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가기 위해선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퇴근 후 친구들이랑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잔. 주말에 동네 당구장에서 형님들과 당구 한게임과 짜장면 한 그릇. 늦은 밤 그녀와 함께 보는 심야 영화. 그리고 가뜩이나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과의 시간은 더욱더 멀어질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것은 18년 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의외로 퇴사는 간단했다. 8년 동안 일한 회사지만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났다. 어떤 요구도 회유도 없었다. 회사 대표님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프랑스에 잘 갔다 오라고 했으며 옆팀에 동료들도 그저 부럽다고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자기 할 일을 찾아 자리로 갔다. 그리고 난 내 자리로 와서 자리를 비울 준비를 했다. 방송 쪽 일이 헤어짐의 주기가 짧다. 프로그램 하나를 위해 최고(아니 최적이라 해두자)의 조합으로 뭉쳐 일하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바로 모두 흩어져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다른 프로그램(프로젝트)을 찾아 떠난다. 프로그램은 보통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2년 정도다. 물론 몇 년씩 하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또 그 안에 구성원들은 보통 길어야 2~3년 주기로 바뀐다. 18년 동안 일하면서 수십 명의 선후배와 일해왔고 수없이 많이 자리가 바뀌었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다. 아니 어쩌면 특별하다고 느낀 건 나뿐일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다시 자기 자리에서 하던 일을 하면 되니. 그래도 프로그램 2~3개를 같이 하면서 울고 웃었던 후배 피디들과 작가들이 아쉬워했다. 물론 나도 일을 그만한다는 것보다 이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과 같이할 자리는 없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내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은 유치원 때부터 인 거 같다. 어느 날 아침, 엄마는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 백합유치원 달님 반의 어떤 자리에 날 앉혀 주셨다. 그렇게 그날부터 아침마다 내 자리 찾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국민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항상 00 분단 00번째 줄에 내 자리가 있었고 아침이면 그 정해진 자리로 등교했다. 고등학교부터는 룰이 바뀌었다. 아침에 등교한 순서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난 맨 앞줄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뒷줄에 가면 자연스럽게 주의가 산만해지기에 중앙에서 살짝 비껴간 오른쪽 3~4번째 자리를 선호했다. 대학 때도 물론 항상 그 정도 위치쯤에서 강의를 들은 거 같다. 그리고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뒤로는 또 룰이 바뀌어 항상 자리가 정해졌다. 처음 조연출 때는 자리도 없이 일했고 짬(경력)을 먹어 가면서 내 자리가 정해졌다. 혹은 그 자리에 가기 위해 회유와 아부도 있었다. 내 자리에 책상은 좀 넓었으면, 구석진 자리보다는 볕이 들어오는 밝은 창가 쪽 자리가, 의자도 등받이가 푹신해 야근할 때 한숨 때릴 수 있는… 아님 단독으로 내 방이 있는 자리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욕심을 기반으로 더 열심히 일했고 더욱 눈치 빠르게 선점하려 했다. 꼭 그 자리는 내 자리고 누구보다도 그 자리에서 잘할 자신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그 한 평 남짓한 좁은 자리에서 오롯이 시청률만 생각했기에 내 시야는 좁았고 야근수당 없는 야근으로 내 몸은 망가져 갔다. (야근 수당이라도 있었으면 덜 억울했을 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나에겐 그 자리가 나를 가두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생각하니 꽤 홀가분하다.
2022년 10월 31일.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ps. 지금 내 자리는 거실의 소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