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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Feb 18. 2023

이렇게 무심한 인간...

K형을 그리며....




'딩동' 아침부터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이 새로운 소식이 왔다고 운다. 두 학번 위인 K형의 부고다. K형의 부친상도 모친상도 아니라 본인상이다. 퍼뜩 생각이 든다. '나보다 한 두해 위일 텐 이렇게 일찍', '근데 K형이 누구더라.... 그 형은 누구랑 친했나.....' 머릿속 생각을 부여잡고 기억의 끈을 더듬어 더듬어 이름과 학번 이미지 목소리 등을 맞춰보다 기억의 색을 다 칠하지 못하고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딸아이와 1시간 거리의 옆 도시에 가기로 한 날이다. 헌책방에 책도 팔고 그 도시의 미술관도 가고 유명하다는 중국집과 곱창집도 가보기로 했다. 차에 올라 고속도로에 막 진입할 즈음에 대학시절부터 절친이라 할만한 J에게서 전화가 온다. '야, 너 K형과 친했잖아. 소식 들었지?' 그 순간 내비게이션 화면 뒤에서 나오는 J의 목소리는 토르의 망치가 되어 머리를 내리쳤다. '아, 이런. 형이구나......' 


신입생이라 온갖 것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K형은 늘 고독한 투사의 모습이었다. 동남아 청년이라 해도 믿을 만큼 까무잡잡한 피부와 깡마른 체격에 줄담배를 폈고 술도 퍽이나 잘 마셨는데, 학생회 간부로 온갖 데모와 학교 행사에서 보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우연히 검도부의 선배로 나타난 K형은 특별히 같은 과 후배인 내게 평소 같지 않은 소년 같은 웃음과 큰 소리로 날 불렀고 밥은 먹었냐며 관심을 나눠줬고 그날 이후로 나는 K형을 많이 따랐고 좋아라 했다. 2학년이 되면서 학생 운동에 깊이 관여한 K형을 더 이상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고 내가 군복무를 위해 휴학을 하면서 자연스레 소식이 끊어졌다. 친하던 사람에게도 실하고 끈기 있는 관심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재주도 부족한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강산이 바뀌고 또 바고 오늘 아침 이렇게 K형과 이 땅에서의 인연이 끝나버렸다. 


그것도 한동안 누구인지 기억도 못한 채..... 


망각의 숲 이곳저곳에 흩어진 형에 대한 기억 조각들을 들춰 찾아 맞춰보고 연결해서 다시 흑백 사진 같은 이미지들에 색을 칠해본다. 이 색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색보다 더 따뜻하고 밝았을까, 더 강렬한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더 생기 있고 더 찬란한 장면이었을 거다. 아..... 끝내 색을 다 입히지 못하고.....


나는 그저 K형의 이름 석 자만을 기억에 새기며 형을 추모한다. 




나의 이 무심함에 놀라고 허탈하고 주눅 든다.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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