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우당탕탕 여행기
밤새 열이 펄펄 끓었고 스미는 한기에 몸이 덜덜 떨렸다. 덕분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부모님의 부산스러운 소리에 잠이 완전히 깼다. 오전 8시 30분 버스를 탈 예정이었으니 적어도 오전 7시 50분에 터미널로 출발해야 했다. 부엌에서 먹다 남은 과일을 우적우적 먹으며 무심코 거실의 통창을 바라봤다. 거실의 통창 속에 아직 캄캄한 하늘이 보였다. 시내를 비추는 따스한 불빛 아래로 이른 시각부터 바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직도 엄청 깜깜하네, 생각하다 문득 내 휴대폰을 보니 오전 6시였다. 부모님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라고 묻자 부모님은 "지금 오전 7시 아니야?"라고 반문하셨다.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시차는 1시간. 알고 보니 부모님 휴대폰은 한국 시간을 표시해주고 있었다. 전날 장시간의 비행기 이동으로 풀리지 않은 피로와 좋지 않은 몸 컨디션으로 인해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1시간 빨리 일어난 김에 터미널로 빨리 출발하자고 입을 모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까지 6시간이 넘게 걸리므로 일찌감치 가는 게 이득이려니 생각했다.
그랩을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는 내내 머릿속은 여전히 온갖 걱정으로 가득했다. '버스표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버스가 너무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버스에서 멀미가 심해져 속이 뒤집어지면 어쩌지?' 등등... 각종 상념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 대표 터미널인 TBS에 도착했다. 그랩 기사님은 사람이 엄청 많을 거라고 하셨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줄 서 있는 사람은 2명 내외로 그리 많지 않았다. 어플을 통해 출발지와 도착지, 그리고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창구에 티켓 자리가 남아있는지 문의했다. 다행히 20분 뒤에 출발하는 버스 티켓에 자리가 있다고 하셨다. 바로 표를 끊고 마트로 올라가 버스에서 간단히 먹을 음료와 간식을 구매했다.
안 좋은 후기들을 상기하며 버스 컨디션에 대해 걱정했는데, 그동안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좋았다. 한국 공항 리무진만큼 자리가 넓었고, 발판과 다리 거치대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자리가 편안했다. 게다가 2층 자리라서 야외가 훤히 보여 답답하지 않았고, 기사님의 안전한 운전 덕에 멀미 없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별 일없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길에 2번 정차한다. 한 번은 짐 검사, 한 번은 입국 절차를 밟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들은 술술 통과하는데 우리는 바로 통과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온라인 입국신고서를 미리 작성해야 했는데, 나는 그걸 놓쳤다. 이미 다른 버스 승객들은 모두 통과해서 버스에 탔는데, 우리만 덩그러니 공항에 남아있었다. '버스가 출발하면 어쩌지?', 한편으로는 '다른 버스 승객들이 기다릴 텐데'라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3명의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려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식은땀이 흘렀다. 어찌어찌 입국신고서 작성을 완료하고 버스를 향해 뛰어왔다. 오랜 대기에 지친 일부 승객들이 우리를 보며 한숨을 흘려냈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는 왜 하루종일 걱정하며 마음을 졸였을까?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구하는 일과 버스 컨디션에 대한 문제는 직접 겪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일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의 내가 알아서 잘 대처했을 것이고. 입국신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버스가 출발했다면, 또 그에 맞게 문제를 타계할 방법을 생각해 냈을 거다. 다른 승객들의 마음이 상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물론 타인의 귀한 시간을 빼앗았다는 것은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그에 대한 해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 나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러니 미래의 나를 믿고 괜한 걱정은 하지 말자. 바뀌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앞에 있는 반짝이고 소중한 순간을 놓칠 수도 있으니.