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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국 유학기

#4 킹스턴 대학원에서 뭘 배울까?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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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는 대학원 기숙사 종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봤는데, 이제는 킹스턴 대학원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사실, 나의 설명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킹스턴 대학원에 입학한 지 이미 8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Communication Design MA 코스였던 명칭이 Illustration MA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뀐 명칭에 따라 세부적인 교육과정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내가 배운 것들은 지금의 코스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대체적인 대학원 공부과정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Full time 1년 과정이 있고 Part time 2년 과정이 있는데, 영국 영주권이나 시민권 출신만이 2년짜리 코스를 다닐 수 있으므로 (직장을 다니면서 겸하는 경우가 많음) 우리 같은 international student는 무조건 1년 코스를 들어야 한다.

1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이나 캐나다, 심지어 유럽들도 보통 2년을 거치는데 1년밖에 안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과 돈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거다. 영국은 학부도 3년밖에 안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제외) 석사까지 마치면 4년 만에 대학원을 마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영국 사람들은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20171027_152201.jpg 거의 매일 산책했던 킹스턴 강변의 가을


Module과 Credit


Credit 은 말 그대로 학점이고, 현재 Illustration MA는 5개의 수업을 통해 총 180 Credit을 따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보통 한주에 수업을 두 개 정도 듣고, 나머지 남는 기간에 과제를 하거나 연구를 하거나 부족한 영어 공부를 하거나… 스스로 계획을 짜서 지내게 된다. 수업은 기껏해야 1-2시간 정도라서 정말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여기서 수업을 Module이라고 한다. 이 Module은 각각 다른 수업 주제와 목표를 갖고 있는데, 수업에 따라 리서치 위주로 공부하기도 하고 작업 위주로 흘러가기도 한다. 우리 과에 90퍼센트 이상이 외국인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지도교수인 Paul 이 수업 시작마다 신경 써서 수업 목표와 해야 하는 과제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곤 했다.

영국인 비중이 높은 타 학과에선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것이 전혀 없다던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술 대학은 비교적 외국인 학생으로서 적응하기 쉽달까?... 여하튼 학교 적응도 안 됐는데 이런저런 설명을 듣자니 시간이 훌쩍 간다.

학점은 우리처럼 A+, B- 같은 방식으로 매 학기마다 학교 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 A를 받은 사람은 Distinction, 평균 B학점은 Merit (보통 이게 많다), 그 이외에는 Pass로 처리되며 졸업 후에 받는 졸업증명서에 명확하게 표시된다. 난 평범하게 Merit로 졸업했는데, 대부분의 한국 친구들은 Distinction (뛰어남)을 받는 걸 보니 남들 열심히 작업할 때 너무 놀러 다니기만 했나 좀 무안하긴 하다. 물론 후회는 안 하지만... 여하튼 시간을 들여 공을 들인 작품은 티가 나는 만큼, 교수님들은 언어가 완벽하진 않아도 학생들의 노력과 창의력을 유심히 본다.

20180215_103409.jpg 이스터 홀리데이에 갔던 스위스의 만년설


세 개의 Term, 그리고 세 개의 Break

첫 학기는 9월 초중순에서 시작되어 12월 중순에 끝난다. 이 기간 동안 뭘 배우는고 하니, 교수님들은 자주 학생들을 데리고 런던 시내의 뮤지엄에 답사를 시킨다. 본격적으로 내 작품을 만드는 기간이 아닌, 런던에 적응하면서 여러 현대 미술들을 접하고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놀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친해졌던 기억은, 내 머릿속에 가장 행복하게 남은 추억이다.

하지만 그냥 넋 놓고 구경만 다니면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수업 마지막엔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되짚고 기록해서 자신만의 의견을 에세이와 함께 써야 한다. 최소 몇 자 이상으로 정해져 있고, 총 몇 자를 적었는지 꼭 정해진 규칙을 따라 명시해야 한다. Pre-sessional 수업에서 쓰던 1000자 내외의 에세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술대학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노트북을 켜고 밤새 글을 쓸 일이 정말 많다. 참고로 Visual Reference라고 해서, 나의 연구와 의견을 뒷받침할 시각적 자료들을 PDF로 정리해야 한다. 보통 10 페이지는 훌쩍 넘어간다.

