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호우시절(好雨時節)
그치지 않고 내린 비 덕분에 넋을 잃고 비구경으로 시간을 보낸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우수(雨水)였던 19일부터 계속 내리는 비는 중년의 마음에 상념을 가지게 합니다.
봄날은 간다도 좋지만 한 폭의 수채화같은 촉촉한 빗소리가 담긴 허진호 감독의 영화 <호우시절>이 벌써 15년 전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중국 판다의 고향 청뚜(成都), 청뚜는 판다의 고향이기도 하고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젊은 정우성이 중국으로 출장을 와서 재회한 오래 전 친구 메이(고원원)와 옛 시절로 돌아가 첫사랑의 느낌을 가지는 스토리입니다. '메이'는 두보 기념관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었지요.
두보의 시와 참 잘 어울렸던 영화, 그리고 오늘 쉬지 않고 내린 비와도 참 잘 어울리는 시.
시의 제목은 <춘야희우>입니다.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호우시절이란 단어가 나와요.
실제는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로 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안다는 뜻입니다.
두보가 말년에 청뚜에 자리를 잡고 농삿일을 돕는데 가뭄으로 비가 오질 않아 참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려라 내려라 했던 비는 한참 애를 태우다가 봄의 어느 날 밤에 내리기 시작합니다.
반가운 두보는 좋은 기분에 맞춰 시를 짓습니다.
<春夜喜雨>
好雨知時節,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江船火獨明。
曉看紅濕處,花重錦官城。
좋은 비는 때를 아는 것 같아
봄이 되니 때맞춰 내리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찾아와
만물을 적시고 소리 없이 내리네
길은 온통 어두운 구름뿐
강 위에 뜬 배의 불빛만 밝고
새벽되어 젖은 곳 바라본다면
금관성에 꽃들이 만발했으리
<금관성>이 바로 호우시절의 배경지 청뚜입니다.
오늘 내린 비로 만물을 적시고 비 그쳐 젖은 곳에서 꽃들이 만발하겠지요.
문득 또 생각이 이어집니다. 호우시절, 만추, 그리고 헤어질 결심까지 중국배우들과 함께 만든 영화도 참 많군요. 다시 한중관계도 꽃이 피고 밥이 익듯 모락모락 피어나길 바라봅니다.
좋은 날, 좋은 비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