시원합니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 큰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작고 미약하지만 강한 힘을 발휘할 때도 있고, 무시당하고 버림받아도 그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도 생깁니다. 자녀가 부모의 버팀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기가 엄마의 위로가 될 수도 있고요. 심지어 성경에서는 개미에게 가서 지혜를 배우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할머니가 살아 계셨습니다. 길에 널브러진 실을 주워서 하루종일 한 올 한 올 엉킨 실을 풀어냅니다. 떨리는 손, 주름진 손등, 굽은 허리로 며칠에 걸쳐 실타래 하나 만들어내는 할머니의 손이 잊히지 않습니다. 지프라기를 이용해서 할머니께 손바닥만 한 싸리빗자루를 만들어 달라했습니다. 버려진 지프라기가 작품이 되어 방학과제물로 제출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칭찬은 덤으로 따라왔고요. ^^


  요즘엔 별것도 아닌 것이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귀해'보입니다. 짧은 시간이 '소중'합니다. 문득 바라본 내 손등의 주름에서 '할머니'가 '엄마'가 떠오릅니다. 저도 이제야 철이 드나 봅니다.


대문사진 출처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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