20170928_121829.jpg 교수님이 예시로 보여준 Visual reference 형식. 이런 걸 매 학기 해야 한다...


열심히 지내다 보면 어느새 12월 중후반, Christmas holidays가 시작된다. 이게 대략 2주-3주 되기 때문에 그동안 나 같은 외국학생들은 집에 갔다 오거나 멀리 여행을 간다. 그냥 기숙사에 지내면서 돈을 아끼는 것도 방법이지만… 난 두 번째 맞는 지독한 영국 겨울이 너무 싫어서 일찌감치 티켓을 끊어놨기에, 편하게 가족들과 연말을 보냈다. 난 정말! 정말 영국의 겨울이 싫다!!!

그렇게 한국에서 재충전을 하고 돌아와서 시차적응이 끝나면 1월 둘째 주 정도 된다. 이때부터 3월 후반까지 두 번째 Term이 진행되고, 이게 끝나면 2주 정도 부활절을 기념한 Easter Break 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대략 2달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수업을 두 개 듣고 과제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 구간이 은근히 힘들다.

이 이스터 휴일이 끝나고 4월 둘째 주 정도부터 7월 말까지 쉬지 않고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한숨 돌려도 되는 게, 마지막 수업은 졸업 작품을 만드는 Module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수업이 하나밖에 없다. 사실 수업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특별한 고지가 없는 이상 학생 대 교수 개인면담으로 매주 이루어져 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자기가 만들고 싶은 작품의 컨셉과 계획을 상담하고, 도움받을 것이 있으면 상담받는 형식이라… 짧으면 10~20분 안에 끝낼 수도 있다.

20171104_160035.jpg 친구들과 놀러간 Bath의 제인 오스틴 박물관


그래서 이 마지막 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작품구상을 핑계로 여행도 하고,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지낸다. 나만 하더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러 웨일스로 훌쩍 떠나기도 했고, 친구 따라서 터키로 일주일간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면서 여행을 하기도 했다. 물론, 돌아온 직후부터 밀린 졸업작품을 하느라 2주가 넘게 고생을 했지만 말이다.

그 해가 유래가 없이 더운 여름이었고,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과제를 해야 했다. 결국 나 같은 학생들은 유일하게 에어컨이 빵빵한 1층의 공용 커뮤니티룸에서 밤새 과제를 해야 했는데, 그런 더위마저도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었다.

마지막 졸업 작품은 학생이 원하는 주제로, 원하는 포맷으로 다양하게 작업할 수 있다. 큰 포스터 작업, 그림책, 팝업북, 설치 모형, 애니메이션이나 기타 영상 작업, 심지어 Interaction이 가능한 큰 보드게임까지…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들의 형태도 정말 다양했다. 유학을 오기 전에 이걸 만들어 봐야지!! 했던 주제의 작품들을, 교수가 허락하는 한에서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지막 텀을 정말 즐기면서 보내게 된다.

20170920_150230.jpg 미술대학 꼭대기 층에서 보이는 풍경. 근처가 다 주택가다.


전시회, 그리고 졸업

그렇게 7월의 더운 마지막 날에 모든 작품을 완성하고, Visual reference와 Critical Reflection이라는 자기 평가 에세이를 완성하면…1년의 대단원이 끝이 난다. 기다리던 길고 긴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수업이 없어서 사실상 끝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끝나고 나면 빨리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는 게, 바로 기숙사 짐들이다. 영국의 학생 기숙사는 딱 해당 학생의 학사 시간 동안만 배정이 되기 때문에, 학사가 끝나면 어떻게든 새 학생들 위해 방을 비워줘야 한다. 그래서 8월 후반까지 어떻게든 짐을 줄이거나 버리고, 이사할 수 없는 물건들은 한국으로 빨리 보내서 정리해야 한다.

학부생들은 6월 중순에 학기가 끝나는데, 대학원생들은 7월, 심지어 8월 초까지도 공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새 학생들이 들어오는 9월 초까지 좀 빡빡하게 정리하고 빨리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졸업작품을 내자마자 새 집을 찾아 뷰잉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렇다고 다 끝났다고 영국을 뜨기도 애매한 게… 졸업 전시회가 남아있다는 거다. 전시회는 9월이나 10월 정도에 런던 시내의 작은 갤러리, “Gallery Different” 에서 열린다. 그때까지 기다리기 싫은 소수의 학생들은 아예 기숙사를 떠나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린다. 전시회에 참여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예 참여하지 않고 논문과 작품만 내고 떠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해외에서의 첫 졸업 전시’라는 부분에 큰 의미를 두기 때문에, 전날부터 갤러리에 와서 열심히 준비를 한다. 전시는 보통 3-4일 정도 진행된다.

