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큰 휴지기였지 싶다.
사실 이미 4월 말즈음부터 시작했던 전조는 뭔가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사인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코 5월 말에 냄비가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하며 뚜껑을 툭툭 걷어차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6월은 우울과 분노를 제대로 삭이기도 어려울 정도의 시간이라 굳이 매일같이 글을 올리던 일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내겐 전혀 없었다.
쓰레기통 안에 쓰레기들과 있으면서 계속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쓰레기통 안에서 나와서 얼른 몸을 씻고 그 냄새와 그 쓰레기들을 잊었어야 하는데, 그놈의 현실이 뭔지 상황이 뭔지 나는 얼른 그렇게 쿨하게 나와서 몸을 씻고 나만 독야청청하지 못했다.
이마에 피가 마르지도 않은 어린것들이 이미 말이나 행동에서 망조가 들려 어른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끝까지 제멋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 쓰레기통의 쓰레기들은 결국 그들을 낳고 그렇게 키운 이들에게서 교육받고 방조되었으며, 학교에서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조차 참담할만한 자들이 학생을 돈으로 보고, 그 돈줄이 여전히 묶여 있기를 바라며 성적을 조작하고 그들과 담합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구조가 이미 확고한 콘체른을 구축하고 있던 터였다.
어떻게 그 쓰레기통의 모멸감속에서 6월까지 버티고 학기를 마감했는지, 그리고 그 굴욕적인 시간을 지나 7월을 다시 새 부대에 새 술을 담겠다고 안달복달을 하며 피폐해졌는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들이 까마득한 옛날 같아져 버렸다.
내가 가장이라는 이유로 감내하고 참아야 했던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은 한없이 허망하고 무색하기만 했다.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이기에 나는 새로운 부대에 새 술을 담기로 했고, 그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엎어져 술이 다 쏟아져버리지 않도록 아등바등했어야만 했고, 그렇게 결국 새 술이 담긴 부대를 기다리며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잠시 들어온 폭염에 구워져 버린 한국은 여전했다.
이전 사건들로 연루된 경찰들을 조지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국회에 등원했다는 이들과의 만남과 조율, 그리고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부정과 부패들에 다시 전화기를 들고 언성을 높여야만 했고,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별장은 별장대로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주인 없는 티를 너무도 그지없이 냈다.
무언가 안정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것만 같다는 불쾌감이 꽉 찬 습도에 불어 터져 밖으로 내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망중한의 타이밍에 다시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내 내상이 어느 정도 아물며 새살로 채워질 준비를 한다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현실이 엿같을 때, 글만큼 그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기록하고 하소연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나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였다.
물론 이 긴 휴지기의 상처가 그전에 내가 겪었던 더 큰 상처들보다 더 힘겨웠던 것은 아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내내 나는 이런 상처들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고달플 것이다.
내내 달콤한 사탕 같은 단내를 풍기는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같은 삶이 이어지는 것은, 말 그대로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번 부침 속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에 대해 다시금 또 감사하게 된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와 글만으로 소통하며 내내 곁을 내어주었던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싶다는 제주도 출신, 강 원장님과 20여 년간 살아온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아이들과 삶을 시작한 정 박사에게 나는 또 큰 빚을 졌다.
독실한 불교신자와 크리스천인 그들과 종교적인 연계가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일면식도 없으면서 내내 그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글에 위로받았고, 무거운 짐을 나눠질 수 있는 감사함을 배웠다. 그 빚은 내가 다시 힘겨워할 때의 누군가에게 베풀어야만 할 빚임을 나는 안다.
그리고 이제는 훌쩍 커버려 내가 올려다봐야 하는 아들에게도....
어느 사이엔가 나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시니컬하고 아주 현실적으로 상황을 분석해 버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녀석에게 아버지로서의 산이 쬐그마한 언덕으로 남을 수만은 없다고 느낀다.
한국에 돌아와 별장을 청소하다 말고 20여 년 전 교환교수로 처음 나갔던 때의 일기장 파일을 열어보았다. 서른이 넘은 녀석의 글치곤 너무도 작았고 보잘것없으며 참으로 가소롭기 그지없는 사념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도 그즈음의 나는 생각이 여물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며 어느 정도 완성형의 형태를 갖춰나간다고 생각했고,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가열차게 살아가고 있다고 피를 한 움큼씩 일기에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훌쩍 지나 본 그 일기장의 내 모습은 너무도 어리고 여리고 덜 여물어 떫다 못해 시큼한 풋과일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정도를 넘어 얼른이라도 이 파일을 다시 살릴 수 없게 완전삭제를 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어설프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삶이 그렇다.
강 원장님의 말처럼, 나는 이제 정말로 뭔가를 제대로 완성시킬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인생 1막을 끝내고 자신의 분야에서 손을 놓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할 즈음에 죽비 한대를 거하게 얻어맞고는 내가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후회는 늘 늦기 마련이다.
내 기억에 비추어보건대, 나는 후회하지 않는 나날들이 없었다.
늘 아쉽고 부족함에 분해했고, 더 나은 것을 완성하지 못한 것에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후회를 하고 분해한다고 해서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는 법은 없다.
그 분함을 그 아쉬움을 그 억울함을 부족함을 채우고, 실수를 바로잡고 더 위로 올라가는 에너지로 집중하지 않은 자들은 그저 범인으로 그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인생 선배인 강 원장님의 말처럼, 환갑이 지나면서는 물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한풀 꺾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 2막의 바탕을 이제까지의 억울함과 아쉬움과 후회가 최대한 줄어들도록 내가 이제까지 겪었던 그 모든 것들이 이것을 위해서 쓰였던 거름이라고 말할 수 있게 완성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직도 작은 일에서부터 모든 일을 내가 진력을 다해 케어할 수 있다고 다 수습할 수 있다고 오지랖을 펼치고 싶어 하는 천성은 쉬이 꺾이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가지를 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완성시키는 것에 치력해야겠다.
강남 한복판의 폭염이 무색하고롬,
2024년 말복, 밤공기는 제법 선선하다.
하는 짓거리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