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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잡담 Nov 25. 2022

퇴사 하겠습니다



프랑스에 가기 위해선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퇴근 후 친구들이랑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잔. 주말에 동네 당구장에서 형님들과 당구 한게임과 짜장면 한 그릇. 늦은 밤 그녀와 함께 보는 심야 영화. 그리고 가뜩이나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과의 시간은 더욱더 멀어질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것은 18년 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퇴사하겠습니다’


의외로 퇴사는 간단했다. 8년 동안 일한 회사지만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났다. 어떤 요구도 회유도 없었다. 회사 대표님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프랑스에 잘 갔다 오라고 했으며 옆팀에 동료들도 그저 부럽다고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자기 할 일을 찾아 자리로 갔다. 그리고 난 내 자리로 와서 자리를 비울 준비를 했다. 방송 쪽 일이 헤어짐의 주기가 짧다. 프로그램 하나를 위해 최고(아니 최적이라 해두자)의 조합으로 뭉쳐 일하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바로 모두 흩어져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다른 프로그램(프로젝트)을 찾아 떠난다. 프로그램은 보통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2년 정도다. 물론 몇 년씩 하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또 그 안에 구성원들은 보통 길어야 2~3년 주기로 바뀐다. 18년 동안 일하면서 수십 명의 선후배와 일해왔고 수없이 많이 자리가 바뀌었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다. 아니 어쩌면 특별하다고 느낀 건 나뿐일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다시 자기 자리에서 하던 일을 하면 되니. 그래도 프로그램 2~3개를 같이 하면서 울고 웃었던 후배 피디들과 작가들이 아쉬워했다. 물론 나도 일을 그만한다는 것보다 이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과 같이할 자리는 없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 마지막 시사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은 유치원 때부터   같다. 어느  아침, 엄마는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 백합유치원 달님 반의 어떤 자리에  앉혀 주셨다. 그렇게 그날부터 아침마다  자리 찾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국민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항상 00 분단 00번째 줄에  자리가 있었고 아침이면  정해진 자리로 등교했다. 고등학교부터는 룰이 바뀌었다. 아침에 등교한 순서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있었다.   앞줄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뒷줄에 가면 자연스럽게 주의가 산만해지기에 중앙에서 살짝 비껴간 오른쪽 3~4번째 자리를 선호했다. 대학 때도 물론 항상  정도 위치쯤에서 강의를 들은  같다. 그리고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뒤로는  룰이 바뀌어 항상 자리가 정해졌다. 처음 조연출 때는 자리도 없이 일했고 (경력) 먹어 가면서  자리가 정해졌다. 혹은  자리에 가기 위해 회유와 아부도 있었다.  자리에 책상은  넓었으면, 구석진 자리보다는 볕이 들어오는 밝은 창가  자리가, 의자도 등받이가 푹신해 야근할  한숨 때릴  있는아님 단독으로  방이 있는 자리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욕심을 기반으로  열심히 일했고 더욱 눈치 빠르게 선점하려 했다.   자리는  자리고 누구보다도  자리에서 잘할 자신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남짓한 좁은 자리에서 오롯이 시청률만 생각했기에  시야는 좁았고 야근수당 없는 야근으로  몸은 망가져 갔다. (야근 수당이라도 있었으면  억울했을 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나에겐  자리가 나를 가두고 있다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생각하니  홀가분하다.


@ 항상 지저분 했는데 이제야 깨끗해짐


2022년 10월 31일.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아마도 다른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곧 떠날 것이다. 프랑스로


ps. 지금 내 자리는 거실의 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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