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킹스턴 대학교의 기숙사, 그리고 자취
예전글: #2. 홈스테이 천태만상, 그리고 윔블던 어학원
그렇게 단기 프리세셔널 코스를 마치고, 드디어 킹스턴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해는 브렉시트 때문에 파운드 가치가 폭락을 해서 1파운드가 1440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야호!!!
파운드 스털링 반값세일
덕분에 좀 더 마음 편하게 파운드를 환전할 수 있었고, 비싸기로 악명 높은 영국유학을 좀 더 저렴하게(?) 갔다 올 수 있었다. 옛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에 1파운드에 2000원까지 치솟았는데, 브렉시트 같은 막장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파운드 가치는 끝도 없이 추락했다. 코로나 이후에 야금야금 올라서 지금은 거의 1900원 가까이하는데… 정말이지 지금 영국에서 유학하는 친구들, 돈 걱정이 정말 클 것 같다. 아무리 식료품 값이 싸다고 해도 환전 비용이 너무 큰 만큼, 내가 예전에 누렸던 방식으로 장을 많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난 Conditional 오퍼를 Unconditional 오퍼로 바꾸고, 영국에서 바로 학생 비자를 발급받아서 킹스턴 대학원을 가게 되었다. 외국 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은행 계좌를 트는 일. 당시 학생비자를 갖고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최소 1000만 원 이상의 상당한 돈을 파운드로 예치해야 했는데, 예치하고 나서도 수일이 지나야 은행에서 내 계좌 Pin 코드와 함께 메일을 보내준다. 한국 같으면 최대 2~3일이면 금방 만들어 주지만, 영국은 원래가 오래 걸리는 데다 외국인 신분으로서 신원조회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 카드를 쓰면서 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좋다. 유학생은 보통 HSBC나 Barclays, Lloyd 은행을 주로 쓴다.
한국에서는 쉽게 신용카드를 만들어주지만, 영국에선 기본적으로 체크카드만 만들어준다. 이 체크카드를 기본으로, Monzo 같은 디지털 은행도 신청해서 카드를 만들어 놓는 것도 좋다.
어디서 머물까? 기숙사와 자취의 차이
그동안 유학생들의 거취는 많이 갈린다. 대략 50%가 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된다. 혹은 학교 기숙사를 얻지 못했거나, 나처럼 기숙사가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들은 사설 기숙사를 선택해 지내기도 한다.
그게 아니면, 직접 발품을 팔아서 집을 뷰잉하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찾아서 계약하기도 한다. 마지막은 좀 난이도가 있는 게, 불안정한 유학생 신분으로 좋은 집을 내주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킹스턴 학교 기숙사는 어떨까? 학교 기숙사는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킹스턴에서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방을 제공하기 때문에, 등록이 시작되는 날부터 경쟁이 매우 심하다. 그래도 사설 기숙사에 비해서 방값이 2/3에서 1/2까지도 싸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친구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관리를 잘해주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기가 편하고, 안전한 장소에 아파트처럼 여러 건물이 인접해 있어서 밤에 다녀도 정말 안전하다. 같은 학과 친구들이 인접해 있어서, 같이 밥 먹으면서 파티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내가 사설 기숙사로 옮긴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방의 크기였다. 정말 고시원만 한 작은 공간에 (다행히도 각 방마다 창은 있다) 침대도 슈퍼 싱글이라서, 잘 때마다 몸을 쭉 펴기가 어려워 새우처럼 말아서 자곤 했다. 내가 있던 룸은 en-suite 룸, 즉 개인 화장실이 딸려있는 룸이었는데 그 화장실의 크기가 정말…… 비행기 탈 때 쓰는 화장실을 생각하면 정확하다. 거기서 샤워까지 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대학기숙사의 en-suite 룸이다. 뭐, 그래도 개인 화장실 있는 게 어딘가.
킹스턴 대학교의 기숙사
당시 킹스턴 대학에서는 크게 3개의 학교 기숙사 단지가 있었는데, 내가 프리세셔널 코스에서 잠깐 있던 곳은 Surbition 역과 가까운 Seething Wells 레지던스였다. 굉장히 큰 기숙사 단지인데, 킹스턴 시내와는 다소 떨어져 있는 한적한 동네다. 이 이외에 학교와 가장 가까운 Middle Mill 레지던스, 그리고 좀 떨어져 있는 Clayhill 레지던스가 있다.
