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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과연 선진국일까?

케데헌, 그리고 내가 본 영국과 한국

by Stella

올해의 역대급 무더위를 맞기 전에 6월 말, 너무나 지친 몸을 안고 즉흥적으로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5월, 6월 동안 어린이날에 현충일, 대통령 선거날도 있었지만... 그동안 얄짤없이 집이나 사무실에서 스스로에게 약속던 마감을 하느라 휴일을 도저히 즐기질 못했다.


하지만, 케데헌


그렇게 3박 4일로 부산에 머물면서 해가 쨍쨍한 날에는 해운대나 태종대를 갔다 오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근처 구경이나 하며 호텔로 일찍 돌아오곤 했다. 마침 딱 넷플릭스에 케이팝 데몬 헌터즈가 릴리즈 된다는 소식을 보고 바로 결제를 하고 시청했는데… 정말 너무 재미있어서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리 시청해 버렸다.


What it sounds like 는 내 최애곡.

내가 못 찾은 디테일이 또 있지 않나 싶어서 계속 보고 또 보더니… 금세 서울에 돌아올 즘엔 유튜브로 시청자 리액션 영상까지 찾아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밌는 리듬 때문에 속으로 흥얼거리던 노래도 좋았고, 케이팝과 무속의 듣도보도 못한(!) 흥미로운 조합도 좋았고, 스타일리시한 주인공 삼인방의 노리개 패션도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케이팝 스타가 한국적인 자수로 수 놓인 화려한 의상을 입고, 노리개를 휘날리며 3분 컵라면을 먹으며 도깨비를 퇴치한다니… 100년 전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이걸 보셨어야 할 텐데.


케데헌이 우리에게 던져준 것

하지만 이내 깨달은 것은, 시청자들이 보고 또 보게 만든 건 비단 그 세 가지뿐만이 아니란 것이다. 시청자들은 케데헌을 보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늘 표준화된, 완벽을 원하는 이 사회에서 난 달라도 된다고, 다른 게 나쁜 게 아니라고 케데헌이 말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을 속이면 안 된다고. 그러나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참회할 수 있다면 지누처럼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피부색이 달라도, 태어난 곳이나 성적 지향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독특한 사람이고, 그걸 숨길 필요가 없다’고, 제작진이 케이팝이라는 옷을 입혀서 가장 소중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케데헌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다 보니, ‘한국적'이라는 부분만 강조되어서 보도가 되니 그 부분이 좀 아쉽다.


사실, 이 작품은 그 누구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기획되고 만들어졌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무려 극우의 아이콘인 트럼프가 집권한 저 미국에서 말이다. 한국에서 이런 조합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씩씩하지만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는 루미, 유교적인 사회에서 부모님의 말에 반항하며 당차게 사는 미라, 미국과 한국의 두 정체성 사이에 껴있는 조이까지… 이런 캐릭터 구상은 제삼자의 시각에서 한국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미국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루미처럼 외형적으로 다른, 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영혼을 갖고 있는 이민자들이나 장애우들을 같이 껴안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좀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하지만 똑같은 영혼을 갖고 있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 양성애자들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있냐 하면, 솔직히 한국은 갈길이 아직도 멀다.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의 성공?



그래서 케데헌의 글로벌 히트가 한국을 멋지게 조명하지만, 그것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이유이다. 모든 지표는 한국이 글로벌 경제 10위를 달성하며, 1인당 GDP 3만 5천 달러를 자랑하는 경제 선진국이라고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도 모 물류 대기업에서 기록적인 폭염에 사람이 매해 죽어나가고, 부실 공사 때문에 신축한 아파트에 쩍쩍 금이 간다. 한국은 사람보다 빵이 더 귀중해서,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반죽기계에 반죽대신 사람이 껴서 죽어가고 있다. 다음 주에 주겠다, 다음 달에 주겠다, 돈이 들어오면 주겠다며 월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회사를 폐업하고 도망가버리는 사장은 왜 그렇게 또 많은가. 한국에서 돈은 신이고 돈 쓰는 사람은 신의 대리인이다. 그럼 돈 버는 사람들은 인간도 아니란 말인가.


