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고 지나쳤던, 법률까지 엿가락으로 만드는 자들의 전횡 - 완결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55
"아, 교수님. 그러니까 그게... 아무래도..."
"뭐라는 겁니까?"
"제가 너무 일이 많아서요.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지금도 좀 정신이 없는데 제가 나중에 전화드려도 될까요?"
"그래요. 그럼."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연락을 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계엄이라는 뻘짓을 하기 하루 전 날, 그에게서의 전화대신 국민신문고의 연장했던 답변이 도착했다고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그가 퇴근 시간이 다 되어 남긴 국민신문고의 공식적인 답변은 아래와 같다.
- 안녕하십니까. 경찰청 교통기획과입니다.
귀하의 민원사항에 대하여 검토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민원인께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신 내용은 주정차 관련 단속 관련 사항 주정차 금지 노면표시는 ’14.5.1. 개정되어 현재까지 이 규정이 유지되고 있으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별표 6)에서는 노면표시에 따라 황색 복선(516-2)은 절대적 주정차 금지와 황색단선(516)은 주정차금지 외 교통표지를 통한 일부 주차허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노면 표시의 종류와 표시하는 뜻에 따라 황색 단선(516)은 주정차금지를 의미하므로, 제기하신 구간은 학동로 이면도로는 주정차 금지선 노면표시로 보아 주정차 금지구간으로 보여집니다.
- 황색 단선 구간의 주차단속을 하지 않는다는 인터넷 내용에 대하여 확인한 바, 일선 지자체의 현장 단속에서는 위 해석에 따라 불법주차 단속을 행하고 있습니다.
- 위 답변 내용과 관련 더 궁금하신 사항 있으시면 경찰청 교통기획과로 연락 주시고, 기타 교통정책 관련 의견 있으신 경우 이용해 의견 남겨주시면 신중히 검토해 답변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그지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어이가 없다 못해 허탈했다. 원래 내가 인용했던 편람을 번역하면서 위에 붉은색과 밑줄로 표시된 부분만 스리슬쩍 말장난을 한 것이 답변의 다였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여러 번의 전화가 울리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 전화이지만 번호가 뜨기 때문에 나인 줄 알고 내내 고민한 기색이 역력한, 도살장에 끌려가는 목소리였다.
"네. 교수님."
"이게 뭐죠? 전화한다더니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답변이라고 달아서 보낸 건가요?"
"아니, 그게. 저도 중간에서 미치겠습니다."
"중간에서요? 내가 경찰청장이나 과장한테 전화해서 위에서 누르는 걸 못해서 지금 담당한테 연락하고 시키는 대로 국민신문고에 민원 넣어주고 한 것 같아 보입니까? 정말로 원하면 경찰청장실에서 한번 같이 볼까요? 내가 현장 담당자들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눌리는 거 꼴이 볼상사나워서 그런 거 싫어해서 정식으로 담당자에게 항의하고 설명하고 그렇게 정상적으로 문제해결하자고 했더니 기껏 3주나 뺑뺑이를 돌려서 나온 답이 이겁니까?"
"아, 저도 정말 위에 올려서 결제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해주고 안된 답니다.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 틀린 거 하나 없이 다 맞는 말씀인데, 사무실에서는 다 안된다고 하니, 중과부적입니다."
"거기는 머리 나쁜 애들이 자기네 나중에 욕먹을까 봐 그냥 개돼지 누르듯이 하면 될 안다는 겁니까? 이게 무슨 다수결로 해결할 문제랍니까? 내가 말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라고. 니들 부서에서 개정안 올린 개정규칙이니까, 그러면 10년 전에 황색 복선을 굳이 만든 이유가 뭐냐고. 황색 단선이 주정차 절대 금지라면 굳이 황색 복선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 유치원애들도 이 정도 설명했으면 알아들었을 겁니다. 안 그래요?"
"그러니까 저도 미치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저따위로 공문 답변을 합니까?'
"아니, 도로 지면 표지가 우선이니까 주정차 금지인 건 맞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으셔서...."
"아니, 이봐요. 표지판을 함께 설치해서 한시적으로 특정 요일이나 시간에만 주차가 가능하게 한다는 황색 실선의 기본 개정의미가 맞으려면, 당연히 주정차를 허용해 주는 시간이 금지하는 시간보다 훨씬 기니까, '원칙적으로' 주정차 금지라고 표기한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그러니까...."
"여보세요!"
내가 언성이 높아지려는 순간,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건방이 실린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튀어나왔다.
"죄송하지만, 교수님. 제가 이쪽 책임자인데요."
"아, 그래요? 직함과 이름을 정확하게 대주겠습니까?"
