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by 양심냉장고


도종환의 '담쟁이'


도종환 시인의 시에 '담쟁이'라는 것이 있다. 아주 사소한 담쟁이 잎 하나로 인간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교훈을 이끌어내고 있어 감동의 여운이 있는 시이다.


이 시는 사회참여적인 시로, 현실의 벽이라는 사회 부조리 앞에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함께 극복해 가자는 민중의 참여를 촉구하는 시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사회참여적인 시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를 어려움 앞에서 절망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의지와 감정을 표현한 서정시로 보아도 상관은 없다. 자신이 보잘것 없는 담쟁이 이파리 같은 존재일지라도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담쟁이'라는 시는 나약한 소시민들의 군중심리를 전제로 영웅적인 존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라고 할 수도 있다. 모두가 절망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그런 이들을 이끌고 벽을 넘는 영웅 하나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종환 담쟁이 .jpg


많은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가장 높이 올라서 앞장서 가려면 엄청난 노력이 뒤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담을 넘는, '하나'가 되는 영웅적인 삶이 멋지기는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길을 주저하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는 '수많은 이파리 중의 하나'가 되는 삶을 살게 된다.


수많은 담쟁이 이파리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문학에서는 이런 걸 '소시민 의식'이라는 말로 치부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절망하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소시민인 이파리들은 영웅적인 '하나'가 나타나 자신을 강력하게 이끌어주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영웅적인 서사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담쟁이


내가 살던 시골집 담벼락에도 담쟁이가 자랐다. 담장 밖은 거름도 좋고 물도 풍부해서 담쟁이가 참 잘 자랐고, 아침이면 수많은 잎을 이끌고 올라와 담장을 넘는 녀석이 언제나 있었다. 다만, 담장을 넘으면 그만이었다. 담 너머엔 더 올라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마당 안으로 머리를 던진 채로 이리저리 바람에 몸을 흔드는 놈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시골집 담장은 튼튼하지 않았다. 단단하지도 않았고 넘을 수 없을만큼 높지도 않았다. 담장은 제풀에 흔들려 갈라진 틈도 한두 곳이 아니었고, 그 틈으로는 새앙쥐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그 틈 사이로 새앙쥐가 고개를 내민 게 아니라, 담쟁이 줄기 하나가 비집고 들어왔다. 담쟁이면 담쟁이답게 벽에 매달려 조금이라도 더 올라갈 생각을 할 것이지,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어두운 틈 속으로 비집고 들어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지난 밤 틈 사이로 비친 마당 안의 불빛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대가리를 들이민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담장 너머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저 수많은 이파리들이 기를 쓰고 올라가는 것인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솟아날 구멍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담장의 틈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녀석은 새로운 공간의 벽에 자신의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곳은 수많은 다른 이파리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으니 제법 자리도 넓게 잡아가며 많은 이파리도 키워냈다. 신기한 건 갈라진 틈과 담쟁이가 한 몸이 되어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길게 갈라진 틈이 나무의 줄기처럼 보이고 그 줄기에서 다시 수많은 가지와 나뭇잎을 피운 듯 보였다. 그건 마치 담쟁이가 그린 벽화로, 자신의 내면을 그린 자화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담쟁이가 그린 자화상이 보일 것이다. 콘크리트 마당 밑바닥부터 굵게 금이 간 틈이 있고 그 틈의 중간쯤을 뚫고 들어와, 그곳에서부터 다시 새로운 삶을 만들어낸 담쟁이의 강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녀석은 가장 먼저 담을 넘었다가 다시 내려오는 녀석을 만나고 있다.


image0 (2).jpeg 틈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자란 담쟁이




그날 다른 사진도 찍었다.


담장 안은 콘크리트로 포장했기에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곳이었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그 작은 틈을 뚫고 나와 채송화 꽃을 피운 녀석들과 잡초도 하나 보였다. 그건 황량한 우주 한복판 작은 별처럼 보였다.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곳이어도 누군가는 또 어떻게든 살아남아 꽃도 피우고, 꽃이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었다.


image0 (1).jpeg 콘크리트 마당 안에서 자라는 채송화 외 이름없는 풀


가장 앞서서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잘 보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꽃밭에 무리지어 사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

작은 빛이 들고 뿌리내릴 수 있는 틈만 있으면,

우리는 제 스스로 줄기를 곧게 세우는 나무도 될 수 있고

꽃도 피울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살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아주 신파적 감정 상태가 되어 이 사진들을 찍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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