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일부는 설레고 있었다
더보이즈 좋아합니다 (1)
라이브 방송에서 아이돌은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영상과 저걸 어떻게 읽지 싶은 속도로 움직이는 채팅창을 통해 팬들과 소통한다. 팬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채팅창에 보이는 팬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평소 방송에서보다 한결 편안한 차림새와 태도로 멤버들끼리의 일상이나 자신의 근황, 음악 방송 무대나 자컨(자체 컨텐츠) 등 최근 활동에 관한 비하인드를 팬들에게 공유해 준다. 가끔은 그저 편하게 다른 멤버들과 노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11인조 남돌 그룹인 더보이즈의 팬, 일명 더비가 되기 전만 해도 아이돌 라이브 앱을 깔고 알림 설정을 해 볼 일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이 한창 아이돌 덕질을 하던 중고등학생 때는 케이팝에 관심이 없었고, 대학생 때는 케이팝을 곧잘 들었지만 당시 최애 가수는 해외 가수였다. 그다음에는 감명 깊게 본 영화 ost를 위주로 음악을 디깅했었다. 그래서 더보이즈 입덕 멤의 브이앱 라이브에 처음 들어갔던 일은 '내가 정말 아이돌 팬이 다 되었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첫 라이브는 단순히 첫 아이돌 라이브 시청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내게 더 큰 혼란을 안겨 주었다.
더보이즈의 메인 댄서 중 한 명인 그의 라이브에 들어갔을 때였다. 쉼 없이 채팅이 쌓이는 채팅창에는 여러 나라 팬들의 애정 표현이 줄을 잇고 있었다. 여러 색의 하트 이모지와 사랑한다는 열렬한 고백들, 응원의 말들. 나도 그 자유로운 애정 표현의 대열에 끼고 싶어 채팅창을 눌렀다. 예상치 못한 일은 그때 일어났다.
‘뭐야, 왜 못 보내겠지?’
‘사랑해’라는 말이 차마 써지지 않았다. 애써 써도 전송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뭔가가 내 입과 손을 막고 있는 것처럼, 고작 단어 하나가 보내지 질 않았다. 나도 다른 팬들처럼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릴 때 보던 순정만화 캐릭터도 아니고, 차마 말이 안 나와서 자각하는 마음이라니. 아니, 애초에 연예인을 이 정도로 좋아할 수 있다니. 겉모습만 보자면 그냥 폰을 들고 있는 사람일 뿐이지만 내 마음은 놀라움과 의문에 휩싸이고 있었다.
대화를 나눠보긴커녕 한 번도 실제로 대면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낮은 연예인에게 이 정도로 마음이 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잠시 이마를 짚고 누워 있었다. 무대 위에서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외모, 팬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느끼는 호감 수준이 아니라, 내 마음 일부는 분명 설레고 있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라이브에서 나와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에게 더보이즈 무대 영상을 한번 봐보라고 추천해 줬던, 이미 더보이즈 팬인 친구였다. ‘나 진짜 이럴 줄은 몰랐는데…, 방금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어. 아니, 아이돌을 이렇게 좋아할 수가 있어?’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내 카톡에 친구는 어딘지 결연하게 읽히는 답장을 보냈다. ‘나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아이돌을 좋아해 왔어.’ 항상? 아니, 안 힘드냐고. 친구는 ‘힘들지ㅎㅎ’라고 대꾸했던 것 같다.
한 번의 자각 이후로 내 일상에서는 새로운 사랑이 자기 자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는 그 마음에 대한 기록이며, 한 아이돌 그룹에게 한 명의 팬이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탐구의 글로 채워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