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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압축된 삶

새로운 계절을위한 준비

숱한 아쉬움

by 위엔디

어릴 적 내 머리 값은 백만불이었다. 그 가치는 우리 이모들이 정해주셨다.


"어쩜 인표머리는 이렇게 예뻐~ 머리가 백만불짜리야"


반곱슬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사실 커서는 친구들의 생머리가 부럽긴 했다. 머리에 손을 대지 않아도 자연스레 머리의 형태가 유지되는 것은 아무래도 매력적이었다. 곱슬머리는 관리하기가 좀 어정쩡하다. 특히 모자를 쓰고 벗으면 원래 머리로 돌아가지 않고 눌린 상태로 남아있는다.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도 헬멧 때문에 포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차라리 완전곱슬머리였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원형보존이 잘 되련만, 반곱슬머리는 상황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이리 치이면 이 모양, 저리 치이면 저 모양이다.


세월은 흘러 이제는 생머리든 반곱슬머리든 중요하지 않다. 머리숱이라도 풍성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정수리로부터 시작에서 옆머리까지 머리숱이 현저히 빠졌다. 머릿속이 휑하니 초라하기 이를 때 없다. 작년부터는 급기야 앞머리숱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옆으로 넘길 머리가 없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두피자극을 줄이려고 EM샴푸도 사용하고, 저녁에는 용하다는(?) 발모영양제도 발라보았지만 세월이라는 막강한 군사 앞에는 역부족이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여백

아파트단지 초입에 느티나무가 있다. 수형(樹形)이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여름이면 그 아래 그늘은 단지 내 노인들의 쉼터가 된다. 어림잡아 여든 살은 돼 보이는 왜소한 체구의 한 어르신은 늘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으신다. 아파트에는 느티나무 외에, 메타세콰이아, 벚나무, 산수유, 철쭉 등의 수목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봄철에 만개하는 철쭉과 벚꽃의 화려함, 메타세콰이아의 웅장함이 늘 마음의 피로를 잊게 해 준다.


지난주부터 단지 내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이다. 겨울로 넘어가기 전 수목에 잎이 떨어지고, 나무 활동이 멈춘 시기가 전지(剪枝) 작업의 적기라 할 수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외부 업체에 용역을 줘서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지난겨울 폭설 때문에, 높이 솟은 메타세콰이아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위험한 일이 발생했다. 그 때문인지 올핸 관리사무소에서 작심하고 일을 벌인 것 같다.


삐죽삐죽 지저분한 향나무도 매끈하게 다듬어 놓고, 산수유도 열매만 남겨둔 채 잔가지들을 시원하게 정리해 간다. 메타세콰이아는 마치 작년 겨울, 사고의 원흉인 것처럼 가지치기 정도가 아니라 허리를 댕강댕강 쳐 놓았다. 그 늠름하던 자태는 사라지고 자기 몸통하나 유지하고 서 있으니, 낙향한 선비의 낡은 갓, 바람에 눌린 그림자처럼 처량하기 그지없다.


'설마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도 자른 거 아니겠지?'


아내와 걸어가며 단지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가 걱정이다. 한 걸음에 그곳에 다다르니 느티나무는 무사하다. 안쪽 가지를 솎아낸 흔적이 보이긴 해도 흉물스럽게 가지를 잘라내지는 않았다. 가지숱은 확실히 줄어든 것이 역력하다.


아침 출근길, 단지 내 시원하게 정리된 나무들을 바라본다. 풍성함과 아늑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쓸쓸함만 남아있다. 하지만 나무가 세월을 버티며 가지치기를 감내하듯, 나 역시 머리숱 변화 앞에 맞서야 한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백만불짜리 머리’는 떠났음을 느끼지만, 그 빈자리에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여백이 생긴다. 백만불짜리 머리는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한 계절을 더 살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가지를 쳐낸 자리로 바람이 스며들고 햇빛이 드니,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루를 맞는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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