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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기 Feb 28. 2023

심의위원의 판단_2

학교폭력 심의센터 이야기

  심의위원회는 전체 위원 중 3분의 1 이상을 학부모 위원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상당수의 위원이 학부모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학부모 위원 외에는 교감이나 교사 등의 교원 위원과 변호사나 경찰관 등 기타 전문가 위원 등이 보통 심의위원으로 참여합니다. 학부모 위원이 3분의 1 ‘이상’ 참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교원 위원이나 기타 전문가 위원을 섭외하고 나면 남은 인원은 거의 학부모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학부모는 다른 영역의 위원보다 상대적으로 큰 집단(pool)이고, 학교장 추천이든 공고를 통한 모집이든 섭외가 어렵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규정을 감안해 봐도 학부모의 비중이 크다고 해서 흠 잡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죠. 심의위원회의 연수年數가 늘어나면서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려는 학부모의 요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을 직접 접하면서 관련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죠. 또한 심의위원회에 참여할 때마다 소정의 수당이 지급되므로 일종의 부수입을 얻는다는 이점도 있죠. 결국 심의위원회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학부모 위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심의하는 사람이든 심의를 받기 위해 참석한 사람이든 그 입장만 다를 뿐, 회의실을 나서면 자녀를 둔 학부모라는 동일한 역할을 가진 셈이죠. 누군가의 사안을 심의하고 있지만, 학부모 위원도 언제든 학교폭력 관련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심의위원을 함부로 대하거나 그들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동의하더라도 한편으로 또 다른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심의위원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자녀와 관련된 민감한 일을 쉽게 맡길 수 있을까요? 자녀의 학교생활 적응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고, 학적에 부정적 기록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을 그들에게 결정하도록 놔둘 수 있을까요? 그 무엇보다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다루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그들의 심의 결과를 기꺼이 수용하고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의문이나 질문이 다소 지나치거나 공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의위원의 자격이나 역량을 문제 삼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죠. 학교폭력이 점차 증가하는 만큼 관련 민원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실제 겪었던 민원 하나가 생각나네요. 학교폭력 심의센터로 직접 찾아왔던 학부모가 있었습니다. 자녀에 대한 심의 결과 통지서를 받자마자 교육지원청 학교폭력 심의센터에 항의하러 온 학부모였죠. 보통 항의성 민원은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기관으로 직접 찾아오는 건 흔치 않았던 터라 꽤 기억에 남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학부모는 자녀의 가해학생 조치에 대해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심의센터를 들어설 때부터 이미 격앙된 상태였죠. 통지서를 탁자 위에 내던지며 ‘이게 도대체 뭐냐!’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실 자녀의 조치보다 상대 학생의 조치 없음에 더 화가 났던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서로 피해를 주장하는 사안이었거든요. 이에 둘 중 한쪽만 가해학생으로 인정되었고, 다른 한쪽은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심의센터를 방문한 학부모는 당연히 가해학생으로 인정된 쪽이었죠. 이러한 조치 결과에 대해 이성적인 성찰보다는 감정적인 동요가 앞섰던 것 같았는데, 당사자로서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본인의 감정을 동기나 근거로 하여 어떠한 행동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오죽했으면 직접 심의센터까지 찾아왔을까 싶기도 하지만, 직접 찾아와서 따진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엄연히 마련된 절차나 방식을 무시한 채 무작정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고 본인의 요구만 관철하려는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심의센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의 무례한 행동을 지적해야 할까요? 필요하다면 그래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들의 방식이 부적절하고 적법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고 공감하는 게 우선일 겁니다. 그저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라면 그 감정을 헤아려 주어야 할 것이고, 단지 오해하는 일이라면 살뜰히 설명해 주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선뜻 헤아리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심의위원에 대해 문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심의위원이 누군지 싹 다 알려주세요. 전부 인권위에 제소할 거니까!”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심의위원의 개인정보는 비공개입니다. 또한 결정된 조치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심의위원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건 분노의 표적을 엉뚱한 곳에 돌리는 위험하고 다소 비겁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심의위원이 적법하고 정당한 과정으로 조치 결정을 한 것이라면 심의위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조치 내용에 대해 문제 삼는 건 가능합니다. 조치에 불복한다면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의 절차를 활용하면 됩니다. 당시 학부모에게 이를 안내했더니, “도대체 믿을 수가 있어야죠.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처리하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믿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참고로 이때의 사안은 가해학생의 학교폭력이 명백했었고, 굳이 심의위원회를 개최할 만한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경미한 내용이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요구대로 결론이 나지 않자 애꿎은 심의위원을 문제 삼는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심의위원의 전문성은 계속 도마에 오를 것입니다. 더구나 심의위원이 본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학부모라면 심의위원의 전문성 논란은 더 심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심의에 참여해야 믿을 수 있을까요? 법원의 판사에게 맡기면 될까요? 판사는 어떠한 사안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일까요? 판사는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분쟁에 대해 시비를 가리지만, 실제로 모든 분야에 정통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법원의 재판은 법적 잣대로 사안을 판가름하는 것이기에 법적 지식에 있어 전문가인 판사에게 판단과 결정의 권한이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사가 학교폭력을 전적으로 다룬다면 법원의 재판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심의위원회가 법원과 같은 잣대로 학교폭력을 다루는 게 적절한 일일까요? 이에 대한 답변을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것이 지금도 학교폭력 사안은 민·형사소송이나 행정소송을 통해 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의위원회의 역할은 법원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다면, 심의위원회의 존재 의미도 없겠죠. 이러한 질문까지 할 필요 없이, 법원의 소송은 믿을만한가요? 어차피 자녀의 불리한 결정에 반발하는 이들이라면 법원의 결정이라고 달리 반응할 것 같진 않네요.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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