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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밀 Jul 07. 2024

10년 후의 내 삶이 궁금해서 읽은 책

김윤진, <혼자 살기 지겨워졌다>, 웜그레이앤블루


<혼자 살기 지겨워졌다>. 정말 강렬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20대와 30대를 모두 바쁘게 보낸 저자 김윤진은 30대 후반부터 그전까지 흥미를 느끼던 것, 자신을 충족시켜주던 활동들이 더 이상 자신을 전처럼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에서 짊어져야 했던 가정사나 의무감을 벗어던지고 작은 것에도 마냥 웃을 수 있던 해외 체류에도, 주말이나 평일 점심시간에 빠르게 듣고 오던 원데이 클래스도... 그것들이 주는 의외성이나 기대감 보다도 혼자 있는 집 안에서의 적막이 더 크게 느껴질 때 저자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기로 마음 먹는다.


 30대의 마지막이니 변화를 꾀한 것이다.  5+5회의 만남에 4백만원 가량을 쓴다. 누군가를 찾겠다는 목적이 크고 명확할수록 만남이 시원찮았을 때 타격이 크다. 저자는 서류로 스펙을 받아본 후 최소한의 성격을 맞춰보는 유료 맞선들에 염증을 느끼고 결정사를 탈퇴하기로 마음 먹는다. 10회가 아니라 5+5회라는 약관 때문에 환불금은 턱없이 적었지만, 어떤 일은 돈을 좀 손해보더라도 다시 할 마음이 안들기도 한다. 


 40살로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니 소개팅이 들어오는 수도 줄어들고 부모님의 결혼 압박은 더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은 저자를 결혼에서 잠정적으로 빼 놓으려는 분위기다. 다만 저자가 한 살 더 먹건 말건 저자 마음에 자주 출몰하는 심심함, 적막함, 허전함은 해갈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5급 공무원인 저자는 세종시에 산다. 세종시에 사는 친구가 있어 대충 분위기를 아는데 구획별로 기획된 도시라 깔끔하지만 놀 거리는 참 없다고. 저자 본인도 노잼 도시라 말하는 이곳에서 무료함을 줄여보고자 동호회나 취미 모임에 가입을 시도하지만 이럴수가, 취미모임에도 나이 제한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흔은 모여서 취미도 못하는 건가... 나만 해도 대학 졸업 이후로 내 나이가 햇수만 올라가지 별반 바뀌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문득 쇼 미 더 머니였던가 한 힙합 서바이벌프로에서 어떤 출연자가 말해 밈이 되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늙은이는 안 된다? 이 말이... 물론 마흔이 늙은이란 소린 아니다. 요샌 60대도 젊어졌다는 말을 듣는걸...


 운 좋게 들어간 취미 모임에서 저자는 드디어 반려자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물론 둘이 인연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이왕지사 아는 사람 세차장에 가서 소비해 주자는 마음과 단골에게 좀 더 베풀어진 세심함(혹은 이미 그때부터 흑심이었을까?)에 갑자기 저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밥 먹자는 적극적인 말까지. 한 번 두 번 만남이 쌓이면서 동갑 세차장 주인과의 관계는 주변에서 언뜻 보기에 '무슨 친구가 그래요?'라는 말을 듣기에 이른다. 친구 아니고 연애 호감이 남들 눈에도 스멀스멀 흘러나와 느껴진다는 소리다.