담당자의 경찰대 선배인 듯 자신이 실무 책임자라며 건방진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과 직함을 밝히며 아주 당당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정 이해가 안 되시면, 법원에 법대로 소를 제기하세요.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자꾸 저희들한테 이러시면 저희는 반복된 민원으로 무시해 버리고 응대를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래서 민원에 대해서 제대로 된 법적 근거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저 우기기나 하는 건가요? 당신 상관이 교통기획과장이겠군요? 과장이 지금 누굽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zgzmswMHp7k
요 며칠 전 국회 행안위에 계엄건으로 증인출석하여 경찰청장, 서울청장 모두 구속되어 달려들어가는데도 고개 빳빳이 들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위원장에게 그야말로 발린 경비안전계장과 동기쯤이겠거니 싶은 친구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상관인 과장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움찔하며 말이 멈췄다.
"당신 과장이랑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이게 공론화되어도 상관없는 문제인지...."
"그만 전화 끊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도망치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국회 행안위에 나와 오만하게 굴며 위에서 시키니까 그게 맞는지 아닌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따랐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개념 없는 자와 통화를 직접 한 기분이었다.
그다음 날, 이 녀석들을 어떻게 구워삶아 먹을지 고민하던 차에 용산에서 대통령이라는 자가 비상계엄 썡쇼를 벌이면서 나는 경찰청장이나 서울청장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고, 행안위 의원들과 통화를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관련 법령을 제대로 감수했어야 하는 법제처와 국토교통부의 혁신행정담당관실이라던가 서울시 관련 부서 등등에 전화를 했었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구석인가 제대로 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있어줬으면 하는 기도 같은 행위였다.
그들의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저희 부서는 서울시만 하고 강남구청은 터치할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 설명은 이해는 하는데, 저도 주정차 관련 업무 수년간 했는데, 이제까지 그냥 황색단선은 주정차금지라고 알고 있었는데, 만약 그게 잘못된 거라고 하면 주무관청인 경찰청 교통기획과에서 전국적으로 공문을 보내서 환기하던가 시정하라고 알리는 게 맞습니다."
"저희가 논란이 되는 민원대상의 법령의 해석을 하는 곳은 맞지만, 일단은 주무 부서인 경찰청 교통기획과에서 그 부분을 맡아서 해야 되기 때문에...."
"저희가 혁신행정담당관실은 맞는데, 그게 저희 관할 업무가 아니라서요."
속에서 천불이 나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주무부서라는 곳인 경찰청 교통기획과에서 개정을 한 게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게 문제가 된다고 은폐하고 대강 덮고 뭉개고 가자고 하면 그걸 누가 바로 잡고 견제하고 감시합니까?"
"네? 그건 저희 부서의 업무가 아니라서...."
"당신들은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업무분장상 당신의 업무가 아니니까 지나갑니까?"
<스파이더 맨>에서 피터 파커는 홧김에 도망치는 도둑놈을 모른 척하고, 그 도둑놈의 총에 아버지가 같았던 삼촌을 잃고 나서야 자신이 영웅으로서의 책임감을 자각하게 된다.
경찰이 짭새라는 비아냥을 듣고, 압수한 금괴니 돈, 심지어 마약까지 빼돌리는 비리경찰이 득시글거리는 지경이 되어도 자신들에게는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게 되면 이 사회는 좀먹는 정도가 아니라 붕괴하게 된다.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란 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망상에 빠져 독재를 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멀쩡한 군인과 경찰들에게 국민들에게 총을 들이밀라고 해도, 위에서 내리는 명령이니까 그냥 따랐을 뿐이라고 하면, 그 총에 자기 부모가 자기 가족이 죽을 것이라 그들은 붕어라서,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길 자들이다.
내가 여러 고민 끝에 국민신문고에 내용을 다시 적어서 문서 말미에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으니 경찰청의 감사계에서 이 문제를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피민원대상으로 경찰청 교통기획과를 명확하게 적어서 제보성 민원임을 밝혔다.(참고로 국민신문고의 제보성 민원에서는 특정인이나 특정부서가 피민원인으로 기재되었을 경우, 해당 부서는 당연히 해당 민원의 담당에서 배제되는 것이 원칙이다.)
지난번, 첫 민원에 담당자 이름과 직함을 다 적었는데도 엄한 사람에게 배당을 때린, 경찰청 국민신문고 담당자라는 붕어가 두 번째, 이 민원의 담당자로 누구를 지정했을 것 같은가?