이렇게 즐겁게 졸업 전시를 하고, 친구들과 멀리서 온 가족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즐겁게 보내고 나면… 과연 졸업식은 언제 하게 될까? 매우 놀랍게도, 12월 혹은 1월에 한다! 모든 학기가 다 끝나고도 거의 반년이 되어서 졸업증명서를 받고, 졸업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의 졸업 전시회까지는 어찌어찌 영국에서 지내지만, 그 이후에는 짐을 싸서 귀국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그런 케이스였고, 11월 초쯤에 영국을 떠나 유럽을 여행하고 연말에 귀국을 했다. 하지만 ‘난 해리포터 같은 졸업가운을 입고 꼭 사진을 찍을 거야!’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졸업식까지 기다렸다가 멋진 사진을 찍고 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학생비자는 1월까지라서, 그때까지 파트타임으로 다양한 일을 하며 경험을 쌓는 친구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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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_154407.jpg 갤러리 Different 에서 했던 졸업전시회


대학원 공부에서 중요한 것

1. 레퍼런스

영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느낀 건, 작품 그 자체보다 그 작품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왜 만들게 되었어? 이 작품과 비슷한 다른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같이 보여줘.”
“이 작품이 너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뭐지?”
“무엇이 네가 이 주제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했어?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모든 자료를 근거로 정확히 설명해 봐.”

이것이 대학원 과정에서 학생에게 요구하는 전부이다. “그냥… 하고 싶어서요.” 이런 대답은 불가이다. 대학원은 작품을 만들기 전에 ‘연구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일보다 책이나 인터넷으로 리서치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정말 자유롭게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오면 정말 낭패다. 하긴 이런 고생을 하니 그 보상으로 귀한 졸업장을 주는 거지 싶다.

참고로 졸업장을 현지에서 받을 수 없으면 우편으로 한국에서 받을 수 있다. 다만 졸업장을 딱!! 한 장밖에 출력을 안 해주기 때문에 주소지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요청해야 한다. 이제는 졸업한 지 6년이 지나 가물가물하지만, 액자에 넣은 졸업장을 가끔 볼 때면 생각난다. 아, 내가 유학을 했었구나, 하고 말이다.

20171027_164722.jpg 논문 막힐 때마다 수없이 걸었던 강변...그대로 리치몬드까지 가기도 했다.


2. 출처


또 중요한 건 Visual reference라고 하는 자료 묶음집에 넣을 자료들의 ‘정확한 출처’다. 그 출처는 영어책이 될 수도 있고, 한국책일 수도 있고, 인터넷 사진이 될 수도 있다. 출처를 Bibliography라고 해서 뒷페이지에 정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의외로 이걸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무리 본문과 에세이를 열심히 써도, 출처를 기재하지 않으면 retake, 즉 과제가 반려되기 쉽다. 도용이나 허위 정보를 주의하는 유럽의 학계 특성상, 인용 출처는 자료집의 내용만큼이나 아주 중요하다! 인터넷 글을 긁어서 논문에 내거나, 남의 글을 내 것 인양 도용하는 것은 영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무단 도용과 표절을 자동으로 검사하는 전문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논문을 무작위로 검사하니, 표절은 생각도 안 하는 게 좋다.


20171001_174424.jpg 소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빈티지 가게



이걸 다 어떻게 하나?... 이래저래 어려워 보이지만, 또 막상 닥쳐보면 졸업을 하기 위해 기를 쓰고 어떻게든 해내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늘 난 나약하고 끈기가 부족한 사람, 모자라다는 생각에 늘 괴로웠다. 하지만 의외로 타국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면서 난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의외의 강인함을 알게 되었다. 유학생활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늘 편하던 세이프 존에서 벗어나서, 가장 불편하고 먼 곳에서 나를 다시 어르고 토닥거리고 다시 길러내는 과정이다. 그걸 해내고 돌아오니, 또 하나의 힘든 산을 넘었다는 자부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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