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의 시기를 보내는 방법
허리보다 높은 안장을 지닌, 자기보다 큰 자전거를 타는 법이 있다. 자전거를 몸보다 높은 곳에 기대어 놓고 위에 걸터앉아 출발하는 것이다. 기댈 곳이 없는 자리라면 곡예사 같은 능숙함이 필요하다. 한쪽 발을 페달에 올려 자전거를 비스듬히 움직인 뒤, 몸체를 딛고 올라앉는 것이다. 물론 균형 감각은 기본이다. 어린 시절의 자전거는 요즘처럼 날렵한 레포츠 자전거가 아니었다. 소위 '짐 자전거'라 불리던, 적재함을 단단히 달고 다니던 묵직한 자전거였다. 보통 아버지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심부름도 하고, 한가한 시간에 동네 한 바퀴 돌아다니는 것이 유일한 여가활동(?)이랄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자전거 꿈을 꾼다. 돌밭길이나 가파른 산등성을 힘겹게 오르는 꿈을 꾸면, 현실에서도 어김없이 고단한 일이 닥쳐온다. 자전거가 망가지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꿈을 꾸면, 현실에서도 일이 막히곤 했다. 반대로 새 자전거를 얻거나 경쾌하게 달리는 꿈을 꾸면, 신기하게도 현실은 한결 유유자적했다. 어쩌면 내 무의식이 상황을 자전거에 투영하고, 거기에 기대어 심리적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게 있어 꿈속의 자전거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삶의 길을 비추는 특별한 상징과도 같다.
어느 날 아내에게 "어젯밤에 자전거 꿈을 꿨는데, 내가 좋은 길에서 경쾌하게 달리더라고!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라고 했더니, 아내 왈, "언제까지 자전거를 타야 돼? 자전거 말고 승용차를 한 번 타봐!"
......
아내가 등장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역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아내가 앉아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함께 달리는 그 장면은, 대만 청춘영화 청설(听说) 속 한 장면과 겹쳐졌다. 영화에서 티엔커가 양양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달리던, 설렘 가득한 그 장면 말이다. 아내는 행복해 했고, 너무나 편안해 했다. 꿈에서. ^^
어젯밤,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두툼한 이불을 끌어당겨 그 쌀쌀함을 피해 본다. 인생의 후반, 포의지한(抱衣之寒)의 시절이 아닐지라도, 마음 한편에 작은 추위가 스며들 때가 있기 마련이다. 자전거는 '길'위에 있다. 마치 인생을 달려가는 내 모습이랄 수 있지 않을까? 안장이 높으면 더 높은 곳에 기대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중요한 것은 처음 설렘을 간직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특히나 갱년의 시기를 달리는 우리에게는 호르몬제보다 그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꿈속 작가가 소재를 자전거 대신 승용차로 바꿔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