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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14. 2024

이런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나?

준비와 기다림이 있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지라...

월요일이다.

월요병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요일 오후서부터 내일 출근하기 싫다 학교 가기 싫다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는 게 너무 퍽퍽하다고, 코로나 때는 다들 그렇게 난리 법석을 떨고 어렵다고들 하니 그런가 보다 버텼는데 최근의 상황은 코로나 때보다 훨씬 더 악화되었다고 죽지 못해 산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5 만전자로 내려앉은 삼성전자의 주가를 보면서, 코로나 이후 사상 최고가를 갱신하며 모두 복귀한 미국이나 일본의 증시와 다르게 한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죽을 상을 쓰는 개미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내린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너무 보람되고, 나에게 모두 감사하다고 하고, 내가 하는 일마다 손대는 일마다 잭팟이 터져 마이더스의 손처럼 느껴지고, 학교와 회사에서 인정받고 쭉쭉 잘 나가는 하루하루가 계속된다면 정말로 살맛이 날런지도 모르겠다.


지옥철을 타고 핸드폰에 코를 박고서 출근해서 아침부터 진상 에너지로 꽉 찬 환자들을 봐야 하는 의사나 특별한 의미도 없이 월요일 정기 회의랍시고 들어가서 왜 실적이 이 모양 이 꼴이냐며 대안을 내놓으라는 하나마나한 핀잔을 듣는 것이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이미 없어져버린 과거의 라테 이야기겠지만, 개천에서 용 나겠다고 신림동 고시촌에 모여들던 이들이 있었다. 머리를 밀고 조용한 절 암자를 공부방으로 삼아 사법고시를 준비한다고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것을 수양하듯이 몇 년을 속세와 연을 끊은 사람처럼 공부만 해서 용이 되겠다고 버둥거리던 이들이 있었다.


모두가 성공하진 못하고, 10년이 넘도록 합격하지 못해서 사시 폐인이 되는 이들이 당당히 합격하는 이들보다 훨씬 더 많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지금은 시들해져 버렸다고 하지만, 7급도 아니고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보겠다고 지방에서 노량진으로 올라와 컵밥을 먹으면서 시험에 청춘을 불사르는 이들도 적지 않았더랬다.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준비하는 기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준비는 결국 시험을 위해, 혹은 통과의례를 위해 완성된 형태로 자신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반복적으로 쌓여야만 했다는 것이다.


생리적인 현상인 잠을 줄여가며, 밥을 먹는 시간을 빼놓고서는 자신의 능력치의 개별적 차이를 고사하고 최대치를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반복된 일상이 최소 1년에서 수년까지도 계속되었다는 점이 공통적이라 할 것이다.


남들이 일어나지 않을 캄캄한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고, 자신을 위해 즐길만한 취미생활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그저 한 자리에 앉아 자신이 가진 최대의 능력치를 뽑아내기 위해 두꺼운 책을 넘겨가며 읽고 또 읽고 다시 문제를 풀고, 그것을 정리하고 다시 외우고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멋진 슈트를 입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고급 차량에서 내려 열쇠를 던져주고 사무실에 올라가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척척 해결하는 것은 광고에서나 나오는 모습이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의견은 고사하고 그간의 학계 논쟁거리들을 모두 정리하고 분석하는 수준의 석사논문도 어렵네 뭐 하네 허덕거리는 이들에게 1년은 고사하고 자료수집에서부터 중간중간 발표회니 품평회니 심사에 심사를 거듭하며 심사 교수들로부터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감수하며 써 내려가는 박사논문을 쓰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서 교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사시를 준비하고, 논문을 쓰고, 잠도 잘 못 자며 회진을 돌고 당직을 했던 일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그저 암울한 암흑기였는가를 되돌아보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대답을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차라리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노력하던 그때가 이것저것 고민하고 부대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말이다.


죽어라 그렇게 인생의 한번 통과제의만 거쳐서 명문대학을 입학하면 인생이 끝나던가? 아니다. 그렇게 사시를 죽어라 매달려서 통과하고 판검사가 되고 나면 인생이 탄탄대로로 쭉쭉 풀리던가? 서로 죽고 못살겠다고 난리 발광을 떨며 헤어지면 죽을 것 같다던 사랑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네 뭐 했네 하면서 이혼법정에서 온갖 쌍소리를 하는 아이러니가 인생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부모가 치매에 걸려 언제 어디서 사라져 버려 경찰에서 연락이 올지 모르고, 어린아이가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소확행이 어떻고 인생의 여유가 어떻고 따위의 푸념들은 그야말로 살만하니까 그따위 헛소리를 짖어대고 있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아이들이 어디 하나 아픈 곳이 없음에도 아이가 공부를 안 하고 부모님이 매번 쓸데없는 물건을 홈쇼핑으로 주문해 달라고 하는 상황은 누군가에게는 누리고 싶은 행복일지도 모른다.


유럽까지 가서 그렇게 기다리며 예약했던 미슐랭 3 스타의 레스토랑의 음식을 먹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버킷 리스트일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저 늘 있는 비즈니스 미팅 정도의 한 끼 일 수도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대성일 것이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가 앉아 있던 벤치의 옆에 손에 가시가 박혔다며 '아파 죽겠다'라고 온갖 호들갑을 떠는 사람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의 내가 누리는 것은 수많은 시간 내가 준비해 왔던 다양한 통과제의를 거쳐서 나온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모두가 그 준비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짜잔~하면서 인생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다. 아니 큰 성공을 거둬 대부분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에게 그 성공 이전에 죽고 싶을 정도로 뼈아픈 실패가 없었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우문인 경우가 우리의 인생에는 너무나 많다.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부족한 것들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민폐 끼치지 않고 담배는 고사하고 흡연자 근처에도 가지 않으며 건강에 좋은 것만 먹고 관리하며 지냈는데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이에게 그것이 업보고 천벌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릴 이는 없다.


분명한 것은 하늘이(어설픈 종교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길) 당신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분명히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렇게 했었을 것이고, 그것을 당신이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간에 그 의미는 소멸하거나 무가치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고, 그 어느 것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여기며 하늘을 원망하고 거지 같은 자신의 삶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온통 당신의 가슴을 억누르고 답답하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가만히 숨을 가누고, 정신을 말짱히 하여 생각해 보라.

당신에게는 분명히 당신이 이루어야만 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도달하고 싶은 그래서 모두에게 보란 듯이 갚아줘야만 하는 그 수많은 빚들이 있지 않던가?

그냥 이렇게 포기할 것인가?

아직이다.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당신이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면, 당신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버티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 힘들고 이렇게 짜증스럽고, 이렇게 일이 꼬여가는데도 당신이 묵묵히 버텨나가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그렇게 뚫고 가라.

가시에 옷이 찢기고, 살이 파이고 피가 뚝뚝 떨어지고 발바닥에 유리가 박혀 아프고 주저앉을 수도 있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인생은 아직 끝이 아니다.

마냥 꽃길뿐인 인생이 없듯이 마냥 고난만이 계속되는 인생이란 없다.

분명히 당신에게도 그날은 온다.

지금 힘든 것들도 그저 지나갈 뿐이다.

스스로에게 굴복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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