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침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예전 민중가요《사계》의 노랫말이다. 동장군(冬將軍)이 한걸음 내 딛기 위해 콧김 한 번 불어넣더니 금세 대기가 영하로 떨어졌다. 점심식사하고 사무실에 들어와 두꺼운 외투를 의자 뒤로 벗어두고, 몸을 뒤로 젖히니 스르르 눈이 감긴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따스한 봄날 같은 나른함이 온몸을 감싼다.
'울 엄마도 이 노래를 좋아하셨는데....' 그 치열했던 삶의 고단함을 모두 벗어버리고 이젠 내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 계신다.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로 날아가듯 훌훌 털어버리셨으니 행복하실까? 수술 전 마지막 기초검사를 받기 위해 살갑지 못한 아들을 의지하고 병원을 찾았다. 전신마취를 하고 다리 혈관수술을 앞둔 시점의 검사였다. 연세도 연세지만 워낙 소녀처럼 겁이 많은 엄마의 눈빛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름진 손등이 보인다. 미세한 떨림으로 내게 건네는 시약 한 병이 흔들린다. 삶의 몽환적 장면이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마치 빨간 꽃, 노란 꽃, 가득 핀 한 날의 봄바람처럼 그렇게 인생이, 삶의 기록들이 어우러져 흩날린다.
냉찜질팩이 들어있는 안대를 하고 몸을 뒤로 젖힌다. 차가운 기운이 눈을 통해 시원하게 스며든다. 오늘 낮엔 엄마가 나를 찾으시는가 보다. 무거운 어깨를 뒤로 젖히고, 충혈된 눈을 감으니 담장 위로 날아든 나비가 보이니 말이다.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미싱의 고단함이여. 그 소리는 마치 중국의 纤夫(치엔푸)들이 강물을 거슬러 배를 끌어올리던 그 밧줄이 떨릴 때 나는 둔탁한 리듬과 비슷하다. 배머리에 앉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남자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딛고 몸을 기울이며 밧줄을 당긴다. "그대는 배머리에 앉아 있고, 나는 강가를 따라 걸어갑니다"라는 노랫말 속의 ‘치엔푸’처럼, 우리 시대의 아버지도, 엄마도 그러했고, 미싱은 그렇게 쉼 없이 돌아갔다. 그 밧줄의 흔들림이, 그 발걸음의 굴곡이, 그 미싱 바늘의 진동이 하나의 공명처럼 여겨진다.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오후 1시. 미싱은 다시 돌아가듯, 나도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1994 - Qian Fu De Ai (纖夫的愛)
妹妹你坐船頭哥哥在岸上走
恩恩愛愛纖繩盪悠悠
妹妹你坐船頭哥哥在岸上走
恩恩愛愛纖繩盪悠悠
小妹妹我坐船頭哥哥你在岸上走
我倆的情我倆的愛 在纖繩上盪悠悠悠
你一步一叩首啊沒有別的祈求
只盼拉著妹妹的手哇
跟你並肩走 噢 噢 噢 噢
치엔푸의 사랑
(남자가 부름)그대는 배머리에 앉아 있고,
나는 강둑을 따라 걸어가네
우리의 사랑은 이 밧줄처럼
은은하게 흔들리며 이어지네
(여자가 부름)내가 배머리에 앉고,
당신은 강둑을 따라 걸어가네
우리의 정, 우리의 사랑은
이 밧줄 위에서 아련하게 흔들리네, 흔들리네
당신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머리를 숙이며(절하며)
다른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네
오직 내 아가씨의 손을 꼭 잡고
당신과 나란히 함께 걷기를 바랄 뿐이네.
오 오 오 오 오
장강(長江, Yangtze)의 상류 지역에서, 급류를 거슬러 배를 끌었던 川江号子 (Chuānjiāng hàozi, 촨장 하오즈) 문화가 있습니다. "号子(하오즈)"는 노동자들이 일할 때 부르는 구호 노래입니다. 纤夫(치엔푸)는 물을 거슬러 배를 끄는 노동자를 말합니다.
대문사진 출처 : 瀚林国际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