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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Y Nov 22. 2022

[작업기록일지] 흐려져 가는 기억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

Single-Channel video, p, ‘ “, 2022

드라마에서 매사 완벽하고 무엇이든 잘하는 캐릭터를 보고 감정을 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그들보다 덜 완벽해도 어설프고 부족한 모습이 있는 캐릭터를 보고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모자라 보이지만 매력적인 이들에게 열광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의 본체가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정의된 찌질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러한 이들을 비판할 뿐이지만 인간은 본래 나약한 존재인지라 누구나 찌질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도 찌질한 모습을 내비치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내 모습에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다.찌질함을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혹은 누군가 그렇게 말해도 그 사람과 나의 감정적인 교류가 다른 것임을 인정해버리니까.


우린 누군가 정해준 틀에 맞추려고 사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존재가 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몰라보고 있는 숨겨진 매력을 들춰내도 좋다.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이다. 찌질해도 좋다.


스스로 찌질함을 긍정으로 규정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형상이 불분명하면서도 분명하게 그려지는 모호한 형상들은 찌질함에 대한 진술이 된다. 찌질함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측면 가운데 작업자가 규정하는 면만 가려내어 포착한다. 규정에 일련의 지침을 내리기 위한 방식으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다. 그리고 작업자는 경험으로의 흡수 방식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감정을 내가 아닌 우리의 것으로 스며들게 한다.


감정이란 여러 해석의 여지가 다분하듯 다채롭고 복잡 미묘한 것임을 인정한 채, 나름의 분명한 매체로 감정을 사라지지 않게 할 혹은 형상을 상상하게 할 방식으로 다가간다. 다가가기 시작했을 때 찌질함은 모호했던 감정에 스며들며, 모호함은 찌질함을 시늉하고 묘하게 엉키기 시작한다. 그 엉킴을 따라 새로운 이미지가 펼쳐진다. 그 이미지는 바로 작업자 내면의 공간을 추상적으로 펼쳐놓은 이데아이다.


이곳에서 작업자는 모호한 일부분을 제시한 채 함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나간다. 공간 속에서 이미지 위에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혹은 자연스러운 노랫말을 창조해 나간다. 감정들은 시차를 가지고 지나간 이미지와 휘발된 소리를, 서로의 말을 곱씹는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부딪치며 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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