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꼽아 본 좋은 그림책 창작서
최근 에이전트를 통해 좋은 출판사와 연이 닿아, 창작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진행 중이다. 늘 다른 작가들이 쓴 글을 바탕으로 그림작업만 맡아 오던 터라,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된 게 너무나 기쁘다.
물론 하나의 그림책이 실질적으로 완성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린다. 올해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다고 해도, 출판 작업이란 Long - term Project 이기 때문에 보통 몇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내가 어떤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지 스스로 탐구할 수 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게 될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와 글&그림 작가는 어떻게 다를까?
많은 그림책 작가들이 글과 그림작업을 같이 하지만, 또한 글 작가로서 혹은 그림 작가로서만 단독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큰 Big 5 출판사 같은 글로벌한 기업이 아니라면, 많은 출판사들은 아직도 회사 주소나 이메일 주소로 신인 작가들의 그림책 더미를 모집하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을 통해서 엄선을 한 글작가들의 작품들은 따로 회사의 데이터 전산망에 올려져 여러 토의와 수정을 거치게 된다. 스토리가 약간씩 바뀔 수 있고, 적게는 캐릭터의 이름이나 성격, 혹은 인종이나 성별, 나이까지 바뀔 수 있다! 아무리 글작가가 자신만의 신조나 고집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책을 출판해 주는 것은 출판사이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출판사의 이미지에 잘 맞으면서 참신한 책을 만들 수 있는지, 어디서 세일즈 포인트를 둘지 결정하는 것은 출판사 관계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작가 스스로 어느 정도까지 타협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의 한계점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글이 85 -90 % 이상 완성되었다고 판단이 되면, 이제 출판사는 그림 작가를 모집한다. 혹은 아트 디렉터가 갖고 있는 작가 리스트에서 글의 테마에 잘 맞는 그림작가를 몇몇 추리게 된다. 그렇게 2-3 명의 작가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스케줄이 맞는 작가를 섭외해서 그림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도 지금까지 총 5권의 그림책을 그림 작가로서 끝마치고, 이제는 글&그림 작가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럼 글 작가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저 글 쓰는 사람이 아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한국에서는 글보다 그림 작가에게 좀 더 무게를 두어서, 인세도 글작가가 3~4%, 그림 작가가 6~7%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북미 출판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글작가 그림 작가의 인세가 각각 반반이다. 그만큼 글, 즉 "스토리"에 큰 무게를 두는 것이다.
글 작가는 그저 글만 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책의 타겟층을 잘 염두해서, 목적에 맞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다. 이 스토리에는 재밌는 캐릭터, 흥미로운 주제와 그에 따른 전문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전문성이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멈추지 않고 책을 읽게 하는가", "좋은 스토리와 캐릭터는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저 화려한 글을 문법에 맞춰 잘 쓰는 게 아니다! 글이란 건 "모두" 쓸 수 있지만, 재밌는 스토리는 정말 훈련받은 사람들만이 잘 쓸 수 있다. 그래서 참 어렵다. 당연히 글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다년간의 충분한 연습과 습작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에 읽은 좋은 그림책 작법서들
나처럼 그림 그리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 아직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아래의 책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좋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 데에는 도서관에서 직접 그림책들을 빌려보는 만큼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나 자신도 주기적으로 도서관에 가서 새로 나온 책들을 들춰보면서, 많은 정보와 이야깃거리를 얻어가니까! 하지만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면 시중에 나온 이런 작법서들을 보는 게 가장 좋다. 바로 이 책들처럼 말이다.
수많은 어린이 그림책들의 글작가로 활동한 작가 앤 위트포드가 쓴 이 책은, 그야말로 초보자를 위한 모든 내용이 담겨있다! 그림책 작가로서 생각해봐야 할 화두들, 그림책의 다양한 시점, 글쓰기의 3막 구조 등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더불어 그림책의 "재미"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야기의 어떤 요소를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각 챕터마다 다양한 예시를 들어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앤 위트포드는 형편없는 초고를 만드는 데에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독려한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책 초고를 신뢰할 수 있는 그림책 전문가 집단들에게 여러 번 보여주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그런 그림책 평가 그룹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초고를 어떻게 출판사에 투고하는지, 투고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잘 알려주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다만 예시로 드는 그림책들 다수는 한국에도 출판되어 있지만, 상당수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서 원서로만 접해야 한다. 유튜브에 해당 그림책을 검색해 보면 "Read Loud"라는 제목과 함께 페이지를 넘겨보면서 읽어주는 유투버들이 많이 있으니, 아쉽지만 이렇게 영상으로 읽어보는 방법도 있다.
이 얇은 책은 오랫동안 그림책 편집자로 일해 온 엘렌 E.M 로버츠가 쓴, 작법서이자 일종의 학술서이다. 위의 앤 위트포드의 책은 철저하게 작가적 시선에서 쓴 작법서라면, 이 책은 편집자의 시선에서 그림책을 바라본다. 때문에 좀 더 분석적이고 학술적이며, 최근에 나온 그림책들 보다는 출판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클래식한 그림책들을 예시로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100년의 시간 동안에 어떻게 그림책이 발전해 왔는지, 출판 포맷부터 시작해서 출판 인쇄의 발전을 통해 얼마나 색감이 다양해졌는지, 이야기 주제도 얼마나 다채로워졌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앤 위트포드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된 책 중 하나이다. 사실 유학을 가기 전에 사놓고 한동안 읽지 않고 방치해 놓은 책인데,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꺼내서 읽게 된 책이다. 그때 책을 펼쳤을 때 바로 책을 덮었던 이유는, 이 책이 온전히 북미, 특히 미국 출판 시장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여기에 적힌 여러 용어들에 대해 이해를 하지만, 북미 출판사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영문 모를 용어들 때문에 쉽게 책을 덮기 일쑤였다.
이 책은 출판사, 특히 북미 출판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도움이 될 책이다. 출판사들이 어떤 식으로 책을 만드는지, 어린이를 겨냥한 책들의 여러 종류들, 투고를 할 때에 어떻게 교정을 할지, 어떤 출판사들을 찾아 갈지, 출판사와 일하게 되었을 때 지켜야 하는 매너 등등을 빠짐없이 알려준다. 출간되고 나서 개인 홍보를 어떻게 할지, 그림책 분야 상들을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말이다! 다만, 역시 이 책들의 예시들은 모두 해외 원서들을 참조하고 있다. 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해당 책을 검색해서 읽어보는 것을 꼭 추천하고 싶다.
작가 오스틴 클레온이 쓴 이 책은 그림책 작법서가 아니다. 하지만 굳이 집어넣은 이유는, 돌처럼 굳은 내 창의력을 다시 살려주고 내 작품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 준 책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아티스트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모니터 플러그를 끄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스스로를 감금시켜 버리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sns에 올려보기, 무엇을 뺄지 생각해 보기 등등... 비단 작가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오랜 작업에 매너리즘에 빠진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좋은 힌트가 많이 있다. 작가의 또 다른 책 "Keep Going 킵 고잉"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