 이 책이 픽션은 아니고 수기지만, 서사로 따진다면 이후의 전개는 휘몰아친다. 남자친구가 저자의 부모님댁에 선물로 드린 한우세트에서 온가족이 쌍수를 들었다. 결혼은 안 할 줄 알았더니 우리 딸/우리 언니가 지금 결혼 가능성이 확 들어왔구나! 갑자기 남친 데리고 오란 부모님 말씀, 그다음 본가에 남친 소개, 내친 김에 영상통화 상견례?!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할까 해, 라는 말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아마 저자는 결혼의 ㄱ을 발음할까 말까 정도였을 텐데 결혼 가능성이라는 구슬이 만들어지자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소매를 걷어부치고서는 그 구슬을 공으로 만들어 길을 닦아주고 공을 굴리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대학 친구랑 부모님 결혼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 어머님이 당신 결혼을 회상하실 때 '정신 차려보니 결혼하고 있었다'고 하셨다고 들었다. 20대 초반에는 연애결혼에서 그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 과정을 에세이로 읽고 있자니 그 회상이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본가 첫 소개날에 아예 대략적인 결혼 날짜까지 나오고 온가족이 이 혼담에 기쁘게 쐐기를 박으려는 모습을 보니 우리 사회는 남녀의 결혼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5주 간의 바쁜 결혼 준비 기간 후 무사히 식을 끝낸 두 사람이지만 40 평생 따로 살아오다 한 집 사는 부부가 되기에 순풍만 부는 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난 가끔 서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화해도 할 수 있는 사이이고, 그렇기 때문에 싸울 수 있는 사람이랑 짝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 한 번 했다가 끊어질까 겁이 나는 관계라면 결혼까지 가도 마음이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 아닐까? 극심하게 싸우는 것 말고, 말다툼도 하고 허심탄회한 화해와 입장 설명도 할 줄 아는 상호수용적인 사이여야 결혼이 될 테다. 저자는 저자대로 남편에게 바라는 게 있고, 남편은 남편대로 원하는 게 있다. 좋은 시간은 당연하고, 서운함과 화해 까지가 연리지 나무의 무형의 아교일지도. 


요 근래 결정사 광고에서 40살 신부를 광고한다는 말을 듣고 묘했다. '결혼적령기가 계속 넓어지는군.'(밀려난다기보다 범위가 넓어진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결혼하려는 사람이 적은가 보다.' 적어도 결혼 생각에 결정사 가입하고 결혼 성사까지 가는 사람이 정말 줄어들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이건 결정사 탓은 아니고 사회 인식 탓으로 나온 말이지만, 언제는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면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더니? 휴... 한때 많은 여자를 옭아맸을 말이 이제는 사어가 되어가는 듯해 그것은 반갑다. 또 달리 생각하면, 이제 결혼 생각 없는데 결혼 압박 받을 수 있는 연령 범위가 계속 늘어나는가 싶어 그것은 조금 머리가 아프다. 


 하기사 인식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자기한테 잘 맞는 사람 만났다면 생활을 어디까지 같이 할 건지 자기 결심이 중요한 거지. 생활을 같이 하다 인생도 같이 할 건지, 그 고민으로 넘어가면 더 고차원적인 고민이 되는 것일까? 아무튼 결혼 다짐 전에 주변에 티를 내면 주변이 자꾸 결혼으로 길을 깔아주니 유의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랍고도 좋았던 것은 저자의 솔직함이었다. 책을 읽는 이유는 각자 한번뿐인 인생에서 경험치나 선택지를 간접적으로 늘려보고자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작가명도 본명 같고, 직업은 보수적인 분위기일 공무원이고, 가끔 남편에 대한 매우 솔직한 심경도 쓰여 있어 이 책 지인이 읽어도 괜찮을까 괜스레 내가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책에 담긴 인생 선배의 인생담을 통해 새로운 상황에 미리 마주해 보고 각오할 건 하고, 고민해 볼 건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후기에 드러난 것 말고도, 책에 더 풍부한 내용이 있으니 일독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40대 이상의 결혼담이나 비혼담이 여러 권 나왔으면 하고 바라본다. 때로는 지인이 아니어서 더 솔직하게 현실을 들을 수 있으니까. 앞으로의 약 10년 후가 궁금해서 읽어 본 <혼자 살기 지겨워졌다>. 나의 몇 년 후 거주 형태는 어떨까. 배우자가 있을까? 아니면 오래 된 친구나 새로운 하우스메이트? 가족과 계속 지내고 있을까? 혼자 산다면 갑자기 아플 경우 비상연락망은 누구로 구성해 놓아야 할까? 나보다 나이 많은 비혼주의자들은 1인 혹은 n명의 가정을 어떤 식으로 꾸려나갈까? 아이가 있는 삶은 어떨까?


두서 없이 많은 것을 궁금해 하며 후기를 마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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