Seething Wells와 Clayhill 은 모두 학교와 다소 떨어져 있지만, 대부분의 방이 en-suite 룸으로 되어있어서 화장실을 프라이빗(?)하게 쓸 수 있다. 다만 주방은 공용이라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오븐 등을 4-6명의 플랏메이트들과 공용으로 써야 한다. 그래도 넓은 단지 안에 나무도 잘 심어놓고, 기숙사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차를 대기가 쉽다. 혼자 택시를 타고 내려서, 3개나 되는 캐리어를 혼자 들고 낑낑대고 올라간 영국에서의 폭풍 치던 저녁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참고로 오래된 기숙사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도심과 좀 떨어져 있고 워낙 한적져서 밤에는 올빼미가 울거나 여우가 찾아와 기숙사 쓰레기장을 헤집어가곤 한다. 킹스턴 주변에 공원이 많아서 여우들이 자주 보이는데… 영국에선 그냥 쓰레기 뒤져먹는 길고양이 포지션이라고 보면 된다. 한 번은 한밤중에 얘네들이 학교 쓰레기장 봉투를 모두 헤집어 놨는데… 그 냄새가 지독해서 일주일 내내 근처에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곤 했다 (참고로 영국은 아직도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만약 1층에 살면, 재수가 없으면 가끔 쥐가(!!!) 들어온다. 키친에서 요리하다가 쥐가 들어와서 기겁을 했다는 플랏메이트들의 증언을 정말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그리고 1층은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다. 사람이 지나가면서 볼까 봐 늘 커튼을 닫아둬야 되고, 습도가 있는 나라다 보니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와 겨울에 춥기도 하고, 말했다시피 쥐나(!!) 벌레가 쉽게 들어오기도 하고…그래서 불편하더라도 가능한 2층 이상에서 거주하는 게 좋다. 어쩔 수 없이 1층에 당첨되었다면, 학교 관계자에게 부탁해서 2층에 있는 빈 방 아무 데나 배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외로 이런저런 문제로 기숙사에 살다가 중간에 나가는 학생들도 많아서, 입학 후 몇 달 후에 빈 방들이 종종 생긴다.
이에 반해 내가 공부했던 Kingston School of Art와 가장 가까운 Middle Mill 레지던스는, 화장실과 주방을 모두 공유하는 작은 기숙사다. 이런 곳은 Standard room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대학교가 있기 때문에 절대 지각할 일이 없다!!! 같은 대학원 동기의 대만 친구, 태국 친구들이 특히 이곳에 많이 둥지를 텄다. 예술 대학과 가까이 있다 보니 주로 예술대학 학생들 위주로 신청을 받는 것 같기도… 중앙에 큰 복도가 있으며, 양 옆에 6-8개의 룸이 붙어 있고 복도 끝에는 두 개의 화장실과 샤워룸이 있는 건물이다. 물론, 남녀 혼용 건물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모든 학교 기숙사는 남녀공용이다. 사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대학 기숙사가 남자, 여자 기숙사로 나뉘어 있는 경우가 꽤 드물다… 그리고 역시 당연히, 남녀가 같이 산다고 해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이 싹튼다기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지저분한 꼴을 공평하게 보고(??) 현타를 받으며 플랏메이트로서의 애증을 키워갈 확률이 매우 높달까…
그래서 이렇게 화장실과 샤워룸까지 공유하는 기숙사에서는 서로 매너를 지켜서 사는 게 중요하며, 바로 그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샤워하고 나서 배수구에 끼인 머리카락을 제때 청소하고, 화장실도 깨끗하게 잘 쓰고, 지저분한 게 있으면 알아서 잘 청소하고 사는 게 좋다. 근데 그게 안된다면, 혹은 플랏메이트가 그걸 안 한다면…여러 가지로 불편해서 결국 중간에 나오는 학생들도 꽤 많다.