민원의 담당은 버젓이 다시 경찰청 교통기획과로 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이 해프닝은 완결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간단명료한 사안을 가지고서 사이다도 주지 않으면서 내내 고구마만 입안에 구겨 넣는 몹쓸 짓을 해서는 안될 것 같아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낸다. (물론 내가 이 사안을 그냥 접겠다는 황당한 말은 아니다. 분명히 확실하고 명확하며 단호한 끝을, 늘 그렇듯이 볼 것이다.)
내 이 시리즈에서 부정기적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 공개를 하는 것은, 언젠가 발검스쿨의 반장이 말했던 것처럼 내가 잘나서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뿅망치 때리기로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자랑질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읽으면서 모두가 느끼겠지만, 누구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 나는 짜증 난다.
그들에게는 나와 같은 별종을 인생의 길목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고 심지어는 그 패턴마저도 유사하기 이를 데 없으며 그들의 대사마저도 매뉴얼이라도 공유한 듯 똑같다는 점에서 고문에 가깝다.
촛불대신 콘서트장에서 흔들던 응원봉을 들고 나서는 어린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도블록을 뒤집어 들어 던지던 가투때와는 정말로 시대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이 연말의 기도 차지 않을 해프닝을 겪으며 이 시리즈의 본 의도에 맞춰 이 말은 분명히 해주고 싶다.
대통령 하나가 뻘짓을 한 것이라서 나라가 좀먹거나 썩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한 경찰들부터 구청 관리직원들, 그리고 당신이 이번 해프닝에서 보았던 그 대한민국 장성부터 경찰대 출신의 경찰 수장들에 이르기까지, 아니 국무위원이랍시고 국무회의에 들락거렸던 그들까지 모두가 당신이 부러워마지않던 엘리트들이고 당신들의 친구고, 지인이며, 가족이고, 아버지고, 아들이었던 자들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주정차 금지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시행하고 과태료를 물리고 하는 따위의 작은 일만 보더라도 그 나라의 미래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의식 있는 것처럼,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그것을 인스타그램에 자랑스럽게 올리고 몇 글자 박았던 자들이, 바로 지금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겠다며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움직이다가 구속되어 수갑 차고 구치소에 들어간 자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으며 양심 있는 소시민을 자처하는 당신은 과연 우리 사회를 좀먹는 그들의 부류에 속해있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은 내내 자신이 억울하다고,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갇혀 있다고 억울해한다. 그러다가 환영처럼 꿈에서 재판을 받으며 자신의 무죄를 당당히 주장하지만, 판사가 "너는 너의 인생(시간)을 낭비한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라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수긍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서울대 법학과 출신들이 최정점에 있고, 그 밑에 무식한 군바리 육사들이 오른팔 행세를 하고, 짭새들 중에서도 수장에 속하는 경찰대 간부들이 쪼로로 따라다니고, 그 밑은 없었을 것 같은가?
당신이 배운 대로, 아는 대로, 상식대로만 행동했어도 나라가 이 꼴이 나지는 않는다.
대의 민주주의란, 모든 국민이 정치를 할 수 없으니 표를 모아서, 대의를 모아서 국회의원이라는 자를 뽑아서 국민의 뜻을 대신하라는 것이지,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그놈의 당을 위해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지들 판단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사소한 것 같은, 경찰청에서 개정한 주정차 관련 규칙은, 이미 10년이 훨씬 전에 개정되었고, 10년이 훨씬 지나도록 지켜져(?) 왔다. 그런데, 이 뻔한 잘못조차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잘못하고서도 고개 빳빳이 들고, 어디서 그따위 잘못된 버르장머리를 배웠는지, 법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라고 입을 놀리는 경우가 발생한단 말인가?
국비로 교육받고 경찰간부된다고 군대까지 면제받고 경찰대 내에서 나름 법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경찰대 출신으로 경감부터 시작하는 그것들이 경찰청 간부랍시고 이따위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그냥 넘어가고 그러려니 하면서 사회는 좀먹어갔고, 그러니 그렇게 군면제되고 월차에 연차까지 쓰며 로스쿨 가서 신분세탁할 잔머리는 있으면서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에, 그저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으니까, 내 인사고과를 매기는 사람의 명령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랐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부터, 우리 자신부터, 이 작은 잘못에서부터 상식으로 바로잡지 않으면서 일이 터져서야 거리에 촛불 들고 응원봉 들고 나와 목소리 높이 노래를 불러대봐야 늦는다. 횃불을 싸들고 나와도 근본부터 썩은 자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이익에 맞춰 움직이지 않던가?
이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자정 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잘못된 것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족.
아래 사진과 같이 지자체에서는 본래의 법령을 제대로 이해하여 황색단선의 경우 표지가 없으면 주정차를 24시간 절대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표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