OECD중 산업재해 순위 3위에 빛나는 우리

온갖 음주 뺑소니 사고도 예외는 아니다. 술을 먹으면 사람이 다쳐도, 여성과 아이를 때려도, 성희롱에 성추행을 해도 세상이 참 관대하다. 최근엔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가끔 기가차는 판결 기사를 보면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동성애? 주변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홍석천이나 하리수 말고 기억나는 사람이 더 없는 사회가 아닌가. 모든 것이 ‘정규직을 가진, 어떤 장애도 없고 이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스탠다드라고 말하고 있다.


남자는 더 남자답게, 여자는 더 여자답게. 최근 2030 세대가 더 심하다고 하니, 케데헌의 글로벌 성공과는 반대로 한국은 분명 거꾸로 가고 있다.



내가 본 영국, 내가 본 한국



내가 2년 반동안 공부한 곳은 영국에서도 잘 살기로 유명한 윔블던과 킹스턴, 뉴몰든 근처이다. 따라서 런던 서북부 같은 치안이 안 좋은 곳에서 생활한 사람들과는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아직 버젓이 왕이 살아있다! 그 밑의 총리들 중 보리스 존슨 같은 괴팍한 인간들도 있으며, 그를 필두로 한 주변 정치인들도 한가닥 하는 유명인사들이었다 (나쁜 의미로). 아직도 그들이 들쑤신 각종 정치적, 경제적 문제 (이른바 브렉시트) 때문에 현재 총리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만큼 영국의 사회 시스템도 불완전하다.

아직도 왜 했는지 모르겠는 브렉시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 곳곳을, 영국 지방 소도시 곳곳을 돌아다닌 경험으로 말하건대, 영국은 단연 문화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선진국이다.


장애우과 안내견은 늘 옳다


아는 친구들과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러 갔다. 킹스턴 강 근처의 레스토랑이었는데, 60대 정도 돼 보이는 정장을 입은 점잖은 노신사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은, 안내견이 조용히 옆에 따라왔다는 거다.


음식점에서 응대하던 젊은 남자분은 한달음에 달려와, 노신사를 위한 단독 테이블을 마련해 주었다. 늘 퉁명하고 좀 차가웠던 영국인들만 만난 터라, 그의 노신사를 향한 예의와 공손함은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부담 없이 이야기하라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당부하는데, 난 웨이터가 동양인도 아니고 저렇게까지 고개를 조아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유럽에 오면 알겠지만 그런 사람 정말 드물다).


강아지는 작은 간식도 선물 받았다. 의외로 손님들 강아지에게 간식 주는 걸 좋아하는 음식점 사장님들, 정말 많다. 솔직히 인간 손님보다 강아지를 더 반기는 것 같다. 인간이 강아지보다 못하다니… 정말 문화충격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근처 공원에 반려동물과 산책도 못하는데, 근처 식당에는 어떻게 데려간단 말인가. 안내견이라고 다른가? 아직도 안내견 출입 금지 때문에 외식도 편하게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다. 결국 훈련된 강아지가 아닌, ‘누군가의 도움'을 기어코 받아 같이 가야만 남들처럼 외식을 즐길 수 있는 거다.


그냥 똑같은데



그것뿐이 아니다. 수업이 없는 날엔 킹스턴 강가를 산책하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볕을 쐬러 나온 걸 볼 수 있다. 그중에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은 50대 아저씨가 있다. 왼쪽 무릎에 철로 된 의족을 하고, 멋진 문신을 어깨에 두르고 강아지랑 일광욕을 하던 아저씨. 보통은 다리 모양의 의족을 차고 다닐 텐데, 그 아저씨는 아랑곳 안 하고 반바지에 러닝을 입고 쿨하게 따뜻한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BBC에서 가끔 키가 작은 왜소증을 가진 앵커나, 아예 팔이나 신체 부위가 없는 신체적 장애우가 나오는 게 드문 일이 아니다. 오른쪽 팔뚝이 아예 절단된 젊은 여성 기상캐스터가 기상 지도의 왼쪽에 서서, 남은 왼쪽 팔로 기상예보를 완벽하게 해내는 걸 본 적이 있다. 심지어 그녀는 빨간 나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를 가리기 위해 여러 보철물을 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BBC 뻐큐 앵커로 유명한 Maryam Moshiri는 이란계 영국인이다. 물론 안짤리고 지금도 열심히 일 잘한다