킹스턴의 사설 기숙사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곳은 좀 더 좋은 시설에 킹스턴 시내와도 가까운 사설 기숙사였다. 킹스턴에는 좋은 시설의 사설 기숙사가 제법 있는데, en-suite 룸도 있고 아예 주방이 딸린 Studio 룸도 있다. 내가 있던 D 기숙사는 대부분 en-suite 룸이었는데, 무엇보다 방이 학교 기숙사 대비 최소 1.5배~2배 정도 더 크고, 층고가 높아서 훨씬 살기가 쾌적했다. 작은 선물상자처럼 생긴 방에서 호빗처럼 웅숭그리고 살다가, 사설 기숙사로 이사하니 이제야 정말 살 것 같았다. 화장실도 2배 이상 더 크고 깨끗하다! 더 이상 비행기 화장실에서 폐소공포증 걸리며(!) 쭈그리고 샤워하지 않아도 돼서 그게 제일 좋았다.
재밌는 것은 기숙사 앞이 법원이라서 가끔 경찰차가 대기하기도 하고, 판사나 검사들이 잠시 쉬러 나오기도 한다. 놀랍게도 법복과 함께 그들은 머리에 하얀 가발을 쓰고 있다! 아직도 옛날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데, 그들이 입는 법복과 가발 형식은 형식이 정해져 있어서 정해진 곳에서 구입해 써야 한다고 한다.
장점만 이야기한 것 같지만 사실 단점도 몇 가지 있다. 당연히 학교 기숙사보다 1.4-2배 정도 비싸고, 사설 기숙사는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학부 대학생과도 건물을 공유한다. 그래서 같이 사는 플랏메이트가 갓 고등학교를 나온 파티 애니멀이라면, 온갖 종류의 친구를 불러와서 공용 키친을 점령할 것이다… 그래서 좀 소외감이 들 수가 있다.
하지만 학과 친구는 따로 불러서 같이 놀면 되고, 난 나만의 장소에서 호젓하게 지내고 싶다!! 원래 혼자서 잘 논다!!!! 이런 사람이라면 사설 기숙사가 잘 맞을 거다. 심심하면 가끔 친구를 끌고 와서 요리해서 밥 먹여주자. 나도 학교기숙사에 사는 친구들 방에 쳐들어가서 같이 수다 떨고 놀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직접 집 구하기
학교 기숙사는 별로고 사설 기숙사도 별로다! 난 나만의 집에서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할 옵션은 스스로 집을 구해보는 거다.
프리세셔널에서 알게 된 언니와, 역시 같은 반에서 알게 된 태국 친구가 이 케이스이다. 프리세셔널이 시작되자마자 열심히 뷰잉을 다니더니, 기어코 아주 좋은 곳의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혼자 살게 된다면 기숙사보다 몇 배나 더 비싼 돈을 월세로 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방이 2개 있는 작은 집을 구해서 룸메와 같이 살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해도 학교 기숙사보다 훨씬 비싸지만 말이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 늘 사람들 때문에 부대끼고 시끄럽고 피곤한 게 싫으면 자취도 좋은 선택이다.
다만, 자취의 경우 집주인에 따라서 유학생의 운명이 결정된다. 수도꼭지나 샤워기가 고장 난 다던지, 집에 큰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수리를 안 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나갈 때 이런저런 핑계로 디파짓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 학교 기숙사의 경우 학교가 책임을 모두 지는데, 자취의 경우 집의 형태에 따라, 집주인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인 거다.
그래서 골치 아픈 집주인을 만나면 이래저래 마음의 상처를 받아가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것 때문에 학업에 더 집중을 못하고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정한 유학생 신분으로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하는 게 쉽지가 않다. 대부분 신분이 확실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며, 오래 머물만한 입주자를 구하기 때문에 유학생으로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래서 처음 유학을 온다면, 더군다나 학부생처럼 3년도 아니고 1년 남짓의 대학원 코스라면 더더욱, 학교 기숙사나 사설 기숙사를 추천하고 싶다. 살기 쾌적한 조건이 삶의 모든 걸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설령 몇 가지 조건이 부족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런 불편함은 능히 견딜만하다. 가끔 옆 방 플랏메이트들의 떠들썩한 수다도, 차라리 혼자 잠드는 외로운 밤보다는 훨씬 낫다.
중요한 건, 영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유학생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스스로 얻는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박사과정을 밟겠다는 극소수 친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서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다. 그 1년 남짓한 대학원 과정에서, 아주 우연한, 하지만 운명 같은 기회로 같은 학과에서 만났다. 정말 기적 같은 일 아닐까?
이 1년이 지나면,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만나며 웃고 떠들며 밥을 먹을 수 없다. 그 1년 남짓의 짧은 기간이, 대학원 생활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다. 기숙사란 그런 만남의 장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