바로 옆나라 프랑스의 공영뉴스만 하더라도, 호리호리한 잘생긴 ‘장애가 없는’ 백인들만 앵커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의미로 놀란 적이 있다. 영국 공영방송은 장애우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흑인계, 인도나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이 이미 쟁쟁한 앵커 자리를 휘어잡아 주요 뉴스를 보도한다. 물론 그들은 완벽한 영국식 악센트를 가진 학식 있고 뛰어난 앵커들이다. 그저 피부색만 다를 뿐.


아직 한국인이라는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머나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하러 온 이민자와 이민 2세들이 점차 많아지는 지금, 피부색이 다른 앵커나 리포터들이 주요 뉴스에 조금씩 등장해도 되지 않을까? 혹은 몸이 좀 불편해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앵커나 리포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그들도 큰 희망을 갖고 사회의 다양한 요직에 진출하지 않을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



어학원에 가는 버스를 타거나 장 보러 버스를 탈 때, 종종 나이 든 할아버지가 내게 먼저 타라고 손짓할 때가 있었다. 와- 이것이 바로 말로 듣던 레이디 퍼스트?


지금 생각해 보면, 30살에 유학을 가도 서양인들 기준에서 동양인인 내 얼굴이 너무 어려 보여서… 중고딩이라고 착각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화장도 안 한, 진짜 액면가 그대로의 얼굴로 버스를 탈 때도 양보받을 때가 있는 걸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의외로 이런 배려를 받은 주변 친구들이 꽤 많은 걸 보니, 이건 확실히 나만의 경험은 아니다. 그만큼 여성들에게는,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좀 더 상냥한 사회다.


그렇다고 모든 남자들이, 일주일치 장을 보고 낑낑대며 코끼리 같은 장바구니를 옮기는 나 같은 유학생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자기 일처럼 도와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말 혼자 살면서 장 보는 게 젤 어렵다). 최소한 이런 애가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우연히 옆에 있던 사람이 슬쩍 문을 열어준다던지 하는 정도이다. 이젠 한국에서도 많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앞에서 문을 여는 사람이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경우는 한국에서 드물었다.


30-35 파운드로 살수 있는 모든것. 음식이 싸다

또한 영국의 기숙사는 남녀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다 같이 섞여 지낸다. 같이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유하면서 방은 따로 마련해서 지낸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플랏메이트와 성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 오히려 각자 남자 친구이나 여친을 데려와서 파티하며 소란을 피우는 정도이지…


남녀가 같이 살지만 서로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퍼스널 스페이스를 존중하는 것. 영국에서는 기본 중 기본이다.


그것도 모르고 외국에서 유학한 한국 여자들이 문란하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남자들은, 과연 그들이 이국땅에서 남들 따라잡으려고 공부하느라 클럽은 커녕 남자 만날 시간도 없다는 사실은 알고나 있을까?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 죽순이에 일부는 알바까지 하느라 잠잘 시간도 없다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여자들은 오해받느라 힘들다.



일주일 내내 흐린 영국겨울이지만 가끔 해가 뜨면 이렇게 예쁘다


여하튼 이것이 나의 영국 감상기이다. 시차 9시간에 비행시간만 이제 14시간이 넘는 먼 나라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 정말 파이팅이다!


힘든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잘 소화해 내고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면 한국에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 그저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할 많은 걸 경험하고 와서, 부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자.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사람으로서, 서로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좀 더 인간미 있게 살기를. 일 때문에, 돈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서로에게 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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